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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 - 함흥차사(咸興差使) 본문

역사&절기/한국사

임하필기 - 함흥차사(咸興差使)

건방진방랑자 2020. 8. 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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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차사(咸興差使)

심부름 간 사람이 오질 않는다

 

 

芳碩變後, 太祖棄位, 奔于咸興.

太宗屢遣中使, 問安, 太祖輒彎弓而待之, 前後相望之使, 未敢道達其情. 時問安使, 無一得還者.

太宗: “群臣誰可遣?” 莫有應之者, 判承樞府事朴淳, 挺身請行. 축수편(逐睡篇)

 

太祖晩年, 豐沛之戀, 禪位世子, 行北闕, 不肯回鑾. 朝廷每請奉還, 而不得請. 前後使者十輩, 皆不得還, 此所謂咸興差使也.

判承樞朴淳, 慷慨請行, 至咸興. 遙望行宮, 故以子馬繫于樹, 騎母馬而行, 馬回顧躑躅不能進. 及上謁, 上王布衣交也, 懽然道故款待. 仍問曰: “繫子馬于樹, 何也?” 對曰“ ”妨於行路, 故繫之, 則母子不忍相離. 雖微物, 亦至情也.” 固涕淚嗚咽, 上王亦汪然感涕.

一日與局戱, 適有鼠啣子, 墮屋至死, 不相捨. 復推局, 伏地而泣, 上王戚然, 卽諭回蹕之意.

辭歸, 上王曰: “亟行而已.” 行在諸臣爭請殺之, 上王不許. 度已渡龍興江, 而授使者劒曰: “若已渡江, 則勿追.” 偶得暴疾, 尙在船中, 未離崖. 遂腰斬而還, 上王大慟曰: “死何言?” 使者對曰: “但北向行宮, 呼曰: ‘臣死矣, 願毋改前言.’” 上王流涕曰: “少時良友也. 予不食疇昔之言.” 遂回鑾.

太宗之死, 驚慟, 軫恤有加, 命畵工畵其半身, 以著其實. 임하필기(林下筆記)』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해석

芳碩變後, 太祖棄位,

방석이 왕자의 난 후에 태조는 제위를 버렸고

 

奔于咸興.

함흥으로 갔다.

 

太宗屢遣中使[각주:1], 問安,

태종이 자주 중사로 안부를 묻게 했는데

 

太祖輒彎弓而待之, 前後相望之使,

태조가 대번에 활을 당겨 기다렸기에 전후의 서로 잇닿은 사신들이

 

未敢道達其情.

감히 그 정을 도달하려 말하지 못했고,

 

時問安使, 無一得還者.

이따금 안부를 묻는 사신은 한 명도 돌아오질 못했다.

 

太宗: “群臣誰可遣?”

태종이 여러 신하 중에 누굴 보내야 하는가?”라고 물었지만,

 

莫有應之者,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고

 

判承樞府事朴淳, 挺身請行축수편(逐睡篇)

판승추부사 박순이 몸을 빼어서 가길 청하였다.

 

 

 

太祖晩年, 豐沛之戀, 禪位世子,

태조 만년에 함흥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세자에게 선위하고

 

行北闕, 不肯回鑾[각주:2].

북쪽 궁궐로 가서는 대궐로 돌아오길 기뻐하지 않았다.

 

朝廷每請奉還, 而不得請.

조정에서 매번 대궐로 돌아오길 청하였지만 청대로 되질 않았다.

 

前後使者十輩, 皆不得還,

전후로 보낸 사신들이 모두 10여명인데 모두 돌아오질 못했으니,

 

此所謂咸興差使也.

이것이 말해지던 함흥차사.

 

判承樞朴淳, 慷慨請行, 至咸興.

판승추부사 박순은 강개하며 가길 청하였고 함흥에 이르렀다.

 

遙望行宮, 故以子馬繫于樹,

나직히 행궁을 바라보다가 새끼말은 나무에 매어두고

 

騎母馬而行, 馬回顧躑躅不能進.

어미말을 타고 가니 말은 고개를 돌리며 머뭇머뭇 나아가질 않았다.

 

及上謁, 上王布衣交也,

태조를 뵈었는데 박순과 태조는 포의시절부터 교제했기에

 

懽然道故款待.

기쁘게 옛일을 말하며 정성스레 대우해줬다.

 

仍問曰: “繫子馬于樹, 何也?”

태조가 새끼말을 나무에 매어둔 것은 왜인가?”라고 물었다.

 

對曰“ ”妨於行路, 故繫之,

대답했다. “가는 길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매어뒀는데

 

則母子不忍相離.

어미와 새끼가 차마 서로 이별하질 못했습니다.

 

雖微物, 亦至情也.”

비록 미물이라해도 또한 지극한 정이 있습니다.”

 

固涕淚嗚咽, 上王亦汪然感涕.

진실로 눈물 흘리며 오열하니 태조 또한 울컥하더니 감격하여 눈물 흘렸다.

 

一日與局戱, 適有鼠啣子,

하루는 박순과 바둑을 두는데 마침 쥐가 새끼를 물고 있다가

 

墮屋至死, 不相捨.

지붕에서 떨어져 새끼가 죽음에 이르자 서로 버리지 않았다.

 

復推局, 伏地而泣,

박순은 다시 바둑판을 밀고 땅에 엎드려 우니,

 

上王戚然, 卽諭回蹕之意.

세조도 근심스럽게 수레를 돌릴 뜻을 깨달았다.

 

辭歸, 上王曰: “亟行而已.”

박순이 하직하고 돌아가려 하자 태조는 빨리 가시게.”라고 말했다.

 

行在諸臣爭請殺之, 上王不許.

행재소의 여러 신하들이 다투어 죽이길 청했지만 세조는 허락질 않았다.

 

度已渡龍興江, 而授使者劒曰:

이미 용흥강을 건넜으리라 헤아리고 사자에게 칼을 주면서 말했다.

 

若已渡江, 則勿追.”

만약 이미 강을 건넜다면 쫓지 말라.”

 

偶得暴疾, 尙在船中,

박순은 우연히 갑작스런 질병에 걸려 아직도 배속에 있었기에

 

未離崖.

언덕에서 떠나지 않았다.

 

遂腰斬而還, 上王大慟曰:

마침내 박순의 허리를 베고 돌아오니 세조는 크게 통곡하며 말했다.

 

死何言?”

박순은 죽으면 무얼 말했는가?”

 

使者對曰: “但北向行宮,

사신이 대답했다. “다만 북쪽 행재소를 향해서

 

呼曰: ‘臣死矣, 願毋改前言.’”

울부짖으며 저는 죽으오니, 원컨대 앞서 한 말씀 고치지 마소서.’”

 

上王流涕曰: “少時良友也.

세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박순은 소시적 좋은 친구이니,

 

予不食疇昔之言.”

나는 예전의 말을 먹진 않으리라.”

 

遂回鑾.

마침내 궁궐로 돌아갔다.

 

太宗之死, 驚慟,

태종이 박순의 죽음을 묻고 놀라 애통해했다.

 

軫恤有加, 命畵工畵其半身,

슬퍼하고 근심하며 관직을 높여줬고 화공에게 상반신을 그리라 명하고서

 

以著其實. 林下筆記』 「文獻指掌編

사실을 드러내게 했다.

 

 

 

 

인용

고사성어

 

 

 

 

  1. 중사(中使): 궁중에서 왕명을 전하던 내시(內侍). [본문으로]
  2. 회란(回鑾): 천자가 대궐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 유의어 – 봉환(奉還), 환궁(還宮)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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