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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부안 격포여행기 - 9. 안녕 변산, 안녕 변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부안 격포여행기 - 9. 안녕 변산, 안녕 변산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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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안녕 변산, 안녕 변산

 

 

현세가 단재학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올해 6월까진 승빈이와 여러 번 충돌했다. 난 지금껏 현세가 승빈이를 편하게 생각했기에 그런 줄만 알았는데,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전혀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새벽 산책을 하다보니 평소엔 말하지 않던 걸 말하게 된다. 이게 새벽 산책의 즐거움.

 

 

 

시간의 더께만큼 돈독해진다

 

그 땐 다른 뜻은 없었고 건호 형과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려면 그 사람의 사고방식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분명 사람 관계에 있어서 나를 남에게 맞추거나, 남을 나에게 맞추는 방법들이 있다. 아마도 그 절충점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계를 유지하는 핵심일 것이다. 현세는 이때 상대방에게 100% 맞춰주는 것을 택했고 친해지고자 하는 상대방이 지닌 관점을 그대로 자신에게 주입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그대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이유도 없이 싫어했다. 현세가 여태껏 관계를 맺어온 방식이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생각에서 많이 벗어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땐 정말 미안해라며 승빈이에게 사과했다.

 

 

2년 전 [지리산 종주] 때 현세. 이 때만해도 어떻게든 승빈이와 부딪히곤 했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역지사지易地思之란 그 상황에 닥쳐 봐야만 겨우 느끼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역지사지 해보라고 말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는 역지사지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억지로 그 상황에 가 닿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라는 착각으로 관계는 더욱 꼬여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자기 스스로는 이해했다고 넘겨짚게 되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의식적인 역지사지를 통해 이해하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표현해야 맞다. 하지만 현세는 단재학교에 동생이 들어와 자신을 형 대접해주지 않는 상황이 되자 형 노릇의 힘듦을 경험해 볼 수 있었고, 그제야 겨우 승빈이의 기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사람 사이엔 시간을 함께 겪어내는 것만이 해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럴수록 이해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지며 친근감도 짙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기에 새벽 산책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엔 어쩌다 보니 비포장길로 가게 되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아마도 짜증을 냈을 것이고, 더욱이 욕실 슬리퍼로 지압 효과를 느끼며 걷던 민석이도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에 누구도 짜증을 내지도, 험한 길로 간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다. 펜션에 도착하니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출출했기에 저녁에 먹다 남은 통닭으로 간에 기별을 하고 누웠다.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낸 아이들은, 그만큼 서로에게 귀한 관계들로 남았다.

 

 

 

안녕hi 변산, 안녕bye 변산

 

아침 830분에 모두 일어났다. 9시에 식당에 예약이 되어 있어 씻을 겨를도 없이 바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부안에서 격포로 올 때 보니 여기저기 식당에 백합죽이란 메뉴가 있더라. 이곳에선 백합죽이 유명한가 보다. 그래서 이 날 아침에 백합죽을 먹었고 준영이만 백합탕을 시켜서 먹었다. 보길도에서 돌아오던 날 아침엔 전복죽을 먹었는데, 이번엔 백합죽을 먹는 것이다. 역시 씹는 재미가 없는 죽에 씹히는 맛이 일품인 탱글탱글한 백합살이 잔뜩 들어가니 식감이 일품이다. 백합탕도 양이 많았기 때문에 우린 탕과 죽을 번갈아 가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정말로 맛있던 그 날의 아침. 해산물로 한 죽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이젠 23일 동안 머물렀던 숙소를 정리하고 떠나면 된다. 남학생 방은 온통 어질러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여학생들과 함께 게임을 하며 놀았고 사온 과자들도 까서 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특히 현세가 말레이시아에 다녀오면서 사온 망고젤리 봉지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있고 아이들이 먹은 과자 봉지와 과자 부스러기들이 장판 곳곳에 널려 있다. 그걸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 1015분부터 콜택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1030분에야 방을 모두 정리하고 탈 수 있었다.

이제 정말 23일간 지냈던 변산반도와 이별이다. 나의 현재와 과거 모두를 아는 그곳을 다시 떠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한 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 그리고 지금의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난 후엔 한 때의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때 지금을 입가의 미소를 띤 채 추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이번 여행은 만족이다.

 

 

우리도 언젠가 '한 때'로 기억되는 지금을 추억할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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