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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 문설(文說)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허균 - 문설(文說)

건방진방랑자 2021. 11. 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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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쓴다는 건 답습하는 게 아닌 자신의 글을 쓴다는 것

문설(文說)

 

허균(許筠)

 

 

문장이란 의사를 전달하면 그뿐

客問於許子: “當世之稱能古文, 必以子爲巨擘. 吾見之其文, 雖若浩汗無涯涘, 而率用常語, 文從字順, 讀之則如開口見咽. 毋論解不解者, 輒無礙滯, 古文者果若是乎?”

余曰: “此其爲古也. 子見虞夏之典謨商之周之三誓武成洪範, 皆文之至者, 亦見有鉤章棘句, 以險辭爭工者否. 子曰: ‘辭達而已矣.’ 古者文以通上下之情, 以載其道而傳. 故明白正大, 諄切丁寧, 使聞者曉然知其指意, 此文之用也. 當三代六經聖人之書與夫黃諸子百家語, 皆爲論其道. 故其文易曉, 而文自古雅. 降及後世, 文與道爲二, 而始有鉤章棘句, 以險辭巧語, 爭其工者, 此文之厄也, 非文之至. 吾雖駑, 不願爲也. 故辭達爲主, 以平平爲文焉耳.”

 

일상어를 써서 답습한 글을 짓지 않으려 했다

客曰: “不然! 子見左氏莊子固及近代昌黎柳州歐陽子蘇長公? 其文何嘗用常語乎? 況子之文不銓古, 而滔滔莽莽焉, 是事毋乃流於飫否?”

余曰: “之數公之文, 亦何異於常耶? 以余觀之, 雖若簡若渾若深若奔放若倔奇, 率當世之常語, 而變爲雅眞, 可謂點鐵成金. 後之視今文, 安知不如今之視數公文耶? 況滔滔莽莽, 正欲爲大, 而不銓古者, 亦欲其獨立, 奚飫爲? 子詳見之數公乎?

左氏自爲左氏, 莊子自爲莊子, 自爲, 宗元亦自爲宗元, 不相蹈襲, 各成一家. 僕之所願, 願學此焉, 恥向人屋下架屋, 蹈竊鉤之誚也.”

 

나의 글엔 옛 것에서 본받은 것들이 들어 있다

客曰: “子之文旣平易流便, 其所謂法古者, 當於何求之?”

余曰: “當於篇法章法字法求之.

篇有一意直下者, 或鉤連筦鑰者, 或節節生情者, 或鋪敍而用冷語結者, 或委曲繁瑣而有法者.

章有井井不紊者, 有錯落而不雜者, 有若斷而承前繳後者, 有極宂有極短者, 有說不了者.

字有響處幹處伏處收拾處, 疊而不亂處, 強而不努處; 引而不費力處, 開闔處, 呼喚處.

字不亮則句不雅, 章不妥則意不瀆, 二者備而乃可以成篇. 余之文, 只悟此也; 古之文, 亦行此也. 今之所謂解者, 亦未必覷此, 況不解者否.”

客曰 ! 吾不及是夫.” 惺所覆瓿稿卷之十二

 

 

 

 

 

 

해석

 

문장이란 의사를 전달하면 그뿐

 

客問於許子:

손님이 나에게 물었다.

 

當世之稱能古文, 必以子爲巨擘.

당대에 고문을 잘 짓는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네를 으뜸으로 삼는다.

 

吾見之其文, 雖若浩汗無涯涘,

내가 글을 보니 비록 드넓어 끝이 없는 듯하나

 

而率用常語, 文從字順,

대체로 일상어를 써서 글이 따르고 문자가 순탄하여

 

讀之則如開口見咽.

그걸 읽으면 입을 열면 목구멍이 보이는 것 같다.

 

毋論解不解者, 輒無礙滯,

이해한 사람이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막론하고 조금도 막힘이 없으니,

 

古文者果若是乎?”

고문에 전념하는 사람이 과연 이와 같은 것인가?”

 

余曰: “此其爲古也.

내가 대답했다. “이것은 고문을 짓는 것이다.

 

子見虞夏之典謨商之

그대가 우하의 전모와 상의

 

周之三誓武成洪範,

주의 삼서무성홍범을 보면

 

皆文之至者, 亦見有鉤章棘句,

모두 문장의 지극한 것이지만 또한 글에 갈고리와 구절에 가시를 붙여

 

以險辭爭工者否.

험한 말로 기교 있길 다툰 것이 있나?

 

子曰: ‘辭達而已矣.’

공자께서 말이란 전달되면 그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古者文以通上下之情, 以載其道而傳.

옛날의 문장이란 상하의 정을 소통시키고 그 도를 실어 전하는 것이었다.

 

故明白正大, 諄切丁寧,

그러므로 명백하고 정대하며 삼감이 간절하고 간곡하여

 

使聞者曉然知其指意, 此文之用也.

듣는 이에게 밝게 그 가리키는 뜻을 알도록 하는 것이 글의 효용이었다.

 

當三代六經聖人之書與夫黃諸子百家語,

하은주 삼대의 육경과 성인의 책과 황제와 노자의 제자백가의 말에 당해서는

 

皆爲論其道.

모두 그 도를 논하였다.

 

故其文易曉, 而文自古雅.

그러므로 문장은 쉽게 깨우치지만 문장은 절로 고상하고 우아했다.

 

降及後世, 文與道爲二,

후대에 내려와 문장과 도는 둘로 나누어

 

而始有鉤章棘句,

비로소 글에 갈고리 채우고 글귀에 가시를 씌우며

 

以險辭巧語, 爭其工者,

험한 말로 말을 꾸며 기교 있음을 다투는 것이 있었으니

 

此文之厄也, 非文之至.

이것이 문장의 재난이지 문장의 지극함은 아니다.

 

吾雖駑, 不願爲也.

내가 비록 노둔하더라도 문장 꾸미길 원하진 않는다.

 

故辭達爲主, 以平平爲文焉耳.”

그러므로 말이 전달되는 것을 위주로 하여 평탄하게 글을 지을 뿐이다.”

 

 

 

일상어를 써서 답습한 글을 짓지 않으려 했다

 

客曰: “不然!

손님이 말했다. “그렇지가 않다.

 

子見左氏莊子固及近代昌黎柳州歐陽子蘇長公?

자네는 좌씨와 장자와 사마천과 반고 및 근대의 한유와 유종원과 구양수와 소식의 문장을 보았는가?

 

其文何嘗用常語乎?

그 글이 어찌 일찍이 일상어를 썼던가?

 

況子之文不銓古, 而滔滔莽莽焉,

하물며 자네의 글은 옛것을 전범으로 삼지 않아 도도하기만 하고 아득하기만 하니

 

是事毋乃流於飫否?”

이 일이 곧 자만하는 데에 흐른 게 아닌가?”

 

余曰: “之數公之文, 亦何異於常耶?

내가 말했다. “이 여러 사람의 글이 또한 어찌 일상어와 다르겠는가.

 

以余觀之, 雖若簡若渾若深若奔放若倔奇,

내가 보니 비록 간단한 듯, 뒤섞인 듯, 심오한 듯, 분방한 듯, 굳세고 기이한 듯하지만

 

率當世之常語, 而變爲雅眞,

대체로 당시의 일상어를 바꾸어 우아한 참이 되게 하였으니

 

可謂點鐵成金.

쇠를 달구어 금을 만들었다고 할 만하다.

 

後之視今文,

후대가 지금의 글을 보면

 

安知不如今之視數公文耶?

어찌 지금 여러 사람의 문장을 보는 것만 같지 않을 줄 알겠는가.

 

況滔滔莽莽, 正欲爲大,

하물며 도도하며 아득한 것은 바로 위대하게 하려는 것이고

 

而不銓古者, 亦欲其獨立,

옛것을 전범으로 삼지 않은 것은 또한 독립적이도록 한 것이니

 

奚飫爲?

어찌 자만한 것이겠는가?

 

子詳見之數公乎?

자네는 자세히 여러 사람의 문장을 보았는가?

 

左氏自爲左氏, 莊子自爲莊子, 自爲,

좌씨는 절로 좌씨가 되고 장자는 절로 장자가 되며 사마천과 반고는 절로 사마천과 반고가 되며

 

宗元亦自爲宗元,

한유와 유종원과 구양수와 소식은 또한 절로 한유와 유종원과 구양수와 소식이 되어

 

不相蹈襲, 各成一家.

서로 답습하지 않고서 각각 일가를 이루었다.

 

僕之所願, 願學此焉,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을 배우길 원하는 것이고

 

恥向人屋下架屋, 蹈竊鉤之誚也.”

남의 집 아래에 집을 얽어 답습하고 훔치며 꾸몄다는 나무람을 부끄러워한다.”

 

 

 

나의 글엔 옛 것에서 본받은 것들이 들어 있다

 

客曰: “子之文旣平易流便,

손님이 말했다. “자네의 문장은 이미 평탄하고 유창하고 익숙하니,

 

其所謂法古者, 當於何求之?”

이른바 법고(法古)라는 것을 마땅히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

 

余曰: “當於篇法章法字法求之.

내가 말했다. “마땅히 편법과 장법과 자법에서 그걸 구해야 한다.

 

篇有一意直下者, 或鉤連筦鑰者,

편에는 한 뜻으로 곧바로 쭉 써지는 것도 있고 간혹 걸어 연결함으로 열쇠 채우는 것도 있으며

 

或節節生情者, 或鋪敍而用冷語結者,

간혹 마디마디에 정을 드러내는 것도 있고 간혹 펼쳐내 냉정한 말을 써서 결론 짓는 것도 있으며

 

或委曲繁瑣而有法者.

간혹 자세하고 곡절하거나 번쇄하게 하되 법도가 있는 것도 있다.

 

章有井井不紊者, 有錯落而不雜者,

장에는 정연하게 문란하지 않은 것도 있고 섞여 있되 혼잡하지 않은 것도 있으며

 

有若斷而承前繳後者,

끊어진 듯하지만 앞에서 이어지고 뒤에서 감기는 것도 있고

 

有極宂有極短者, 有說不了者.

극도로 지리멸렬한 것도 있고 극도로 짧은 것도 있으며 말이 끝맺지 않은 것도 있다.

 

字有響處幹處伏處收拾處, 疊而不亂處,

글자는 울리는 곳, 엮인 곳, 감춘 곳, 수습하는 곳, 겹치되 어지럽지 않은 곳,

 

強而不努處; 引而不費力處,

강하되 애쓰지 않는 곳, 끌어가지만 힘을 소비하지 않는 곳

 

開闔處, 呼喚處.

여닫는 곳, 부르짖는 곳이 있다.

 

字不亮則句不雅, 章不妥則意不瀆,

글자가 해맑지 않으면 글귀는 우아하지 못하고 장이 편안하지 못하면 뜻이 헤아려지지 않으니

 

二者備而乃可以成篇.

()와 장()이 갖추어져야 곧 편()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余之文, 只悟此也;

나의 글은 다만 이것을 깨달은 것이고

 

古之文, 亦行此也.

고문이란 또한 이런 이치를 실행한 것이다.

 

今之所謂解者, 亦未必覷此,

지금의 이른바 이해한다는 사람도 또한 반드시 이것을 엿보지 못하는데

 

況不解者否.”

하물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客曰 ! 吾不及是夫.” 惺所覆瓿稿卷之十二

손님이 좋구나! 내가 이런 생각엔 미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古文고문이란 무엇인가?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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