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명나라 문장과 우리나라 문인들 비평
大明文章, 大抵務華采而少眞實, 此其所以反不及於宋也. 然其評隲文詞, 極其精確, 尋源流辨雅俗, 毫髮不爽. 文以先秦爲主, 詩以漢魏爲本, 一篇之內, 規度森然, 要非我國人所可企及也.
我東雖稱右文之國, 於文章, 效法不高, 識見甚陋. 自勝國以來, 只學東坡, 泝以上之, 惟以唐爲極致, 豈知又復有漢魏先秦也哉? 李文順文章, 爲東國之冠, 而其論文評詩, 多有鄕暗可笑者, 况其餘乎? 牧隱出於其後, 文章深厚, 自然有不可及處.
本朝諸鉅公, 乖崖ㆍ佔畢其尤也, 而不過以韓ㆍ蘇爲範而已. 簡易ㆍ月汀, 始以馬ㆍ班, 揭示後學, 時尙爲之一變, 然月汀則功力猶未深. 至谿谷ㆍ澤堂繼之然後, 古文詞路徑始開. 尤菴專意問學, 不屑屑於古文法程, 而筆力可與李文順鴈行. 農巖爲古文, 典雅稱停, 深得歐ㆍ曾體制. 詩則如佔畢ㆍ容齋ㆍ挹翠ㆍ訥齋諸公, 俱稱名家, 而亦蘇ㆍ黃也. 後來湖陰七言律, 蘇齋五言律, 俱膾炙一世, 芝川篇什散逸, 傳者不多, 而其傳者箇箇奇拔. 簡易雖以古文名, 詩亦矯健有意致, 足爲蘇老敵手. 古詩選體, 諸家無可傳, 由昧漢魏故也. 申玄翁ㆍ鄭東溟始宗漢魏, 頗有所效作, 而聲響格法, 全不髣髴. 近來農巖兄弟刻意追古, 亦多述作, 未知後人尙論以爲如何耳.
해석
大明文章, 大抵務華采而少眞實, 此其所以反不及於宋也.
위대한 명나라의 문장은 대체로 화려한 수식에 힘쓰느라 진실함이 적으니 이것이 도리어 송나라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다.
然其評隲文詞, 極其精確, 尋源流辨雅俗, 毫髮不爽.
그러나 문장의 비평은 매우 정밀하고 확정적이라 근원을 찾고 우아함과 비속함을 분별함에 조금이라도 잘못되지 않았다.
文以先秦爲主, 詩以漢魏爲本, 一篇之內, 規度森然, 要非我國人所可企及也.
문장은 선진(先秦)을 기본으로 삼고 시는 한위(漢魏)을 근본으로 삼아서 한 편 안에 규모가 빼곡하니 요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랄 만한 게 아니었다.
我東雖稱右文之國, 於文章, 效法不高, 識見甚陋.
우리나라는 비록 문장을 위로 여기는 나라라 일컬어졌지만 문장에 있어선 법을 본받은 것이 고상하지 않고 식견은 매우 하찮았다.
自勝國以來, 只學東坡, 泝以上之, 惟以唐爲極致, 豈知又復有漢魏先秦也哉?
고려【승국(勝國): 전조(前朝)라는 말로 한 왕조의 바로 앞 대(代)의 왕조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고려를 이른다.】 이래로부터 다만 소동파(蘇東坡)를 배웠고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오직 당나라가 매우 치성했다고 여겼으니 어찌 또한 다시 한위선진(漢魏先秦)이 있음을 알겠는가?
李文順文章, 爲東國之冠, 而其論文評詩, 多有鄕暗可笑者, 况其餘乎?
이문순(李文順)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으뜸이 되었지만 문장을 평론하고 시를 비평함에 많이들 촌스러운 구석이 있어 가소로운데 더군다나 나머지는 볼 게 있겠는가?
牧隱出於其後, 文章深厚, 自然有不可及處.
목은(牧隱)은 그 후에 나와 문장이 심오하고 넉넉해서 자연스레 도달할 수가 없다.
조선의 여러 대가들 중에 괴애(乖崖)와 점필(佔畢)이 뛰어났지만 한유(韓愈)와 소식(蘇軾)을 본받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簡易ㆍ月汀, 始以馬ㆍ班, 揭示後學, 時尙爲之一變, 然月汀則功力猶未深.
간이(簡易)와 월정(月汀)은 처음엔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로 후학에 걸어 보여줘서 시대가 오히려 한 번 변하게 되었지만 월정(月汀)은 학문의 힘이 오히려 깊지 못했다.
계곡(谿谷)과 택당(澤堂)이 그들을 계승함에 이른 후에야 고문(古文) 문장의 길이 막 열렸다.
尤菴專意問學, 不屑屑於古文法程, 而筆力可與李文順鴈行.
우암(尤菴)은 온전히 문학(問學)에 뜻을 둬 고문(古文)의 법칙에만 신경 쓰지 않았고 필력은 이문순(李文順)과 나란히 다녔다.
농암(農巖)은 고문을 지음에 반듯하고 우아하며 알맞고 정해졌으니 깊이 구양수(歐陽脩)와 증공(曾鞏)의 체제를 터득했다.
詩則如佔畢ㆍ容齋ㆍ挹翠ㆍ訥齋諸公, 俱稱名家, 而亦蘇ㆍ黃也.
시의 경우는 점필(佔畢)과 용재(容齋)와 읍취(挹翠)와 눌재(訥齋)의 여러 문인들이 함께 이름난 문장가로 일컬어졌지만 또한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일 따름이었다.
後來湖陰七言律, 蘇齋五言律, 俱膾炙一世, 芝川篇什散逸, 傳者不多, 而其傳者箇箇奇拔.
후대의 호음(湖陰)의 칠언율시와 소재(蘇齋)의 오언율시는 모두 한 시대에 회자되었고 지천(芝川)의 시[篇什]는 흩어져 없어져 전해지는 게 많지 않지만 전해지는 것들은 한 편 한 편이 기발하다.
간이(簡易)는 비록 고문(古文)으로 이름났고 시는 또한 힘차면서도 뜻이 있어 소식 노인의 적수가 될 만했지만
古詩選體, 諸家無可傳, 由昧漢魏故也.
고시에서 시체를 뽑은 것은 여러 문장가에 전해질 만한게 없으니 한위(漢魏)에 어두웠기 때문이다.
申玄翁ㆍ鄭東溟始宗漢魏, 頗有所效作, 而聲響格法, 全不髣髴.
신현옹(申玄翁)과 정동명(鄭東溟)은 막 한위(漢魏)를 으뜸으로 삼아 매우 본뜬 작품이 있지만 소리와 법칙은 온전히 비슷하지가 않다.
近來農巖兄弟刻意追古, 亦多述作, 未知後人尙論以爲如何耳.
최근엔 농암(農巖) 형제가 뜻을 새기고 고문을 좇아 또한 지은 작품이 많지만 후대 사람들이 고인(古人)의 일을 평론(評論)함[尙論]에 어떠하다 생각할지는 모를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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