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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술, ‘진아’ 정신으로 본 「양사룡전」의 입전의식 - Ⅲ.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김형술, ‘진아’ 정신으로 본 「양사룡전」의 입전의식 - Ⅲ.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

건방진방랑자 2022. 6. 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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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와 특징적 인간상의 강조

 

 

양사룡전의 본사1은 전주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한 내용이고 본사2는 서귀가 양사룡을 직접 만나 대화한 내용이다. 그런 까닭에 양사룡전은 양사룡의 효행과 선행에 관한 내용이 본사1과 본사2에 중복되어 제시된다. 비슷한 내용을 중복하여 기술하는 것은 서사 전개에 있어 다소 효율적이지 못한 구성이다. 그렇다면 서귀는 무슨 이유로 이러한 구성방식을 택한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살피기로 한다.

 

그 모친의 나이가 70여 세였는데 갑신년(1644) 가을 그 모친이 병에 들어 거의 소생할 수 없을 듯하였다. 그 사람은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를 드렸는데 피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이시여! 우리 어머니의 병이 심해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하늘이 정녕 내 어머니를 취하시려는 것입니까? 내 나이 한창이고 많이 남았으니 필시 하늘을 섬기는 것은 어머니보다 나을 것입니다. 하늘이시여! 청하옵건대 나를 어머니 대신 데려가소서라고 하였다. 이처럼 눈물을 뿌린 지가 열흘이 되었는데 그 모친이 이레 만에 소행하여 일어났다. 그 사람은 이것은 하늘이 내 어머니를 보살펴주신 것이다. 내가 어찌 감히 나의 정성을 다하지 않고 내가 어찌 내 몸 수고로운 것을 마다하여 하늘을 섬김을 소홀히 하겠는가? 하늘은 하민(下民)을 길러주시니 진실로 내 행위가 조금이라도 남을 기쁘게 할 것이 있다면 하늘은 반드시 섬김을 받아주실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 돈과 재물이 없고, 내게는 남에게 혜택을 줄 작위도 없으니 나는 다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리라라고 하였다其母年七十有餘, 甲申秋, 其母有疾病, 幾不甦. 其人日夜禱天, 繼以血泣曰: “天乎! 我母病極, 勢不可活, 天寧有必取我母者? 我年壯且不嗇, 必能事天愈於母. 天乎! 請以我代母.” 如是而雪涕焉者至旬日, 其母凡七甦乃起. 其人曰: “是天所以顧我母者. 我其敢不殫我誠, 我其敢不勞我身, 以享天一分乎? 夫天字下民, 苟我所爲一分有悅於人者, 天未必不我享也. 而我無錢財可以惠於人, 我無爵位可以澤於人, 則我但當爲所當爲.”(같은 글).

 

인용한 부분은 전주사람들의 전언이다. 칠십 노모가 소생할 기미가 없자 양사룡은 피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기도하였다. ‘늙은 어머니 대신 나를 데려가 달라.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한 지 열흘이 되자 기적처럼 노모가 소생하게 되었다. 하늘의 보살핌으로 노모가 소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양사룡은 하늘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돈도 없고 작위도 없지만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겠다[當爲所當爲]’는 다짐을 하였다. 이 내용은 본사2에서 서귀와 양사룡과의 대화【「양사룡전의 구성에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으로 양사룡에 관한 인물정보를 전의 중반에야 드러낸 점을 들 수 있다. 입전 인물의 대략적인 인적사항을 필두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전의 일반적인 구성과는 달리 이기발은 사람들이 전하는 효행과 선행을 미지의 인물 상태로 서술한 뒤 자신이 직접 확인한 양사룡의 인적사항과 사람됨을 나중에 기술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였다. 이러한 구성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높이는 한편 입전 인물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아울러 양사룡 자신의 말을 통해 주제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일종의 전환점 역할도 한다.를 통해 다시 한 번 강조 된다.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제 어머니의 나이는 77세입니다. 작년 9월에 불행히도 어머니의 병이 심해지자 마을사람들이 불편해하며 저더러 늙은 어머니를 산중에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조리를 할 수 없어 어머니의 병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데 자식 된 정리에 마땅히 어떠했겠습니까? 다행히 하늘이 돌봐주신 덕에 제 어머니께서 살아났고 우리 모자가 다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 마음도 스스로 의아하였으니 황홀하기 그지없어 누가 이런 복을 내게 내려주었으며 내가 어떻게 이런 복을 얻게 되었나 싶었습니다. 마음이 즐거워 거리낄 것이 없었으니 두텁고 큰 오악(五岳)을 뚫게 하더라도 스스로 두텁고 큰 줄 모를 정도였고, 넓고 깊은 사해를 뛰어넘게 하더라도 스스로 넓고 깊은 줄 모를 정도였으며 까마득한 구만리 하늘에 오르게 하더라도 스스로 구만리인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그때 제 기쁨의 만분지일도 형용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는 천한 사람이라 하늘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만 하늘과 사람의 관계는 곧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와 같으니 사람 가운데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고 그것을 보답하는 자식이 있다면 아버지가 반드시 기뻐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무릇 천자의 재상이 된 자는 천하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고, 제후왕의 재상이 된 자는 일국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고, 백리의 땅에 수령이 된 자는 한 지역의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천한 사람이라 많은 재물을 가지고서 어려운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나의 가난이 심해서 할 수 없다면서 혹여 사람을 이롭게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버지께 은혜만 입고 보답하지 않는 자식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오이밭을 가꾸어 행인들의 갈증을 한번 풀어주는 것이 비록 사람을 이롭게 할 수는 없더라도 그만두는 것보다는 나은 점이 또한 있습니다. 나는 이 때문에 내 힘을 다하고 내 정성을 드리는 것을 마다 않고 그것을 하였습니다. 반드시 이처럼 한 까닭은 나는 사람을 하늘의 자식으로 여겨서 하늘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얻고자 해서였습니다.

自言: “我母年七十有七. 往年九月, 不幸母患厲, 里人不便, 使我以老母投林中. 不得調養, 母病日臻, 人子之情, 當如何矣? 幸賴天恤, 我母活之, 使我母子復得相依. 當是時, 我心亦自疑, 芒乎芴乎, 恍乎忽乎, 誰賜此我, 我何以得此, 快乎心而無所碍也, 雖使穿五岳之厚且重焉, 而不自覺其厚且重也; 使超四海之廣且深焉, 而不自覺其廣且深也; 使上九萬之蒼蒼焉, 而不自覺其九萬也. 此猶不足以形容我之樂之萬一也. 而我賤人也, 不知所以報乎天者. 自以天之於人, 卽父之於子也, 人有惠於父而報之子者, 父未必不喜. 夫爲天子輔相者, 利天下之人; 爲侯王輔相者, 利一國之人; 爲牧守於百里之地者, 利一境之人. 今我賤人也, 不可得有財巨萬, 可以利竆人. 今我貧甚不可得, 未或有可以利人者, 則是徒惠於父, 而亦不得報之子也. 如此其可乎? 治瓜田, 一解行人之渴, 雖不得以利人, 而其賢於已則亦有之. 我是以不辭竭我力致我誠而爲之, 所以必如此者, 我以人爲天之子, 而欲得天之喜其利之也. 我母性好飮, 我日必有三椀, 恨母獨飮孤寂. 有曰洪春盤曰裵小男李受福李沒內曰某某若干人, 皆有老母善飮, 而與我同鄰居者, 與之脩稧, 名曰養親. 每旬間五日一會, 各以齒坐輪辦, 可嘗羞以供, 使酬酢酒酣. 我以若干人, 必列侍歌, 仍並起舞, 盡歡而罷, 母頗慰悅, 仍流涕而言曰: “! 人子愛親之心, 亦有存亡之異. 方我父初亡時, 我心甚哀, 若不可堪, 若不得一刻可忘也. 旣日月而小異, 朞而漸異, 三年而又大異, 今纔二十年矣, 而或並日不思父, 雖思之, 其心之悲, 亦不如初亡時也. 不幸使我母不救, 其漸忘亦奚異父也? 我思至此, 自不覺煎然, 其容蹙蹙如也.”

 

 

인용문을 보면 서귀가 중복의 구성을 취한 이유를 감지할 수 있다. 인용문의 내용은 앞서 본 전주사람들의 전언과 비슷한 취지이지만, 병든 노모를 산 중에 버리라 권하는 이웃들의 몰인정함이 부가되어 있고, 어머니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하늘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 더욱 상세하게 서술되었다. 이 가운데 더욱 특기된 것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양사룡은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길러주는 은혜만 받고 자신의 형편을 핑계 삼아 보은하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에서 앞서 본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겠다[當爲所當爲]’는 양사룡의 다짐이 한층 심화된 인식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양사룡의 생각은 도입부에 제시되었던 철학적 의론과 맞닿아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양사룡전이 취한 중복의 구성은 양사룡의 효행을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입전자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곧 주제를 심화시키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사룡전이 심화시키고자 한 주제는 무엇일까? 여기서 주 목해야 할 것이 효행만큼이나 강조되어 있는 선행이다.

 

 

이에 그 아내와 함께 한마음으로 재계하고 동짓달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골짝 어귀의 큰길가에 묵정밭 수십 이랑을 개간하였다. 호남 서도 수십 고을의 사람 들 가운데 영남으로 오가는 자와 동도 수십 고을 및 영남인 가운데 호남 서도로 오가는 자들이 모두 이 길을 경유해서 지나는 사람이 하루에 수십 수백이 될 정도였다. 길 동쪽에 큰 고개가 있는데 돌 비탈이 몹시 구불거리는 것이 험난하기 그지없는 촉도(蜀道)에 뒤지지 않아 행인들이 그 길 가는 것을 매우 우려하였는데, 밭은 그 고개 밑에서 약 3리가량 떨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곧 밭 가운데 초 막 한 칸을 짓고 그 아내와 함께 부지런히 오이를 심고 땅을 북돋았으며 전처럼 재계하고 변함없이 제사를 지냈다. 그때 가뭄이 그치지 않아 오이가 말라죽을 판이었는데 홀연 구름 기운이 나타나 그 초막을 감싸더니 이윽고 비가 크게 내렸다. 이와 같은 일이 열흘이면 꼭 두세 번 있게 되자 초막에서 약간 떨어진 이웃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신이한 일로 여겼다. (중략)이에 오이가 지극히 잘 자라나 그저 주렁주렁 달린 정도에 그치지 않았으니 오이 수확은 남보다 열흘에서 한 달 이상 빨랐고, 오이 생산도 계속되어 그 면적으로 따져보면 소출이 열배 백배나 되었다. 이에 계곡물을 이용해 차가운 샘을 만들고 매일 아침이면 오이 백 개, 천 개를 따서 물에 담갔다. 그리고 큰 대야 하나를 길 가운데 두고는 멀리 서 사람이 오는 것을 보면 반드시 사람 수보다 몇 곱절 많게 오이를 가져다 소쿠리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는 사람이 당도하면 노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릎을 꿇고 오이를 바치면서 맛볼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던 자들은 모두 험한 고개를 힘겹게 넘느라 갈증이 심할 때라 손쉽게 먹으면서 맛나게 먹었다. 또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던 자들은 하늘을 찌르는 돌길을 올려다 보며 타는 듯한 무더위를 모두 심히 걱정했기 때문에 반드시 오이 하나를 먼저 먹어 열기를 씻어내고 또 남은 길을 위해 반드시 두세 개를 챙겼다. 그 길을 경유하던 자들은 반드시 이 일을 전하여 훌륭한 일로 삼았고 이에 이 일은 더욱 널리 전해지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於是, 與其妻一心齋肅, 自至月至明年春二月, 乃於峽口大路傍, 闢荒田數十頃. 盖湖南西道十數州郡人來往嶺南道者及東道十數州郡及嶺南人來往湖南西道者, 皆由是路, 行人日可數十百人. 其東有大峙, 石坂九折不下蜀路崟崎, 行人甚憂之, 田去峙底約可數三里. 其人乃於田中, 立草幕一間, 與其妻種瓜培埴甚勤, 其齋肅如舊, 常如承祭. 時天旱不已, 瓜逼枯, 忽有雲氣繞其幕, 俄頃雨大作. 如是者必旬有二三, 鄰其幕若干里, 里人咸異之. (中略)於是瓜極茂, 不但唪唪已也, 瓜之食先於人旬朔, 而瓜之作不竆, 校其地, 其出可什百. 於是作澗流爲洌泉, 以每日朝, 摘瓜千百數, 沉之水, 置一大盤路中, 望見人來, 必以人數取瓜倍蓰, 置盤上, 及人到, 不卞老少尊卑, 特跪獻請嘗. 其東而西者皆艱度險嶺, 方其渴急時, 易爲食而食之甘; 西而東者仰見石路參天, 赫炎如焚, 皆憂甚, 必先食其一以滌熱, 又必取二三爲後地, 由其路者, 必傳爲勝事. 於是其傳益廣, 而人皆悅其人.

 

 

인용한 부분은 본사1에 해당하는 전주사람들의 전언으로, 하늘에 보답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마땅히 하겠다[當爲所當爲]’고 다짐한 대목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이다. 오이를 정성껏 가꾸어 험한 고개를 오가는 행인들에게 오이를 나누어준 행위와 그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흥미롭게 서술되 어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주목되는 것은 오이를 가꾸어 선행을 베푸는 내용을 서술하기 위해 할애한 분량이다. 기도를 통해 노모를 소생시키고 하늘 에 보답할 것을 다짐하는 부분이 원문으로 165자 분량인데 비해, 위에 제시한 선행 부분은 414자로 곱절 이상이다. 이는 양사룡전이 양사룡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단순한 효자 이야기에 그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의 구성이 하늘에 지성으로 기도하여 다 죽어가던 모친을 소생시킨 효행보다 양사룡이 하늘에 보답하기 위해 실천한 선행에 작가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양사룡전은 효자 이야기인 동시에 남을 도운 선량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다. 곧 서귀가 입전한 양사룡이란 인물은 효행을 바탕으로 선행에까지 나아간 인간이며, 서귀는 양사룡을 통해 효행과 선행을 아우르는 보다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상을 제시하기 위해 서귀는 하늘과 사람간의 근원적인 관계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서귀는 이러한 방식으로 양사룡전의 주제를 단순한 효행의 권면을 넘어 보다 포괄적이고 본원적인 차원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인용

목차 / 원문

. 머리말

.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 간개

.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

1. 철학적 의론을 제시한 도입부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와 특징적 인간상의 강조

3. 다양한 삽화를 활용한 주제의 확장

. 서귀 이기발의 의리 정신과 양사룡전의 입전 의식

.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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