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명(耳鳴)과 코골기
내가 아는 걸 남이 몰라도, 내가 모르는 걸 남이 알아도 화가 난다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耳鳴)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끓는 듯, 빈 수레가 덜그덕 거리는 듯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에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하는 것이었다.
小兒嬉庭. 其耳忽鳴. 啞然而喜, 潛謂鄰兒曰: “爾聽此聲, 我耳其嚶, 奏鞸吹笙, 其團如星.” 鄰兒傾耳相接, 竟無所聽, 閔然叫號, 恨人之不知也.
甞與鄕人宿, 鼾息磊磊, 如哇如嘯, 如嘆如噓, 如吹火, 如鼎之沸, 如空車之頓轍. 引者鋸吼, 噴者豕豞, 被人提醒, 勃然而怒曰: “我無是矣.”
왜 연암은 난데없이 이명(耳鳴)과 코골기를 들고 나왔을까. 이명(耳鳴)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코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자아도취의 이명증(耳鳴症)에 걸린 꼬마이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시인들이 자신의 이명(耳鳴)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가(自家)의 코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말을 더 흉내 내면, 이명(耳鳴)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화이니, 만약 그가 병 아닌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 으스대는 양을 어찌 볼 것이며,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발끈하니, 만약 그의 병통을 지적해 준다면 그 성내는 꼴을 또 어찌 차마 볼 것이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시 자체에 빠져보라
예전 요동 땅에 정령위(丁令威)란 사람이 있었는데, 신선술을 익혀 신선이 되었다. 그 뒤 800년 만에 학이 되어 돌아왔으나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또 한(漢) 나라 때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초할 적에 뒷날 자신의 저술을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 장독대의 덮개로나 쓰일 것을 생각하며 탄식하였다. 막상 그가 죽고 나자 『태현경(太玄經)』은 세상에서 귀히 여기는 유명한 저술이 되어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렸다. 그런데 당사자인 양웅(揚雄) 자신은 이를 보지 못하고 불우하게 세상을 떴다.
세상의 시인들이여! 그대들의 시는 정령위(丁令威)의 불로장생을 원하는가. 양웅(揚雄)의 기림을 받고 싶은가. 양웅(揚雄)의 성예(聲譽)를, 살아 정령위(丁令威)처럼 누리고 싶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인용
3. 허공 속으로 난 길
5. 이명과 코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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