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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28. 불안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28. 불안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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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불안을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10월 7일(수) 문경새재게스트하우스 → 충주시

 

 

드디어 남한강으로 건너가는 날이다. 민족의 젓줄인 낙동강을 지나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남한강으로 들어서는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런데 남한강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두대간 중 하나인 이화령을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단디 먹고 출발했다.

 

 

 

문경온천, 낮과 밤의 분위기가 180도 다른 곳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이화령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제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연출했던 문경온천 부근을 지나가야 한다. 어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환한 불빛이 비춰서 별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침에 그곳을 지나니 전혀 다른 곳인 줄 알았다. 화려한 무대의 앞과 어둡고 초라한 뒤의 차이처럼 쇠락한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어제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어제 내가 문경시청 부근은 좀 초라한 느낌이 들던데, 오히려 온천 부근에 오니까 훨씬 번화해서 놀랐어요라고 하자, 아저씨는 그건 시내 안쪽까지 안 들어가 봐서 그럴 거예요.”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온천부근은 좀 초라했다.

 

 

 같은 곳인가 싶게, 어제와 오늘은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미지란 두려움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 전 준규쌤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었다. 이미 8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올림픽공원부터 구포역까지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가장 궁금했던 건, 이화령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아쉽게도 자전거를 타고 오르지 않고 차로 넘어갔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더욱 겁이 나기 시작했다.

 

 

개구쟁이 8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 종주를 마쳤다. 이번 여행은 준규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쨌든 가기로 맘먹은 이상 몸으로 부딪혀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이화령은 8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기에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요. 그런데 막상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면 5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런데 이화령을 넘었다고 안심했다간 큰 코 다쳐요. 바로 또 하나의 산을 올라야 하거든요. 소조령이라는 산이 나오는데 이화령을 넘었다고 방심하고 있다간 큰 코 다치는 거죠.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화령이 5의 고통이라면 소조령은 3의 고통 정도 된다는 점이죠.”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그 얘기를 들으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뭔가 알지도 못하면서 부딪히는 것과 알고 난 후에 대략적인 감이 잡힌 상태에서 부딪히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50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기운까지 넘쳤다. 난 오전 내내 달려야 겨우 이화령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줄만 알았다.

어제 저녁에 이화령 오르는 것에 대해 인터뷰를 했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기 전이라 나도 매우 불안에 떨고 있었고 그런 심경이 준영이에게 전달됐는지 처음엔 걱정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자꾸 힘들다, 각오해라 라고 말씀하시니까, 얘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이 점점 쌓여져 가더라구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나 자신의 두려움을 남에게 어떤 식으로 투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오히려 어른의 말을 들어 걱정만 쌓인다면, 그 어른의 말은 거부해도 된다.

 

 

 

불안을 그럴 듯한 말로 투사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그때 문득 어른들은 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지 못해 안달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밖에 나가봐 얼마나 살벌한지!’, ‘지금 그렇게 살다간 나중에 후회한다’, ‘너 혼자 사는 세상이 아냐, 그러니 남들 하는 것만큼만 하면서 살아라는 말들이 그런 말이다.

이 말들은 공통적으로 만만치 않은 세상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든 심어주고자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일까? 그건 다른 게 아니다. 어른 스스로 닥치지 않은 미래가 불안하고 알 수 없는 세계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그럴 듯한 언어로 꾸며 아이들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불안에 가득한 말들을 듣거든, 외쳐야 한다. “많이 두려우시죠. 하지만 제 인생은 제가 살 테니, 당신의 불안은 당신이 감당하세요.”라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자꾸 당신의 불안을 투사할 생각이시라면, 저 또한 저의 불안을 맘껏 드러낼 거예요라고까지 하면, 완벽한 마무리되시겠다.

나 때문에 괜히 더 큰 두려움으로 이화령을 넘게 된 준영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나도 뭣도 모르기에 무서워서 그랬다는 것을 밝히며 말이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막상 해보면 별 거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른다. 예전에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엔 이 길로 차들이 다녔을 테지만, 고속도로가 뚫리고 3번 국도를 직선화하면서 이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올라가는 동안 3대 정도의 차만 봤을 정도로 차가 거의 없는 길이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경사가 급하긴 해도 저속기어로 맞추고 오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정도다. 조금 올라가니 ‘5Km’ 남았다는 팻말이 보인다. 올라가는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팻말에 보이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에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준영이와 민석이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며 재욱이는 앞 기어가 고장 나서 저속기어로 맞출 수 없기에 끌고 올라갔다가 타고 올라갔다가를 반복하고 있고, 현세는 체력이 좋지 않아 아예 계속 끌고 올라간다. 40분 정도 달리니 이화령이라고 쓰여 있는 터널이 나오더라. 그때의 행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이화령을 올라간다. 경사가 급하긴 해도, 못 오를 정도는 아니고 거리도 짧다.

 

 

 

苦盡甘來를 문자가 아닌 현실에서 배우다

 

현세는 자전거를 끌고 가지만 그 곁에 민석이가 함께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니 훨씬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현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론 이런 길에서도 경쟁심을 불태우며 나만 오르면 되지라고 마음을 먹을 만도 한데, 그러지 않고 함께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저 한 장면만으로도 4년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9시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출발했는데, 이화령 정상에 오른 시간은 1047분이었다. 2시간이면 넉넉잡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정도이니 자전거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별로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달리면 된다.

 

 

끌고 올라오는 현세 옆에 민석이가 자전거를 타고 함께 올라온다. 경쟁이 아닌 우정의 장이다.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

 

 

정상에는 휴게소가 있더라. 그곳에서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사서 먹었다. 바람은 상쾌했고 무언가 성취했다는 뿌듯함이 감돌았다. 이 기분은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두 산의 스케일은 달랐지만, 무언가 마음의 두려움을 넘어섰다는 것은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누구 할 것 없이 오르길 잘 했다고 말하더라. 이곳에서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미션을 해야 하기에, 잠시 쉰 후에 미션을 하기 위해 모였다.

 

 

 

이렇게 이화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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