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 중간에 대한 조언
02년 2월 16일(토) 조금 눈 옴
그렇게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2월이 오고야 말았다. 2월엔 내가 군에 온 지 1주년 되는 날이기도 하고 G.O.P에서 보내는 마지막 달이기도 해서 아주 많이 뜻깊은 한 달임에 틀림 없다.
상병이 되었다. 덩달아 군 생활을 한 지 1년이 됐단 뜻이다. 시간이 그만큼 지났다는 건 무언가에 많이 능숙해지고 익숙해졌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걸 뒤집어 보면 타성에 많이 젖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만은 그렇지 않다고 선뜻 부인하기가 힘들다. 시시때때로 수양록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달라진 점이 뭔지, 잘못된 점이 뭔지 되새겨 보고 바꾸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해진 삶 속에 타성에 쪄들어버릴 대로 쪄들어 버린 내 의식이 그런 걸 쉽게 감지해내지 못할 뿐더러, 혹 느꼈다손 치더라도 그건 편한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애써 외면해 버리곤 한다.
법정(法頂)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에 보면 타성에 젖어버린 삶이야말로 죽은 획일화된 삶이며 버러지(버러지는 본능을 따라 살지라도 저만의 원하는 바를 충족하며 살기에 삶다운 삶이라 볼 수 있다)만도 못한 삶이라 표현하고 있다. 그렇기에 골방에 들어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진정 어리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진정 어린 주관(그러니깐 진정한 옳음)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 이르러선 사실 나도 나 자신이 얼마나 빠졌고 야비해졌고 더러워졌는지 잘 모르겠거니와 그런 기대와 이런 사회에서 원하는 중간의 모습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의심스럽고 그렇게 혹 고민했더라도 그게 얼마나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하고도 명확한 사실이 있다. 결코 ‘이건 아니다’라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지 않음으로 타성에 젖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며,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정 옳다고 생각한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게 진정한 선일 테니 말이다.
다음 달이면 우리 세 동기(나, 상남, 지용)들이 중간이 된다. 중간이 되면 소대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아이들 통제, 소대 재산 관리는 당연히 우리들 몫이 되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벌써부터 선임 중간들(형국, 영주, 원기)은 우릴 붙잡고 감히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카리스마를 키우고 강압적으로 윽박지르므로 우리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라고 주문을 하고 한다. 사람을 통제하려면, 그만한 위압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감히 넘보지 못한다는 소리이리라. 그건 당연하고도 평범한 진리임에 분명하다. 아무래도 편하다는 건 그 사람이 나한테 별말 없이 그저 잘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혹 도를 지나친 행동을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참들은 이제 악역이 되길 바라는 것이며 그에 따라 끊고 맺음을 확실히 하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뇌리 속에 스치는 것들이 있다. 윽박지름, 성냄 뭐 이런 표독(慓毒)한 것만이 타인을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냐 하는 것들 말이다. 내가 느끼기론 뭔가 확실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는 그러한 것들이 그저 시비조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며, 시비조로 들린다는 것은 반감만 사는 일쯤이기에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걸 싫어하게 되고 덩달아 아무리 일리 있는 말로 가까이하려 할지라도 그런 것 조차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윽박지름을 당한다고 느끼면, 더욱이 그게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계속 반복되다 보면, 은연 중 그런 것에 익숙해지게 되어 진정 잘못한 것에 대해 말해줄지라도 반성은 커녕 ‘또 시작이네’하는 반항심만 커진다는 거다. 그런 관계의 악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기보단 선임들이 그렇게 이끈 결과라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게 적은 것의 중요함이요 소중함이다. 법정 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에 보면, 만년필 이야기가 나온다. 자기가 필요해서 산 만년필로 집필 활동을 할 땐, 그렇게 산뜻하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소중한 한 획 한 획에 다 실을 수 있었단다. 그렇게 만연필을 좋아하시는 스님을 잘 아는 사람이 여행 중 만년필을 보고서 스님이 생각난 나머지 그 만년필을 사서 스님한테 보내드렸단다. 그 만년필을 받은 스님은 처음에 무지 기뻤단다. 아무리 수도에 정진하는 도량자일지라도 인간의 소유 욕망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그렇게 두 가지 만년필로 집필 활동을 하다 보니, 하나만 가지고 있을 때의 그 귀중함(애지중지함)이랄지, 산뜻함은 온데 간데 없고 두 개 다 소홀히 하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단다. 그제야 그 소홀함을 벗어나고자 앗싸리 그 만년필 하나를 친한 다른 이한테 줘버렸단다(이런 깨달음과 결단의 과정 속에 그가 진정 도량자임이 담겨 있다) 그렇다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대표되는 무한한 소유욕은 결코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위에서 얘기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후임에게 지적해줄 때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한두 번일 땐 내가 진정 잘못했기에 ‘이런 지적을 받는 건 당연하구나’하고 맘 속 깊이 되새기며 고치려 할 테지만 그게 수도 없이(볼 때마다) 계속 된다면, 그 한두 번일 때의 애틋함은 사라지게 되고 그 고참이 원래 그런 고참이려니 생각하게 될 뿐이다. 그렇기에 고참들이 바라는 많은 양을 강조하는 가르침엔 따르고 싶지 않다. 난 여전히 내 식으로 진정 잘못된 것들에 대해 짚고 넘어갈 것이며 조금이라도 내가 솔선을 보이는 수준에서 후임들을 통제할 것이다. 어떤 중간이 될 수 있을지 이제부턴 실전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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