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의 생애
이러한 모든 움직임의 원조(元祖)라 할 수 있는 안토니(Anthony, c.251~356)는 중부 이집트 헤프타노미스 코마(Koma)의 콥틱어를 쓰는 유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을 듣고 감명을 받아 그대로 실천했다. 나이 20세 때 부모에게서 받은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동네의 가장 편벽한 곳에 움막을 짓고 수도에 전념했다. 테베의 바울(Paul of Thebes)이라고 하는 노승의 지도를 받으며 금욕생활을 실천했다.
그렇게 15년을 하다가 더 완벽한 고독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사막으로 들어갔고 나중에는 피스피르(Pispir, 현재 Dayr al-Maymūn)라고 불리는 나일강변의 산에서 절해고도의 절대고독과 싸우며 자그마치 20년간(286~305)을 홀로 수행했다. 안토니의 전기를 쓴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끊임없이 악의 세력을 대변하는 악마의 형상들과 투쟁하면서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영적 순결성(spiritual purity)의 거의 완벽한 상태에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안토니의 고행과정을 엿보면 꼭 욕계의 주인 마라(Mara), 마왕 파피야스의 다양한 변신들과 투쟁하며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들어간 싯달타(Siddhartha)의 모습이 떠오른다. 안토니에게도 악마는 다양한 비젼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어떤 때는 요염하고 달콤하게, 어떤 때는 징그러운 공포로, 그가 단식중에는 노승이 빵을 가지고 찾아와 먹으라고 권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날짐승이 덮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리따운 여인이 유혹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군인이 창을 들고 나타나 찌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채찍으로 안토니를 휘갈기는데 거의 죽음의 직전까지 휘몰아가기도 했다. 사탄에 의하여 나타나는 이 모든 환영을 그는 열렬한 기도와 참회의 행동으로 물리쳤다. 안토니의 이러한 항마성도(降魔成道)의 고행과정은 후대 문학과 회화의 끊임없는 주제가 되었다(in the painting of Hiëronymus Bosch, Mattia Grünewald, Max Ernst). 이러한 심적 투쟁을 겪고 안토니는 기독교 수행운동의 매우 건전하고도 합리적인 조사(祖師)가 되었다.
그는 305년 20년 만에 그 항마성도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하산한다. 그리고 그를 따라 같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성자의 모습으로 지도하고 가르쳤다. 313년 밀라노칙령이 발표되면서 기독교인의 박해가 종식되고 오히려 그들이 우쭐대는 세상이 오자, 그는 나일강과 홍해 사이에 있는 동부사막(Eastern Desert)의 한적한 한 산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으며 그는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머물렀던 곳에 지금도 다이르 마리 안토니오스(Dayr Māri Antonios) 수도원이 건재하고 있다.
그를 본받는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알렉산드리아 남서부 니트리 아사막지역에서 시작하여, 나일 델타, 그리고 인도의 아잔타지역을 방불케 하는 수행토굴로 가득찬 스케테사막(Scete)으로 뻗쳐나갔다.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105세에 죽었는데(365년 1월 17일), 그가 죽었을 당시 수천 명의 토굴 수행승이 있었다고 한다. 안토니의 수행방식을 보통 에레미티즘(eremitism)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개별적이며 은둔적인 수행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성령파나 수도승들이 세속적 판단에 있어서는 매우 보수적인 성향이 있다. 안토니(Anthony, c.251~356)는 알렉산드리아에 두번을 방문했는데(두 번째 방문은 350년경), 모두 아리아니즘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안토니는 철저하게 아타나시우스파였다. 아니, 이들은 본질적으로 파벌의식이나 도그마의식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이나 아타나시우스가 이들을 매우 현명하게 활용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생애와 밀착되어 있고, 우리가 논의해야할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의 성과와 관련되어 있는 또 하나의 수도승이 있다. 이제 우리는 파코미우스(Pachomius, c. 290~346)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인용
'고전 > 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 헤구멘 (0) | 2022.03.04 |
---|---|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 인류사상 최초의 기독교 수도원 (0) | 2022.03.04 |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 세속적 가치의 부정: 불교와 기독교 (0) | 2022.03.04 |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 예수의 식색관 (0) | 2022.03.04 |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6장 나일강 유역의 수도원 문화 - 착취당하는 팔레스타인 농부와 예수 (0) | 2022.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