2. 소화시평 정리를 끝마치다
예전에 5년 간 임용을 준비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다. 한 번도 1차에 합격하지도 못한 채 꿈을 접었기 때문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해온 게 한문공부인지라 계속 도전을 했지만 그럴수록 절망감만 커져갔고 한문은 어렵고 지리한 학문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사라는 꿈을 포기한 순간 대안학교 교사가 되며 교사라는 꿈을 이루어주더라. 단재학교에서 6년 간을 근무했으니 6년 동안은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한문은 전혀 보지 않게 됐다. 하지만 작년부터 다시 임용을 준비하기로 맘을 먹었고 그에 따라 다시 자연스럽게 한문을 공부하게 됐는데 6년 동안이나 놓았던 한문이 제대로 보일 리도 만무했고 자리에 앉아 공부한다는 게 그렇게 버거울 수가 없었다.
▲ 임고반 자리에 앉으면 풍경과 내 자리. 이곳에서 3월 한 달간 헤매고 또 헤맸다.
소화시평 스터디와 블로그
3월 한 달 내내 헤매고 또 헤맸다. 임고반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적응하려 자리에 긴 시간 앉아 있어보기도 했고 한문과 친해지려 계속 책을 노려보기도 했다. 3월 한 달간은 그저 적응이나 하고 한문과 친해져보자라는 심정으로 욕심은 내려놓고 천천히 보는 데도 한문은 보면 볼수록 더욱 어렵게만 느껴졌고 임고반이란 자리는 가시방석처럼만 느껴졌다. 한 달을 보냈지만 공부엔 진척이 없었고 그럴수록 예전에 처절히 실패하며 한숨을 푹푹 쉬던 때가 떠올라 더욱 의기소침해져 갔던 것이다.
그러다 교수님들이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4월 11일부터 스터디에 합류하게 됐다. 처음 스터디에 들어갈 땐 여전히 한문에 대해 백지 상태에 가까웠기에 ‘난 이제 첫 발을 떼는 초심자다. 그러니 거만 떨지 말고 잘해야 한다고 욕심내지도 말고 하나하나 충실히 배워가야지’라는 심정으로 참여한 것이다. 김하라 교수님 스터디는 나처럼 초심자에게 매우 적합해서 한문의 구조에 따른 해석을 차분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 김형술 교수님의 소화시평 스터디는 한시를 친근하게 만들어주며 한문공부의 재미를 느끼게 해줬다. 어찌 되었든 스터디를 참여하게 되면서 3월 한 달간의 방황을 끝내게 됐던 것이다.
특히나 소화시평 스터디를 처음 참여해보니 ‘여기서 배운 내용들은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기에 소개된 한시에 대해선 워낙 많은 책에서 해설을 해왔지만 막상 스터디에서 배운 내용들은 그 해설을 뛰어넘는 깊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저 스터디 시간에 배우며 알게 된 내용으로 ‘한시가 참 맛있다’라고 느끼는 데서 그치기보다 어떻게든 정리를 해서 남겨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단재학교에서 근무하던 6년간 갈고 닦은 것은 글을 쓰며 정리하는 습관이었던지라 그런 장기를 발휘해 시간은 걸릴지라도, 그리고 그만큼 고달플지라도 공부한 내용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쓴 글이 상권 30번을 배우고 그걸 정리한 내용의 글이었다. 이 당시에 감상을 적거나 다른 내용을 첨부하거나 하는 식은 아니었고 스터디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단순하게 적는 정도였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렇게 한 번 첫 발을 떼며 정리를 하고 나니 생각들이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저 단순히 한글파일로 정리하는 정도로 끝낼 게 아니라, 블로그에 업로드를 하며 언제든 볼 수 있는 자료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 말이다. 처음엔 갈등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른 공부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하는 우려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맘을 정했다. 정리를 하고 블로그에 업로드를 하는 것도 공부의 한 방식이라 생각하기로 했고 그때부턴 본격적으로 공부한 내용들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 시점으로 3월 한 달간의 방황은 끝나고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한문공부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소화시평 스터디는 한시의 재미를 알게 해줬다는 것뿐만 아니라, 한문공부의 방향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할 수 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한 달 내내 방황한 덕에 무엇이든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어리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제때에 좋은 스터디를 만나며 시너지를 냈던 것이다.
▲ 6년 사이에 공부의 방식이 엄청 바뀌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정리가 편해졌기 때문이다.
정리 방향의 변화와 후기가 빠진 이유
그렇게 시작된 소화시평 스터디를 정리하는 방법은 소화시평 스터디 내내 계속 되었고 그에 따라 방법에도 변화가 따라왔다. 초반엔 그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짧게 정리하는 식으로 정리했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름의 자신감이 붙더라. 그래서 그때부턴 소감을 섞어서 좀 더 길게 쓰기 시작했다. 상권 42번 정리글에서부터 이런 변화는 뚜렷이 감지된다. 그러다 다시 한 번 변화를 겪게 된다. 시의 내용 위주로 쓰던 방식에서 벗어나 그 당시의 나의 상황이나 느낌까지 적거나, 그 시를 배우며 다른 것까지 알게 된 경우 그런 내용들도 적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때부턴 한 편으로 써지던 기록들이 두 편으로 쓰게 되는 경우들이 많아졌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알게 된 것, 느끼게 된 것을 충실히 남겨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의 변화 과정을 통해 소화시평의 공부내용을 어떻게 정리할지 방향을 확실히 잡게 됐고 그건 하권을 마무리 짓는 순간까지 이어져서 소화시평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쌓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부한 것에 대해 모두 기록을 남겼지만 상권에선 83번에 대한 기록이, 하권에선 66번에 대한 기록이 없다. 너절한 변명을 대자면 83번은 2018년 11월 임용고사를 보던 주에 했던 스터디에서 했던 글로 임용이 닥쳐 있었기에 미처 기록을 남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그러면 임용고시가 끝나면 시간도 많았을 텐데 그때 썼으면 됐잖아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류의 시험을 봐본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임용고시가 끝나고 나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그러니 결국 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하권 66번 같은 경우는 3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며 교수님이 새롭게 발표자를 정해줬었는데 그때 64번과 66번은 누락된 것이다. 그래서 그 두 편은 건너뛰고 소화시평 하권 마지막까지 진도가 나가게 됐고 교수님은 “64번 같은 경우는 홍만종이 좋다고 생각한 한시를 발췌해서 실어놨는데 여기에 인용된 시들은 모두 좋은 시들이기 때문에 전문을 보며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셔서 전편을 하나하나 꼼꼼히 공부할 수 있었지만, 66번은 다시 언급이 없으셨기에 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것이다.
▲ 소화시평을 함께 공부한 도반들.
충실하게 보냈던 시간이여
어찌 되었든 이런 과정을 통해 소화시평을 공부하며 정리글 형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나니 기분은 좋다. 초반부터 지녔던 ‘공부한 것은 꼭 기록으로 남기자’라는 생각을 마지막까지 견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고 해서 한시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됐다거나 ‘한문과 한시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생각이 바뀔 만한 일대변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충실하게 스터디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마무리 지어본 경험을 통해 다른 것에도 좀 더 쉽게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소화시평 스터디를 통해 공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그걸 정리하다 보니 공부의 재미도 알게 됐고 더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역시 뭐든 시작해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마구 마구 생겨난다. 그래서 나를 좀 더 격려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건빵, 너 하고 싶은 거 맘껏 해!
▲ 소화시평 상하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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