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의 매트릭스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 AD 26~36 재직) 아래에서 일어난 확실한 예수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건의 기술이 요한의 관심이 아니다. 그 역사적 지평의 배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로고스적인 신비로운 사역(使役), 그것을 예수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에서 드러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연 이 우주라는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프로젝트 속에 던져진 우리의 삶의 의미를 전폭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러한 의미의 징표로서만 기적을 제시했기 때문에 단 7개의 사건만을 기술했다. 시간(5:1~9), 공간(4:46~54), 양(6:1~14), 질(2:1~11), 생사(11:1~46), 인간의 숙명(9:1~12), 자연의 인과(6:16~21),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7개의 상징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 실존에 던져지는 의미의 매트릭스(matrix of existential meaning)다(『요한복음강해』 180).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기술방식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예수의 동선(動線)이다. 예수의 사역의 공간적 시간적 배치에 관한 것이다. 우선 공관복음의 원형인 마가복음은 예수를 갈릴리사역을 중심으로 그렸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텃밭이 갈릴리 향촌인 것이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하여, 천국의 선포, 갈릴리 향촌에서의 기적적 권능의 예시, 예루살렘 제사장 이스태블리쉬먼트(establishment, 질서)를 대변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저주, 비유로써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말하는 첫 번째 긴 설교, 서서 말하고 움직이면서 말하고, 바다를 건너고, 마귀를 내쫓고, 병든 자를 고쳐주고,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계속 논쟁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고, 정치적 메시아사상을 거부하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군중의 호산나의 환호성 속에서 메시아적으로 입성, 예루살렘 성전의 잡상들을 뒤엎어버림, 예루살렘 제사장 이스태블리쉬먼트와의 대결, 성전파괴와 재난을 예언하는 두 번째 긴 설교, 최후의 만찬, 가롯 유다의 배반, 체포, 반역ㆍ불경죄로 고발됨, 빌라도 총독의 사형판결, 십자가, 빈 무덤에서 벌벌 떨면서 나오는 여인들, 끝. 이 모든 동선이 갈릴리의 너른 들판으로부터, 예루살렘의 수난ㆍ죽음이라는 최후의 일회적 사건을 향에 직선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공생애의 사건이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내에서 일어나 버린다. 공관복음서는 마가의 원형으로부터 하나도 이탈하지 않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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