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의 혜근 스님 시집에 쓴 서문
전당근상인시집서(錢塘勤上人詩集序)
소식(蘇軾)
구양수의 소개로 알게 된 혜근, 그는 어진 불자였네
염량세태를 풍자한 적공은 속이 좁다
昔翟公罷廷尉, 賓客無一人至者, 其後復用, 賓客欲往. 翟公大書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世以爲口實.
然余嘗薄其爲人, 以爲客則陋矣, 而公之所以待客者, 獨不爲小哉.
구양수와 적공의 손님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故太子太師歐陽公好士, 爲天下第一. 士有一言中於道, 不遠千里而求之, 甚於士之求公. 以故盡致天下豪傑, 自庸衆人, 以顯於世者固多矣.
然士之負公者亦時有之. 蓋嘗慨然太息, 以人之難知, 爲好士者之戒. 意公之於士, 自是少倦, 而其退老於潁水之上, 余往見之, 則猶論士之賢者, 惟恐其不聞於世也, 至於負者, 則曰: “是罪在我, 非其過.”
翟公之客, 負公於死生貴賤之間, 而公之士, 判公於瞬息俄頃之際, 翟公罪客, 而公罪己, 與士益厚, 賢於古人遠矣.
혜근과 구양수의 우정
公不喜佛老, 其徒有治詩書學仁義之說者, 必引而進之. 佛者惠勤, 從公遊三十餘年, 公嘗稱之爲聰明才智有學問者, 尤長於詩.
公薨於汝陰, 余哭之於其室, 其後見之, 語及於公, 未嘗不涕泣也.
勤固無求於世, 而公又非有德於勤者, 其所以涕泣不忘, 豈爲利哉. 余然後益知勤之賢, 使其得列於士大夫之間而從事於功名, 其不負公也審矣.
후세에 전해지려 서문을 부탁한 혜근
熙寧七年, 予自錢塘, 將赴高密, 勤出其詩若干篇, 求予文以傳於世. 余以爲詩, 非待文而傳者也, 若其爲人之大略, 則非斯文, 莫之傳也.
해석
염량세태를 풍자한 적공은 속이 좁다
昔翟公罷廷尉, 賓客無一人至者,
옛날에 적공이 정위에서 파직되어 손님이 한 사람도 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其後復用, 賓客欲往.
훗날 다시 등용되자 손님이 오려 하자
翟公大書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態, 一貴一賤, 交情乃見.”
적공은 크게 문에 다음을 써놓았으니
一死一生 乃知交情 |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사귀는 정을 알고 |
一貧一富 乃知交態 | 한 번 가난해지고 한 번 부유해짐에 사귀는 세태를 알며, |
一貴一賤 交情乃見 | 한 번 귀해지고 한 번 천해짐에 사귀는 정이 드러나는 구나, |
世以爲口實.
세상에서 구실이 되었다.
然余嘗薄其爲人, 以爲客則陋矣,
그러나 나는 일찍이 사람 됨을 천박하다 여겨 ‘손님들이 누추한데
而公之所以待客者, 獨不爲小哉.
공이 손님을 대한 까닭이 유독 속이 좁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구양수와 적공의 손님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故太子太師歐陽公好士, 爲天下第一.
고 태자태사인 구양공이 선비를 좋아함이 천하의 제일이었다.
士有一言中於道, 不遠千里而求之,
선비 중에 한 말이라도 도에 맞는 게 있으면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구했으니
甚於士之求公.
선비들이 구양공을 구하는 것보다 심했다.
以故盡致天下豪傑, 自庸衆人,
이 때문에 천하의 호걸을 모두 초치(招致)하여 보통사람으로부터
以顯於世者固多矣.
세상에 드러난 사람이 진실로 많았다.
然士之負公者亦時有之.
그러나 선비 중에 구양공을 저버린 사람이 또한 때에 있었다.
蓋嘗慨然太息, 以人之難知,
대체로 일찍이 슬프게 크게 탄식하며 ‘사람은 알기 어렵다’고 해서
爲好士者之戒.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을 경계하였다.
意公之於士, 自是少倦,
‘공이 선비에 대해 이로부터 조금 느슨해지리라’ 생각했는데
而其退老於潁水之上, 余往見之,
퇴직하여 영수의 물가에서 늙어감에 내가 가서 뵈니
則猶論士之賢者, 惟恐其不聞於世也,
오히려 선비 중 어진 사람을 논하여 오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음을 걱정했고
至於負者, 則曰: “是罪在我, 非其過.”
자신을 저버리는 사람에 이르러선 “이 죄는 나에게 있지 그의 잘못이 아니다.”고 말했다.
翟公之客, 負公於死生貴賤之間,
적공의 손님이 적공을 사생과 귀천의 사이에서 저버렸고
而公之士, 判公於瞬息俄頃之際,
구양공의 선비들은 구양공을 순식간과 잠깐 사이에 떠났으며
翟公罪客, 而公罪己,
적공은 손님을 잘못했다고 했고 구양공은 자기를 잘못했다 하여
與士益厚, 賢於古人遠矣.
선비와 더욱 두텁게 대했으니 옛 사람보다 어짊이 먼 것이다.
혜근과 구양수의 우정
公不喜佛老,
공은 불교와 노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其徒有治詩書學仁義之說者,
무리 중에 시서를 전공하고 인의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必引而進之.
반드시 끌어 나오게 했다.
佛者惠勤, 從公遊三十餘年,
불자인 혜근은 공을 따라 교유한 지 30여년이었는데
公嘗稱之爲聰明才智有學問者,
공은 일찍이 그가 총명하고 재주 있으며 지혜롭고 학문을 하는 사림이고
尤長於詩.
또한 시에 장점이 있다고 칭찬했다.
公薨於汝陰, 余哭之於其室,
구양공이 여음에서 죽자 나는 그 방에서 곡하였고
其後見之, 語及於公,
그 후에 혜근을 볼 때마다 말이 구양공을 언급하면
未嘗不涕泣也.
일찍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勤固無求於世,
혜근은 진실로 세상에 구함이 없고
而公又非有德於勤者,
구양공 또한 혜근에게 덕을 입지 않지만
其所以涕泣不忘, 豈爲利哉.
눈물 흘리며 잊지 않은 까닭은 어찌 이익 때문이겠는가.
余然後益知勤之賢,
나는 그런 후에야 더욱 혜근의 어짊을 알게 되었으니
使其得列於士大夫之間而從事於功名,
만약 사대부 사이에 나열될 수 있어 공명에 종사하더라도
其不負公也審矣.
구양공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후세에 전해지려 서문을 부탁한 혜근
熙寧七年, 予自錢塘, 將赴高密,
희녕 7년에 나는 전당으로부터 장차 고밀로 부임하려니
勤出其詩若干篇, 求予文以傳於世.
혜근은 시 약간편을 내어 나의 글을 구하여 세상에 전하려 했다.
余以爲詩, 非待文而傳者也,
나는 생각했다. ‘시는 글을 기다려 전해지는 게 아니지만
若其爲人之大略,
사람 됨의 대략과 같은 경우는
則非斯文, 莫之傳也.
이 글이 아니면 전해질 수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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