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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3.6 이수광, 송풍(宋風)의 모방과 산문화를 비판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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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 3.6 이수광, 송풍(宋風)의 모방과 산문화를 비판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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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수광의 송풍(宋風)의 모방과 산문화를 비판하다

 

 

송풍의 모방을 비판하다

 

이수광은 또한 소식과 황정견의 시에 대해서도 시의 자구선택, 시구의 정확성, 구법과 대구에 관한 문제 등에 대하여 평하고 있다. 우선 소식의 시의 자구 선택문제에 대한 평을 보도록 하자.

 

 

당나라 유가(劉駕)조행(早行)시에 이르기를 말 위에서 남은 꿈을 계속 꾸다가, 말이 울 때마다 다시 놀란다.”라고 하였다.

소식이 이것을 모방하여 말하기를 말 위에 서 우뚝 남은 꿈을 꾸다, 아침 해가 올라온 것을 알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 자세히 음미하여 보면 잘됨과 졸렬함이 저절로 드러난다. 그리고 동파의 올잔몽(兀殘夢)”이라고 한 ()”자를 후인이 나무라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唐劉駕早行詩云: ‘馬上續殘夢, 馬嘶時復驚.’

東坡效之曰: ‘馬上兀殘夢, 不知朝日昇.……

細味之, 工拙自見. 兀殘夢, 後人有譏之者, 是矣.

 

 

유가(劉駕)의 시와 소식이 모방하여 지은 시를 들어 비교함으로써 시의 우열을 평가하고 송시에 나타나는 모방하여 시를 짓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소식 시의 자구 선택이 정확하지 못함을 비평하였다.

 

 

 

송풍의 산문화를 비판하다

 

소동파의 시에 이르기를 그대들은 유독 그 맛을 알지 못하니, 내가 이제 다시 맞춰 보겠네.’라고 하였다. 예전부터 기묘한 대구로 여긴다. 이것을 사륙문의 짝수 대구로 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에 쓰는 것은 구법이 속된 것 같고 자연스러운 성정 표현도 또한 얕다. 당나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렇게 글귀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東坡詩曰: ‘公獨未知其趣耳, 臣今時復一中之.’ 古今以爲奇對.

然此爲四六偶對則好矣, 用之於詩, 則句法似俗, 而天機亦淺; 唐詩則必亦不如是作句矣.

 

 

이 부분은 소식 시의 산문적 성격을 비평한 것으로 송시 특징 중의 하나인 시의 산문화 문제를 비평한 것으로 이수광이 송시(宋詩)가 당시(唐詩)만 못한 이유로 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황정견에 대해서는 시의 자구선택, 습작문제에 대하여 비평을 가하였다. 시의 자구문제에서는 악양종괴파서(樂羊終愧巴西)’라는 시구 중에서 진서파(秦西巴)’는 사람이름인데 이것을 거꾸로 파서(巴西)’라고 쓴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비평하였다위의 책, 2권의 芝峯類說, 102, “山谷詩: ‘樂羊終愧巴西.’ 按秦西, 巴人, 姓名倒作巴西, 則未穩.”. 습작문제에 있어서는 황정견이 왕유의 연지행(燕支行)을 모방하여 지은 것에 대하여 비평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유의 시에 칼을 뽑아서 천교의 팔을 베고, 돌아오는 안장 위에서는 함께 월지의 두개골로 술을 마셨네.”라고 하였다.

산곡이 이것을 습용하여, “장막 속에서 흉노의 팔을 베고, 군대의 앞에서 다시 월지의 두개골로 술을 마신다.”라고 하였다. 악중(幄中)과 군전(軍前)이라는 네 글자만을 바꿨으나 우열이 스스로 판이하다.

산곡의 시에 또, “돌아오는 안장에 월지를 거꾸로 달았네.”라고 한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王維詩: ‘拔劍已斷天驕臂, 歸鞍共飮月支頭.’

山谷用之曰: ‘幄中已斷匈奴臂, 軍前更飮月支頭.’ 只換幄中’‘軍前四字, 而優劣判矣.

山谷詩又曰: ‘歸鞍懸月支.’ 則尤不成語矣.

 

 

이는 황산곡의 환골탈태법의 한계를 비판한 것으로 시의(詩意)는 그대로 취하고 자구(字句)만을 바꾸어 자신의 뜻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시가 지어진 전체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자구만 바꿀 때의 시의의 졸렬함을 지적한 것이다.

 

 

 

존당파는 당시엔 소소한 비평을 가했지만 송시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다

 

지금까지 존당파(尊唐派) 문인(文人)들의 이백두보, 소식과 황정견에 대한 평론을 살펴보았다. 그 논의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의 문인들은 이백과 두보에 대하여서는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잘못된 점에 대하여서는 과감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비평을 가하였다. 그 중 이백시의 뛰어난 점은 내용적 측면에서는 시의(詩意)의 풍부함, 표현적 측면에서는 자연(自然)스러움, 풍격의 측면에서는 표일(飄逸), 준일(俊逸), 고창(高暢) 등이다. 두보시의 뛰어난 점은 내용적 측면에서는 성정(性情)의 표현, 표현적 측면에서는 사의(詞意, 함축적 표현), 정확성, 조탁미, 풍격의 측면에서는 기일(奇逸), 침웅(沈雄) 등이라고 하였다嚴羽滄浪詩話에서 두보는 이백의 飄逸함을 할 수가 없고, 이백은 두보의 沈鬱함을 할 수가 없다.(子美不能爲太白之飄逸, 太白不能爲子美之沈鬱.)”라고 하였는데, 이를 본문의 내용과 비교해보면 이백에 대한 풍격으로 飄逸은 동일하고 두보 시의 풍격에 대하여는 沈雄沈鬱이라고 하여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한국시화에서는 두보 시의 웅장한 풍격을 추가한 점이다..

 

반면에 존당파 문인들의 소식과 황정견에 대한 평은 소식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당시(唐詩)가 우위에 있음을 전제로 하여 소식시의 훌륭함을 논하였고 황정견에 대한 평에 있어서는 강서시파의 병폐로 알려진 환골탈태법에 대하여 비평을 가하였으며, 송시의 폐단으로 의론으로 시를 지었다는 비평은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지적되었다. 따라서 이백과 두보에 대한 비평은 존당의 관점에서의 비평이기 때문에 옥의 티를 찾아내는 소소한 것에 대한 비평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식과 황정견에 대한 비평은 존당의 관점에서 송시의 특징이자 당시에 비교되는 상대적 약점을 비평한 것으로 근본적인 큰 문제에 대한 비평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절에서는 한국시화(韓國詩話)에 나타난 존당파(尊唐派)ㆍ존송파(尊宋派)의 평론연구(評論硏究)두보, 소식과 황정견에 대한 비평을 살펴보도록 한다.

 

 

 

 

 

 

인용

목차

한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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