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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격포여행기 - 8. 새벽에 변산을 산책하며 뿌듯함을 느끼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부안 격포여행기 - 8. 새벽에 변산을 산책하며 뿌듯함을 느끼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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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새벽에 변산을 산책하며 뿌듯함을 느끼다

 

 

아이들은 옆방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 나는 이불을 펴고 누워 여행기를 쓴다. 이런 식으로 함께 여행을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좋다. 하지만 어차피 이곳은 남학생들의 방이기에 완벽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피곤하다고 편하게 잘 수도 없다. 아이들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리고 떠드는 소리가 밤 깊도록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인지, 밤새도록 놀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더라.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함께 게임하는 분위기는 깨졌고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학생 몇몇은 핸드폰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몇몇은 밖으로 나갔다. 교사로서는 차라리 아이들이 한 공간에 모여 노는 것이 속편하고, 뿔뿔이 흩어져 개인행동을 하는 것은 신경 쓰인다. 아무래도 한 곳에 있을 경우 무슨 일이 있나 금방 알 수 있지만, 개인행동을 하면 일일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설혹 어떤 사고라도 날 경우, 문제가 커지게 된다.

 

 

 아이들은 흩어졌다. 오늘 새벽은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뜻밖의 제안 & 교사된 뿌듯함

 

여학생들은 모두 방으로 가서 잠을 자고 남학생들만이 두 부류로 나눠져 있었다. 지훈, 준영이는 한 방에 모여 음악을 들으며 담소를 나누고, 민석, 현세, 승빈이는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그 때가 새벽 114분쯤이었는데 갑자기 내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비몽사몽하고 있던 때라 뭔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보니 민석이가 전화를 한 것이었고, 받아보니 같이 산책하실래요?”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터라 당연히 오케이를 외쳤다. 그래서 산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민석이가 들어오더니 방에 있던 아이들에게도 산책을 가자고 권유한다. 그러자 금방 밖에 나갔다가 왔어라고 지훈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로써 세 명의 아이들과만 새벽 늦은 시간에 변산반도를 산책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비 그친 가을하늘을 보고 있다. 잘 찍히지 않은 사진이 원망스럽지만, 기분마저 맑게 씻긴 느낌이었다.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수요일에 변산에 온 이후 이틀 내내 찌푸린 날씨에 비까지 내리다 보니, 비 오는 날의 운치는 좋았으나 기분은 축축 쳐졌다. 하지만 이날 새벽엔 비 갠 후의 청명한 가을의 밤하늘이 보였고 세상은 비로 맑게 씻겨져 더 깨끗하게 보였으니 말이다. 이틀 내내 왜 걸어야 해?’라고 불만을 토로하던 아이들과 크고 작은 부딪힘이 있었고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이 날은 아이들이 직접 나서자고 한 것이니, 묘한 흥분이 감돌며 마음에 평화가 내려앉았다. 아이들이 직접 가자고 한 것이기에 부딪힐 이유도,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욕심을 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의기투합한 그대로 걷고 싶은 대로 맘껏 걷다가 미련 없이 그냥 돌아서서 펜션으로 돌아가면 그 뿐이었다.

새벽에 아무런 부담도 없이 걷는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우린 편하게 이야기를 하며 모항 쪽으로 걸었고 무려 2.3km를 왕복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지만, 그 때만큼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렇게 좋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문뜩 2년 전에 망상해수욕장에 갔던 일이 생각나더라. 저녁에 부대찌개를 해서 먹고 아이들은 티비에 빠져 숙소에 그냥 있고 싶어 했지만 밤바다를 같이 보고 싶었던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억지로 산책을 나왔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산책을 해야 했던 그때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산책을 하는 지금은 확실히 달랐다. 더욱이 민석이는 신발이 젖어 어쩔 수 없이 욕실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욕실 슬리퍼는 딱딱하고 지압을 위한 돌출물이 있어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그런데도 민석이는 뭔가 아쉬운 생각이 들었던지 더 멀리 가자고 하더라.

 

 

밤에 걸어 간 거리. 만만치 않은 거리인데 그 시간이 그렇게 유쾌했다.

 

 

근데 그 변화란 갑작스럽게 찾아 왔다기보다는 어제 하루 종일 펜션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좀이 쑤셔서 그런 것과 관련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사람은 편하다고만 느끼지 않고, ‘이렇게 시간을 허투루 보내도 되나?’라는 생각,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갑갑하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산책을 가자는 제안을 한 것이며, 나온 마당에 조금이라도 더 걷자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쉬었다고 활동적인 제안을 하는 건 아니다. 이 아이들처럼 그 갑갑증을 털어내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방 안에서 음악을 듣는 아이들(이들도 잠시 산책을 하긴 했다)처럼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난 그걸 체질에 따른 행동이라기보다 주변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자신의 행동도 달라진다고 보고 싶다. , 어떤 사람들과 있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새벽 시간의 운치를 만끽한 삼총사.

 

 

 

사람은 누구나 주변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와 있느냐에 따라 나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는 자연히 산책길에 나누었던 우이도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번 여름방학에 주원, 민석, 지훈, 현세는 우이도로 일주일간 여행을 갔었다. 그냥 편히 쉬다오자는 컨셉으로 여행을 간 것이다.

이 때 주원이와 민석이가 한 방을, 지훈이와 현세가 다른 방을 썼는데 두 방의 차이는 확연했다고 하더라. 한 방은 너무도 청결하게 치워 있었고 짐 정리도 잘 되어 있었는데, 다른 방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옷가지가 널브러져있고 해변의 모레가 가득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방에선 고린내가 진동했고 심지어 그 방 아이들은 잘 씻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방에서 생활했던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저는 옆에 있는 사람의 영향을 잘 받는 타입이라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같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저도 그렇게 행동하게 되더라구요라고 대답한다. 어찌 보면 이 말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심리가 담겨 있다. 주위 사람들과 동화되고 싶어 하는 심리이고, 혼자 튈까봐 전전긍긍하는 심리 말이다. 씻지 않는 분위기, 그리고 어지럽히는 분위기인데 그럼에도 자기 혼자 청결한 척, 치우는 척한들 그건 재수 없는 행동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아이들이 일주일간 생활했던 우이도의 숙소와 씻는 곳의 풍경.

 

 

주변 환경에 동화하고자 하는 심리를 뭐라고 꾸중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과 함께 할 때 자연히 주변을 정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며, 자신을 청결히 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덧붙여 그런 인식은 어떤 강압적인 상황이나 분위기로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결벽주의자 곁엔 그에 반감을 느껴 오히려 지저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의 동화하고자 하는 기본 심리와 함께 같은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이화 또한 있음을 알고 결국 어떤 부분이 그 학생에게 필요한 것인지 알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극단적인 결벽주의자인 아이에겐 그런 긴장도를 낮출 수 있도록, 지저분하여 씻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겐 어느 정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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