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교화는 교화하는 바가 없다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25-1.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너희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이 같은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을 가지고 있음이라.
“須菩堤! 於意云何? 汝等勿爲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堤!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물위여래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념. 하이고? 실무유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즉유아인중생수자.
25-2.
수보리야! 여래가 내가 있다고 한 것은 곧 내가 있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범부들은 내가 있다고 한 것에만 집착한다. 수보리야! 그러나 여래는 말한다, 범부라는 것도 범부가 아니라고.”
須菩堤! 如來說有我者, 則非有我. 而凡夫之人以爲有我. 須菩堤! 凡夫者, 如來說則非凡夫.”
수보리! 여래설유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이위유아. 수보리! 범부자, 여래설즉비범부.”
제1절은 역시 논조가 신랄하다. 즉 여래의 자기비판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잘못 믿으면 예수는 바로 자기가 설한 말로 인하여 예수가 되지 아니한다. 즉 예수가 자기말을 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곧 여래 자신이 아상ㆍ인상ㆍ중생상ㆍ수자상에 빠져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래 자신이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서릿발과 같은 날카로움이다. 우리는 여래를 타자화할 수 없다. 즉 이것은 나의 실존적 독백인 것이다. 내가 여래라 할지라도, 내가 한 말을 내가 지키지 못한다면, 여래인 나부터 비판당해야 하는 것이다. 즉 아상(我相)의 단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책임일 뿐인 것이다. 모든 종교인들이 깊게 통찰해야 할 명언이다. 예수를 두 번 다시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그 허구적 십자가에 못박지 말라!
세조본, 송본(宋本), 원본(元本)에는 ‘비범부(非凡夫)’ 뒤에 ‘시명범부(是名凡夫)’구가 붙어 있다. 우리 해인사본에는 없다. 그리고 『대정(大正)』본도 우리 해인사본을 따랐다.
여기 ‘범부(凡夫)’라는 표현은 ‘어리석은 일반인들’의 뜻인데 원문은 ‘bāla-pṛthag-janāḥ’이다. 직역하면, ‘하나 하나씩 따로 따로 태어난 자’인데 이것이 복수형이 되면 ‘우자(愚者), ‘군중(群衆)’의 뜻이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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