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 임희(林希)께 올린 글
상림수주서(上林秀州書)
진사도(陳師道)
迂齋云: “讀『儀禮』熟, 故其區別精, 非特議論好, 讀其文, 氣正辭嚴, 凜然有自重難進不可回撓之節. 此後山所以爲後山, 而曾子宣ㆍ章子厚諸公, 欲羅致而不可得也.”
○ 此篇, 當與答少游書, 參看, 此是後山所求見者也, 彼是欲後山來見而不肯見者也, 二人之賢否, 可知矣.
소개로 분별을 후하게 하고 말로 명칭을 바르게 한다
宗周之制, 士見于大夫卿公, 介以厚其別, 詞以正其名, 贄以效其情, 儀以致其敬, 四者備矣, 謂之禮成.
士之相見, 如女之從人, 有願見之心, 而無自行之義. 必有紹介爲之前焉, 所以別嫌而愼微也. 故曰: “介以厚其別.”
名以擧事, 詞以道名, 名者先王所以定民分也, 名正則詞不悖, 分定則民不犯. 故曰: “詞以正其名.”
폐백으로 정을 드리는 것과 의식으로 공경을 다하는 것
言不足以盡意, 名不可以過情, 又爲之贄, 以成其終. 故授受焉, 介以通名, 擯以將命, 勤亦至矣. 然因人而後達也, 禮莫重於自盡. 故祭主於盥, 婚主於迎, 賓主於贄. 故曰: “贄以效其情.”
誠發于心而諭于身, 達于容色, 故又有儀焉. 詞以三請, 贄以三獻, 三揖而升, 三拜而出, 禮繁則泰, 簡則野, 三者禮之中也. 故曰: “儀以致其敬.”
是以貴不陵賤, 下不援上, 謹其分守, 順于時命, 志不屈而身不辱, 以成其善, 當是之世, 豈特士之自賢? 蓋亦有禮爲之節也.
지금 사람들은 만남의 무례함에 대해 모른다
夫周之制禮, 其所爲防至矣, 及其晩世, 禮存而俗變, 猶自市而失身, 況於禮之亡乎. 自周之禮亡, 士知免者寡矣. 世無君子明禮以正之, 旣相循以爲常, 而史官又載其事, 故其弊習而不自知也.
師道鄙人也. 然有聞於南豊先生, 不敢不勉也. 先生謂師道曰: “子見林秀州乎?” 曰: “未也.” 先生曰: “行矣.” 師道承命以來, 謹因先生而請焉.
해석
迂齋云: “讀『儀禮』熟, 故其區別精,
우재가 말했다. “『의례』를 읽은 게 익숙하기 때문에 구별이 정밀하니,
非特議論好, 讀其文, 氣正辭嚴,
의론이 좋을 뿐만 아니라 문장을 읽어보면 기운이 바르고 말이 엄정해
凜然有自重難進不可回撓之節.
늠름하게 자중하고 나아가기 어렵되 꺾거나 꼬이지 않는 절개가 있다.
此後山所以爲後山, 而曾子宣ㆍ章子厚諸公,
이것이 후산이 후산이 된 까닭이고 증자선(曾布)와 장자후(章惇) 등 여러 사람들이
欲羅致而不可得也.”
초빙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 此篇, 當與答少游書, 參看,
이 글은 마땅히 진소유에게 답한 글과 참고하며 봐야 하니
此是後山所求見者也,
이 글은 후산이 임수주에게 보길 구한 것이고
彼是欲後山來見而不肯見者也,
「여진소유서(與秦少游書)」는 진소유가 후산에게 와서 보려 했으나 기꺼이 보지 않은 것
二人之賢否, 可知矣.
두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알 만하다.
소개로 분별을 후하게 하고 말로 명칭을 바르게 한다
宗周之制, 士見于大夫卿公,
종주국인 주나라의 제도에 선비가 대부와 경과 공을 뵐 때에
介以厚其別, 詞以正其名,
소개로 분별을 후하게 하고 말로 이름을 바르게 하며
贄以效其情, 儀以致其敬,
폐백으로 정을 드리고 의식으로 공경을 다하여
四者備矣, 謂之禮成.
네 가지가 갖춰져야 예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士之相見, 如女之從人,
선비가 서로 봄은 여자가 사람을 따르는 것 같아
有願見之心, 而無自行之義.
보길 원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스스로 가는 뜻은 없습니다.
必有紹介爲之前焉,
반드시 소개가 있어 앞서 해야 하니
所以別嫌而愼微也.
혐의를 분별하고 은미함을 삼가는 까닭입니다.
故曰: “介以厚其別.”
그러므로 “소개로 그 분별을 후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名以擧事, 詞以道名,
이름은 일을 거행하고 말로 이름을 말하니
名者先王所以定民分也,
이름이란 선왕이 백성의 분수를 정한 까닭입니다.
名正則詞不悖,
이름이 바르면 말이 어긋나지 않고
分定則民不犯.
분수가 정해지면 백성이 범하지 않습니다.
故曰: “詞以正其名.”
그러므로 “말로 이름을 바르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폐백으로 정을 드리는 것과 의식으로 공경을 다하는 것
言不足以盡意, 名不可以過情,
말은 뜻을 다하기 부족하고 이름은 정을 넘어설 수 없으니,
又爲之贄, 以成其終.
또한 폐백을 만들어 마침을 이룬 것입니다.
故授受焉, 介以通名,
그러므로 주고 받을 적에 소개로 이름을 통하고
擯以將命, 勤亦至矣.
심부름꾼으로 명령을 가지고 감에 부지런함이 또한 지극합니다.
然因人而後達也, 禮莫重於自盡.
그러나 사람으로 인한 후에 전달되니 예는 스스로 다함보다 중한 게 없습니다.
故祭主於盥, 婚主於迎,
그러므로 제사는 세수하는 걸 주장하고 혼인은 친영(親迎)을 주장하며
賓主於贄.
손님은 폐백을 주장하니
故曰: “贄以效其情.”
그러므로 “폐백으로 정을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誠發于心而諭于身,
정성은 마음에서 발하여 몸에 행해지고
達于容色, 故又有儀焉.
형용에 도달하기 때문에 또한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詞以三請, 贄以三獻,
말로 세 번 청하고 폐백으로 세 번 드리며
三揖而升, 三拜而出,
세 번 읍하고 오르고 세 번 절하며 나오니,
禮繁則泰, 簡則野,
예가 번거로우면 난잡하고 간단하면 야만스러우니
三者禮之中也.
세 가지는 예에 적중한 것입니다.
故曰: “儀以致其敬.”
그러므로 “의식으로 공경을 다한다.”고 한 것입니다.
是以貴不陵賤, 下不援上,
이런 까닭으로 귀하다고 천한 이를 능멸하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당기지 않으며
謹其分守, 順于時命,
분수를 삼가고 당시의 천명에 따르며
志不屈而身不辱, 以成其善,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아 그 선을 이루니
當是之世, 豈特士之自賢?
이 시대에 당하여 어찌 다만 선비들이 스스로 어질었겠습니까?
蓋亦有禮爲之節也.
대체로 또한 예의로 절제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만남의 무례함에 대해 모른다
夫周之制禮, 其所爲防至矣,
주나라에서 예를 제정함에 방비함이 지극하였지만
及其晩世, 禮存而俗變,
후세에 미쳐 예는 있지만 풍속이 변해
猶自市而失身, 況於禮之亡乎.
오히려 스스로 팔아 몸을 잃었는데 하물며 예가 사라진 곳에선 오죽하겠습니까.
自周之禮亡, 士知免者寡矣.
주나라의 예가 사라짐으로부터 선비로 무례함을 면할 줄 아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世無君子明禮以正之,
세상에서 군자가 예에 밝아 그것을 밝히지 않고
旣相循以爲常,
이미 서로 따르며 일상적으로 여기고
而史官又載其事,
사관은 또한 그 일을 기재하기 때문에
故其弊習而不自知也.
그 폐단이 익숙해져 스스로 모르는 것입니다.
師道鄙人也.
저는 비루한 사람입니다.
然有聞於南豊先生, 不敢不勉也.
그러나 남풍선생 증공(曾鞏)께 들은 게 있어 감히 힘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先生謂師道曰: “子見林秀州乎?” 曰: “未也.”
남풍선생이 저에게 “그대 임수주를 보았나?”라고 말하셨는데, 제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자,
先生曰: “行矣.”
선생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師道承命以來, 謹因先生而請焉.
저는 명을 받들어 왔사오니 삼가 선생을 인해서 청합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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