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시만을 숭상하는 세태를 비판하다
시변(詩辨)
허균(許筠)
오늘날 사람들이 기존 시인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대해
今之詩者, 高則漢魏六朝, 次則開天大曆, 最下者乃稱蘇ㆍ陳, 咸自謂可奪其位也, 斯妄也已.
是不過掇拾其語意, 蹈襲剽盜以自衒者, 烏足語詩道也哉.
각자가 일가를 이룬 것으로 모방은 의미가 없다
三百篇自謂三百篇, 漢自漢, 魏晉六朝, 自魏晉六朝, 唐自爲唐, 蘇與陳亦自爲蘇與陳, 豈相倣傚而出一律耶. 蓋各自成一家, 而後方可謂至矣.
間或有擬作, 亦試爲之, 以備一體, 非恒然也. 其於人脚跟下爲生活者, 非豪傑也.
제대로 된 시의 조건
然則詩何如而可造極耶?
曰: “先趣立意, 次格命語, 句活字圓, 音亮節緊, 而取材以緯之, 不犯正位, 不着色相. 叩之鏗如, 卽之絢如, 抑之而淵深, 高之而騰踔, 闔而雅徤, 闢而豪縱, 放之而淋漓鼓舞. 用鐵如金, 化腐爲鮮, 平澹不流於淺俗, 奇古不隣於怪癖, 詠象不泥於物類, 鋪敍不病於聲律, 綺麗不傷理, 論議不粘皮. 比興深者通物理, 用事工者如己出. 格見於篇成, 渾然不可鐫, 氣出於外言, 浩然不可屈.
盡是而出之, 則可謂之詩也.
모방만 신경 쓰면 추함만 도드라질 뿐
彼漢魏以下諸公, 皆悟此而力守者也.
不然則雖漢趨魏步六朝服而唐言, 動御蘇ㆍ陳以馳, 足自形其穢而已, 吁其非矣. 『惺所覆瓿稿』 卷之十二
해석
오늘날 사람들이 기존 시인을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대해
今之詩者, 高則漢魏六朝,
오늘날 시를 짓는 사람들은 최고를 한나라와 위나라 육조의 시라 하고
그 다음은 당나라 시【개천대력(開天大曆):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모두 당현종(唐玄宗)의 연호이고 대력(大曆)은 당 대종(代宗)의 연호】라 하며 가장 낮은 것을 곧 소식과 진사도의 송시(宋詩)라 하며
咸自謂可奪其位也, 斯妄也已.
다 스스로 그 지위를 빼앗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망령된 것일 뿐이다.
是不過掇拾其語意, 蹈襲剽盜以自衒者,
이것은 말의 뜻을 긁어모아 답습하고 표절하는 것으로 스스로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니,
烏足語詩道也哉.
어찌 시의 도라 할 만하겠는가.
각자가 일가를 이룬 것으로 모방은 의미가 없다
三百篇自謂三百篇, 漢自漢,
『시경』 3백 편은 스스로 3백 편이었고 한나라는 스스로 한나라였으며
魏晉六朝, 自魏晉六朝, 唐自爲唐,
위진육조는 스스로 위진육조였고 당나라는 스스로 당나라였으며
蘇與陳亦自爲蘇與陳, 豈相倣傚而出一律耶.
소식과 진사도 또한 소식과 진사도였으니 어찌 스스로 모방하여 한 법칙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蓋各自成一家, 而後方可謂至矣.
대체로 각자 스스로 일가를 이룬 후에야 곧 지극하였다고 할 만하다.
間或有擬作, 亦試爲之,
간혹 본떠서 또한 시험삼아 지어
以備一體, 非恒然也.
하나의 체를 갖추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니,
其於人脚跟下爲生活者, 非豪傑也.
남의 발 아래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시의 조건
然則詩何如而可造極耶?
그렇다면 시는 어떻게 해야 최고에 나아갈 수 있는가?
曰: “先趣立意, 次格命語,
말하겠다. “의취(意趣)에 앞서 뜻을 세우고, 격조를 다음으로 하고 말을 명한다.
句活字圓, 音亮節緊,
구절은 글자가 원만하며 음절이 맑고 절주가 긴요해
而取材以緯之, 不犯正位,
소재를 취해 엮되 바른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不着色相.
색상을 붙이지 않는다.
叩之鏗如, 卽之絢如,
두드리면 쇳소리 같고 만지면 화려함 같고
抑之而淵深, 高之而騰踔,
억누르면 깊이가 있어 높이 올리면 튀며
闔而雅徤, 闢而豪縱,
닫으면 우아하고 굳세며 열면 호탕하고
放之而淋漓鼓舞.
놓으면 원기가 흘러넘쳐【임리(淋漓): 원기가 넘쳐 흐르는 모양】 고무된다.
用鐵如金, 化腐爲鮮,
쇠를 써서 금과 같이 하고 진부한 걸 변화시켜 신선하게 하며
平澹不流於淺俗, 奇古不隣於怪癖,
평범하고 담백한 것이 천박한 풍속으로 흐르지 않게 하고 기이하고 예스러운 것이 괴벽한 데로 가까워지지 않게 하며
詠象不泥於物類, 鋪敍不病於聲律,
형상을 읊은 것이 사물의 유사함에 빠지지 않고 진술한 것이 성률의 병폐가 되지 않으며
綺麗不傷理, 論議不粘皮.
화려한 것이 이치를 손상시키지 않고 논의한 것이 표피에 달라붙지 않는다.
比興深者通物理, 用事工者如己出.
비흥(比興)에 심오한 사람은 물리에 통달하고 용사(用事)에 능력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나온 것 같이 해야 한다.
格見於篇成, 渾然不可鐫,
격조는 한 편의 완성된 데서 드러나 혼연히 내칠 수 없고
氣出於外言, 浩然不可屈.
기가 말 밖에 드러나 호연하여 꺾을 수 없다.
盡是而出之, 則可謂之詩也.
이것을 다하여 글로 지어낸다면 시라 할 수 있다.
모방만 신경 쓰면 추함만 도드라질 뿐
彼漢魏以下諸公, 皆悟此而力守者也.
저 한위(漢魏) 이하의 여러 공들은 모두 이것을 깨우쳐 힘써 지킨 사람들이다.
不然則雖漢趨魏步六朝服而唐言,
그렇지 않다면 비록 한나라처럼 달리고 위나라처럼 걸으며 육조처럼 옷 입고 당나라처럼 말하며
動御蘇ㆍ陳以馳, 足自形其穢而已,
소식과 진사도를 부려 달리더라도 스스로 더러움만을 나타낼 뿐이니,
吁其非矣. 『惺所覆瓿稿』 卷之十二
아, 틀린 것이로구나.
인용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2. 개성론 / 4. 표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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