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ATT 중 일어난 일
02년 11월 6일(수) 비가 내리는 스산한 겨울 날씨
대종(대대 종합전술훈련)이 오늘부터 시작이다. 6시 30분에 가상하자마자 일제히 상황이 발령되었고 우린 정신 없이 준비태세를 하였다.
그렇게 여느 때와 똑같이 소산지를 점령했지만, 이상하게도 부대 이동을 하지 않더라. 지뢰도 치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았기에 군장을 지키는 인원 2명 외에는 내무실에 앉아 대기해야 했다. 내가 지금까지 훈련이란 이름으로 받았던 어떤 훈련 중, 이번 훈련은 월 중의 월이었다. 부대 이동도 한 시가 되어서야 하게 되었으며 월요일과 화요일은 탄피회수작전 때문에, 수요일과 목요일은 방어만 하면 끝난다는 게 생각지도 못한 행복이었는데 거기다 실질적으로 CⅢ를 넘지도 않고, 바로 대위리에서 지연전을 잠시 펼치면서 부대에 복귀했을 뿐이니깐 그냥 거점 정찰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편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추운 겨울에 방벽에서 시린 새벽을 견디어내야 한다는 건 미칠 것 같은 고통이었다. 피곤하기에 잠을 청하기라도 하면 날카롭게 파고드는 추위는 현실을 비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으면, 온몸이 시려왔기에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정말 엿 같게도 비가 간간이 내려서 잠 또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지 모든 게 불만투성이었다.
오늘의 에피소드라면 추진매복조가 죽은 사건이다. 추진매복조(상병 엄재현, 일병 차승권, 이병 민명규)가 근무를 서다가 대항군에 걸리는 바람에 최초로 아군에 대항군이 사살 당한 것이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기에 황당스러웠지만, 그땐 더욱 그랬다. 새벽 4시 정도가 되도록 철수하란 소리도 없고 매복조도 철수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데 불현듯 검은 그림자 셋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추진매복조였다. 평소처럼 철수하겠거니 했는데, 그들의 첫소리는 “좆됐습니다. 저희 죽었습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상태에서 96k를 물려받은 우리들은 두 눈이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소대장이 하도 열받아하면서 씨발씨발 했기 때문이다. 꼭 한 대 팰 듯한 소리로 말이다. 다행히도 결국은 잘 끝나서 좋았지만, 생전 처음 겪는 황당함이었고 언제나 예외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엄쥐! 완전히 죽을 맛이었겠지.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대 수양록, 병장 - 02.11.14(목) 첫 눈에 그린 꿈 (0) | 2022.07.02 |
---|---|
군대 수양록, 병장 - 02.11.10(일) ‘내 탓이오’와 ‘참기’의 문제점 (0) | 2022.07.02 |
군대 수양록, 병장 - 02.10.31(목) 중대ATT의 시작일에 (0) | 2022.07.02 |
군대 수양록, 병장 - 02.10.25(금) 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0) | 2022.07.02 |
군대 수양록, 병장 - 02.10.24(목) 태권도에 살고 태권도에 죽고 (0) | 2022.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