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통속적인 역사책에 싫증을 느낀 독자에게
역사라는 말을 앞에 놓고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따분하고 고리타분하다’는 부정적인 반응,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재미있는 교양 지식’이라는 긍정적인 반응. 서로 정반대 평가지만 둘 다 옳다. 역사란 옛날에 있었던 사건들을 다루는 것이니,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따분하고 고리타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역사는 철학이나 언어학과 같은 골치 아픈 인문학에 비해 그래도 쉽고 만만해 보이니, 학문 중에서는 그래도 재미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 입장 모두 옳지 않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으니, 역사란 실상 오늘의 모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사실 오늘의 일도 내일이면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역사’가 된다). 또 철학이나 언어학은 주제가 어느 정도 한정된 지식 분야지만 역사는 과거의 총체적인 모습을 다루는 학문이니, 생각만큼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는 따분하고 고리타분하기는커녕 액션 영화처럼 생생하고 박진감이 넘치며, 만만하고 쉽기는커녕 재즈 음악처럼 현란하고 난해하다.
결국 모든 게 그렇듯이 역사도 보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지금 이 ‘역사책’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를 따분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생동감 넘치는 재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역사를 만만하게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지식과 교훈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역사를 문화 유산 답사나 조상 성묘 비슷한 것쯤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뭐 이런 역사책이 다 있어?하고 노여워할지도 모르고, 역사를 토막 상식 문제쯤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책 어느 곳에서도 그런 ‘상식’을 찾을 수 없어 크게 실망할지도 모른다.
단군에서 고려까지를 상권으로, 조선 건국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를 하권으로 묶어 한국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는 이 책은, 딱딱한 역사 연구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간에 이미 많이 나도는 역사 대중서, 이른바 ‘이야기식’ 역사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에는 교과서의 지루함도, ‘이야기 역사’의 천박함도 없다. 교과서도 이야기도 아닌 이 역사책에서 독자들이 교과서에 없는 재미와 이야기에 없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지은이로서는 더 바랄 게 없겠다.
교과서를 읽을 때보다는 어깨에 힘을 더 빼고, 무협지를 읽을 때보다는 눈에 힘을 더 준다고 여기면서 읽어주기 바란다. 역사를 공부하고자 해도 대학교재 같은 식의 역사 연구서를 보면 일찌감치 기가 질리는 독자, 반대로 야사나 뒷이야기로 지면을 채우고 있는 통속적인 역사책에도 싫증을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이 좋은 역사 학습의 벗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는 누구보다 그린비 출판사 여러분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음을 밝힌다. 원래 『종횡무진 동양사』와 『종횡무진 서양사』로 끝맺으려 했던 시리즈를 한국사까지 연장하게 된 것은 유재건 대표와 김현경 주간의 애정 어린 충고와 집요한 추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9년 3월
남경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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