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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병장 - 02.10.25(금) 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병장 - 02.10.25(금) 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건방진방랑자 2022. 7. 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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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임이 된다는 거

 

021025() 서늘하지만 맑음

 

 

사병 최고의 계급인 병장을 단 지도 어느덧 25일이 지났다. 이제 6일 후면 물병장을 떼고 진짜 병장으로 거듭난다. 오늘 새벽 230분 근무였는데, 글쎄 포반장에게 근무자 신고할 때 상병 이종환 외 2명 근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시 물병장이라 나도 아직은 내 계급에 적용이 덜 된 모양이다.

 

선임의 위치에 놓이게 된 지는 벌써 6개월 정도가 흘렀다. 중간 밑 선에서부터 중간을 달고, 그러다 중간 선임이 된 후, 중간을 놓고 지금에 이른 거다. 분대장을 잡기 전까진 말 그대로 말년이다. 선임이 되고 보니, 예전의 선임들과 다를 게 없다. 선임의 입장이 이해가 되어서라기보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군기를 잡기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내 동기들에게 미안하기에, 그리고 바로 윗선들에게 욕을 덜 먹기 위해서 나도 그렇게 한 것이다. 이때쯤 되니, 내가 예전에 썼던 내가 바라는 선임병의 상에서 열나게 얘기했던 선임병의 모습과 한참이나 거리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그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차이가 있는 걸까?

 

신교대에서 미래설계를 하면서 나중에 상병, 병장이 된다면, 아이들과 얘기를 많이 하므로 고민 상담사가 되겠노라고 얘기했던 게 생각난다. 그 땐, 그저 후임들에게 선심만 베풀어주며 힘든 군 생활을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게 선임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군이란 곳에서 생활을 해보니, 그 당시 내가 가졌던 생각이 얼마나 현실성을 무시한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알 거 같다. 군이란 곳엔 계급이 존재하다. 계급이 존재하기에 계급 사이의 억압과 통제는 불가피하다. 이등병이나 일병이 그 계급에 맞게 신속히 움직여줘야 하며, 상병ㆍ병장이 그 직책에 맞게 조치해주고 명령을 내려주고 주도해줘야지만 소대가 잘 돌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때 그런 직책ㆍ계급에 따른 서로의 행동에 대해 몰랐으며 그렇게 되어야지만 군이 돌아간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랬으니 그런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

 

그래서 이제 현실적인 것을 알기에 현실성 있는 선임병으로서의 자세, 다시 피력(披瀝)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펜을 들었다. 선임병의 입장으로 몇 개월간 생활해보니, 선임병으로서 후임병에게 좋은 모습 보이는 게 쉽지 않더라. 실컷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다가 나중에 가서 좀 개념 없다는 이유로 갈구긴 좀 그렇잖은가. 그렇기에 여전히 난 화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화를 내면 너희들 모두를 괴롭게 할 만한 파워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모두에게 익히 알게 하므로 함부로 거들떠보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테면 카리스마가 그것이다. 어제 명규와 같이 근무를 서게 되는 통에 얘기를 조금 할 수 있었는데, 그 아인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단점을 얘기해주는데, ‘전체를 주목시킬 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하단다. 소대는 고사하고 우리 분대에서조차 내가 주목!”이라 외쳤을 때, 몇 명이나 주목할지 걱정이 될 정도로 나는 단체 리더쉽이 취약하단다. 거기에 대한 대안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자연서 그렇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다. 그래 우리 소대에서 주목이라 했을 때 거기에 즉시 반응하는 사람들은 알고 보니, 병장 김영주, 병장 김상님, 병장 홍원기 모두 한 성질하는 사람 뿐이다. 무섭기 때문에 그 쏘아붙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알아서 기어야 하는 것이고,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나름의 힘을 가진 대상이 되어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며 지식적인 면에서도 조금이나마 우월해야 한다. 그렇지만 난 애초에 어떤 카라스마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좋은 모습 보이면서 존경심을 유도해볼 만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확 갈구기를 해서 공포심을 유도해볼 만도 한데, 그것도 흐지부지 하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오질지 못한 우유부단한 내 성격에 문제가 크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간단하다. 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일이며, 나의 이미지에 대단히 신경 쓴 나머지 이도저도 못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화낼 땐 화를 내며 뒤에선 다시 편히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더욱이 상남이처럼 정말 나의 맘 속에 있는 비밀 같은 거나 진솔한 얘기를 후임들과 다 터놓고 얘기하므로 난 너희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더욱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쉽게 말해 혼낼 땐, 눈물 쏙 빼야할 땐 그렇게 혼낼 수 있어야 하고 뒤에서 서로 속 깊은 얘기도 나눌 땐 맘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식의 끊고 맺음이 확실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짜 그러한 내 모습을 갖출 수 있다면, 예전에 신교대에서 얘기했던 그런 선임병상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할 땐 하고, 말 땐 말자!’ 우유부단함은 더 이상 없다~ Good bye!

 

그리고 예전에 했던 말과 같이, 진짜 아이들에게 방해되는 그런 존재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이젠 내가 청소를 안 한다 해서, 침상 바닥에 누워있다고 해서 나에게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청소시간에 청소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조금 피해주십시오라는 얘기도 해보지도 않고 건너 뛰어 청소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또한 이부자리를 펼 때,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나를 피해서 자리를 깔려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예전에 난 어땠던가? 그렇게 우리의 활동에 방해되는 선임에 대해서는 속으로 욕을 한가득 퍼부으며, 후딱 집에 가란 식으로 불만을 퍼붓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나를 대하는 후임들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겠지. 그들도 그런 식으로 나에게 망언을 퍼붓는다면, 처음에 세운 그들과 친해지려는 조건이 위배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려야 조심하지 않을 수 없고, 배격하지 않으려야 배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예전부터 선임이 되어선 바꿔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금에 이르러 편하게 생활하다 보니 어기게 될 때가 정말 많다. 그래서 새삼 그때의 각오를 되새기는 것이고, 이젠 정말 바꾸고자 하는 맘가짐으로 다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청소할 땐 최소한 청소를 도울 줄 알아야겠고 방해가 되어서 정말 안 될 것이다.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지어다.

 

나의 사고 전환과 행동의 전환을 통해 선임으로서의, 곧 분대장을 잡을 나로서의 입지 굳히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러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이러므로 좀 더 소대원과 어우러질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볼 것이다. 기대하시라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03년 2월. 제대를 2개월 앞두고 점오를 코앞에 둔 시점에 1분대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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