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五里霧中)
갈피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럽다
張楷字公超, 通『嚴氏春秋』ㆍ『古文尙書』, 門徒常百人.
性好道術, 能作五里霧. 時關西人裴優, 亦能爲三里霧, 自以不如楷, 從學之, 楷避不肯見.
桓帝卽位, 優遂行霧作賊, 事覺被考, 引楷, 言從學術. 楷坐繫廷尉詔獄, 積二年, 恒諷誦經籍, 作『尙書』注. 後以事無驗, 見原還家.
建和三年, 下詔, 安車備禮聘之, 辭以篤疾, 不行. 年七十, 終於家. 『후한서(後漢書)』 「장해열전(張楷列傳)」
후한(後漢) 때의 학자 장패(張覇)의 아들 장해(張楷)는 『춘추(春秋)』ㆍ『고문상서(古文常書)』 등에 정통한 학자로, 제자가 백여 명에 이르렀다. 그의 명성을 듣고 이름 있는 학자, 환관과 외척 등 세도가들이 모두 그와 가까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때 묻은 자들과 섞이기를 싫어하여 시골로 들어가 숨어 살면서, 집이 가난하고 생업이 없었으므로 항상 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소재지에 나가 약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장관들이 그를 무재(茂才)로 천거해 장릉령(長陵令)에 제수했으나 그는 끝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홍농산(弘濃山)에 은거했다. 많은 학자와 제자들이 그를 좇아 이곳으로 와, 그가 거주하는 곳에 시장이 생길 지경이 되어, 화음산(華陰山) 남쪽에는 그의 호를 딴 공초시(公超市)가 생기기까지 했다. 안제가 죽고 순제가 즉위하자 중앙에서 그를 현량(賢良)으로 천거했으나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도술에도 능해 5리 안을 안개로 뒤덮게 만들 수 있었다. 당시 관서(關西) 사람 배우(裴優)도 3리 안을 안개로 뒤덮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스로 장해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장해를 따라 배우려고 했으나 장해는 그를 만나 주지 않고 피했다. 환제가 즉위했을 때 배우가 안개를 일으켜 도적질을 하다가 체포되자 장해에게 배웠다고 진술했다. 장해는 이에 연루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옥중에서 경적(經籍)을 읽고 『상서(尙書)』의 주를 썼다.
겉뜻: 5리가 안갯속이다.
속뜻: 어떤 일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상황을 알 길이 없음. 마음이 혼란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는 뜻이다.
유의어: 암중모색(暗中摸索)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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