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린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이슈메이커
서울에서 격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버스를 타고 부안 터미널에 와서 다시 시내버스나 시외버스를 이용해 격포로 가야 한다. 예전의 격포란 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의 격포는 서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모항母港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이라고 시에 쓰기도 했을 정도다.
9시 20분 차를 타고 부안에 도착하니 12시 20분 정도 되었다. 3시간 만에 도착한 셈이다. 그곳에서 조금 걸어서 밥을 먹고 바로 격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40분 정도 달리니 격포 터미널에 도착하더라. 거기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펜션에서 픽업을 온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 부안에서 내려 밥을 먹고 격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일의 발생이 아닌, 해결하려는 의지
그때 일이 발생했다. 아침에 터미널에 모였을 때 초이쌤은 지훈이에게 식재료(내일 아침 요리대전 때 쓸 것)가 든 장바구니를 지훈이에게 맡기며 펜션까지 날라주도록 부탁했는데, 여러 번 버스를 옮겨 타는 바람에 마지막 격포로 오는 버스에서 장바구니를 놓고 내린 것이다. 아무래도 격포에 오기까지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해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런 문제를 만들었냐고 뭐라 할 것은 하나도 없고, 어떻게 해결하려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훈이는 과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하지만 지훈이는 뒤로 빠졌고 책임전가만을 하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혼자만 들기 힘들었던지 준영이와 나눠 들기로 했고 그걸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는데 다시 지훈이가 걸린 것이다. 이런 옥신각신하는 순간이 있었기에 장바구니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장바구니를 놓고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준영이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떠넘겼다. 준영이는 그 상황이 황당했을 테지만, 지훈이가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것을 보며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부안터미널에 전화하여 상황을 알린 후 타고 왔던 차나, 터미널에서 짐이 발견될 경우 연락해주라고 말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지훈이가 “맞다! 터미널에서 확실히 짐을 가지고 버스에 탔어. 그리고 머리 위 짐칸에 올려놨던 것까진 확실히 기억 나”라고 외친 것이다. 이로 인해 짐의 소재가 분명해졌기에 준영이는 다시 터미널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고 버스가 다시 격포로 올 때 전해달라고 말해놨다.
결론적으로 장바구니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해피엔딩으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지훈이는 그게 억울했나 보다. 자신이 꼭 들어야 할 의무도 없는 장바구니를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몫을 했는데, 그에 대해 평가해주기보다 잃어버린 것까지 무한책임을 물으니 짜증난다는 것이다. 한 편으론 그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때 발생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일’이란 관념은 어찌 보면 책임의식이 있어야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 마트에서 장을 보고 왔다. 2박 3일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든든한 먹을거리들.
걷는 건 고생하자는 게 아닌, 삶을 오롯이 느끼자는 것
장바구니를 가지러 가야 했기에 첫 날 일정이 바뀌었다. 원래는 펜션부터 모항까지 걸어갈 예정이었는데, 짐도 받을 겸 모항이 아닌 격포 방향으로 걷기로 한 것이다. 잠시 펜션에서 쉰 후 둘레길을 걸을 때, 남학생들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데 여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규빈: “소저들을 위했다면 이런 식이면 아니 되옵니다.”
송라: (펜션을 나와 10분 정도 걸으니) “예까지 걸었으면 충분히 걸은 것이오니, 이만 귀가하는 게 마땅한 줄 아뢰오. 이렇게 멀리까지 걸어야 하는 건 사내들을 위한 계획이라 사뢰되오.”
건빵: “어인 안전이라고 그런 막말을~ 사내들을 위한 계획이었다면 4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계획했을 터이다. 소저들을 생각해서 그나마 1시간 걸어 1시간 돌아오는 일정으로 줄인 것이니 그리 아시오.”
송라: “소저들을 위하는 것이었다면 아예 걷지 않는 것으로 했어야 맞는 줄 아뢰오.”
예측 가능했던 반발이다. 그렇기에 감정의 동요는 없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격포터미널까지는 걸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같이 걸은 것이다. 남학생들은 이젠 걷는 것엔 도가 튼 모습이다. 작년 남한강 도보여행을 하면서 주구장창 걸었던 터라 함께 이야기를 하며 신나게 걸었다. 비가 한 방울씩 내리고 있지만 폭우가 쏟아질 정도는 아니어서 오히려 걷기에 좋은 정도였다.
격포에서 다행히도 짐을 받고 적벽강까지 가려 하다가 그러면 너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그냥 격포항만 둘러보고 돌아오는 것으로 했다.
걷는다는 게 불이익이 되는 구조
격포항엔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그곳을 둘러보며 바다에 놀러온 기분을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1시간여를 걸어야 했다. 남학생들은 당연한 듯 걸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걸어가고 있는데, 차 한 대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우리 먼저 간다”라는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알고 보니 여학생들이 히치하이킹을 해서 숙소로 먼저 간 것이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물론 다함께 걸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여학생들이 먼저 갔다고 해서 우리가 손해를 본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 몇 명의 학생들에게서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거 같이 걸어가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예요? 그런데 쟤네들은 자동차를 타고 가고 우리는 걸어가는 것이니 불공평해요”, “이럴 거면 계획이란 게 왜 있어요? 당연히 계획을 어긴 것이니 어떤 벌칙을 줘야 해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런 반응들에 깜짝 놀라서 “우리가 걸어서 간다는 게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불이익이죠. 누군 힘들게 걷고 누군 편하게 차를 타고 가고 이게 말이 되나요?”라고 말한다. 다음 후기에서 ‘걷는 것’에 대해 본격적으로 썰을 풀 테지만, 누구 할 것 없이 걷는다는 게 ‘힘듦’이거나, ‘고난’이거나,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 격포항을 둘러 보고 돌아왔다. 비는 한 방울씩 내리지만, 운치는 어느 것에도 비할 수가 없다.
‘갤럭시 그랜드 맥스’가 그랜드(완전한)인 이유?
펜션에 도착해서는 바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함께 식도락을 즐긴다는 데 있다. 특히 한참 걷고 난 후 허기가 밀려올 때 먹는 음식은 ‘시장이 반찬’이란 말처럼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역시나 이날 저녁에 구워 먹는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먹는 양이 줄어선지 사온 고기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 맛있게 고기를 먹고, 또 우리들만 있는 변산반도 해안가를 열심히 뛰어다녔다.
펜션엔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기에 맘껏 뛰놀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아이들도 고기를 먹어 소화도 시킬 겸 아이들처럼 뛰어 놀았다. 승빈이를 놀리니 승빈이는 민석이를 쫓아가고 민석이는 피하려다가 ‘갤럭시 그랜드 맥스’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을 가진 폰을 떨어뜨렸다. 이미 여러 번 내동댕이쳐져 액정에 잔금이 가고 스마트폰 상단부엔 기판까지 드러날 정도로 망가졌다. 이미 응급처치의 상황을 넘어선 ‘하루 이틀’ 시한부 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폰을 무려 두 번이나 지구에 운석이 충돌하듯 엄청난 스피드로 자유낙하 시켰다. 순식간에 배터리는 저 멀리, 뒷 커버는 더 멀리 남남이 되었다. 과연 이번에도 켜지는 기적을 보여줄까? 이게 웬 걸 ‘당신이 무엇을 기대했건 그 이상’이란 걸 과시하기라도 하듯 일초의 오차도 없이 바로 켜졌다. 예전에 피처폰 시절에 자동차 사고가 나 모든 전화가 고장 난 상황에서 애니콜만 멀쩡했다 하여 ‘이건희폰’이란 별명이 붙었다는데, 민석이의 이 폰도 ‘갤럭시 그랜드 맥스’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킹왕짱짱 폰이었던 것이었다.
이걸 보며 며칠 전 라이딩 때 중심을 못 잡고 넘어져서 바지 주머니에 넣어뒀던 폰이 부서진 상황과 겹쳤다. 그 폰도 삼성폰이었지만, 한 번의 실수로 수명을 다한 것이니 말이다. 이런 경험을 했던 지훈이는 “이 폰(민석이 폰)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폰이다. 난 다른 폰이 아닌 내구성이 완벽히 검증된 이 폰을 민석이에게 고가에 사겠다”라고 목청 높여 이야기했다.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상황 속에 잘 희화화시켜 묘사한 지훈이의 센스가 잘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밤이다. 아이들은 12시까지 369, 마피아, 왕게임을 하며 여행 첫 날의 감흥을 함께 즐기다가 잠에 들었다.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산산이 부서진 갤럭시 그랜드 맥스여!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안 격포여행기 - 4. 우의를 입고 칼국수 먹으러 왔어요 (0) | 2019.10.21 |
---|---|
부안 격포여행기 - 3. 함께 먹을 아침을 손수 만들다(15.10.01.목) (0) | 2019.10.21 |
부안 격포여행기 - 1. 나의 역사가 스민 부안을 교사가 되어 다시 찾다(15.09.30.수) (0) | 2019.10.21 |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목차(15.10.04~10) (0) | 2019.10.21 |
낙동강따라 한강까지 자전거 여행기 - 53. 닫는 글: 반복의 힘을 아는 그대, 사라지지 말아요 (0) | 2019.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