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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29장 - 6. 몸의 진리를 세계로 확장하라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29장 - 6. 몸의 진리를 세계로 확장하라

건방진방랑자 2021. 9. 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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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몸의 진리를 세계로 확장하라

 

 

징저서민(徵諸庶民)’

문장의 의미를 계속 파악해 봅시다. 몸에 그 근본을 두고[本諸身] 이제 그것을 즉 뭇사람[庶民]에게서 징험한다[徵諸庶民]’ 왜 그래야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메디컬 셀프, 즉 몸이라는 것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나와 같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여러 사람의 몸에서,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도와 같은 도가 일어나고 있는가 어떤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뭇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공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것이 저들의 몸에서도 같게 느껴지는가를 증험해보라는 것이죠. 이렇게 증험을 했으면 다음에는 이제 어떻게 하나?

 

 

고제삼왕이불류(考諸三王而不謬)’

중용(中庸)은 계속 말합니다. 그렇게 했으면 이제 그것을 삼왕(三王)에게 상고해 보라![考諸三王].” 여기서 삼왕(三王)이라는 것은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성왕(聖王)으로 보통 번역하는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아니므로 일단 그런 식으로 해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ㆍ은()ㆍ주() 삼대의 성현에게 그것을 상고해 보아도 틀림이 없는가[考諸三王而不謬]?” 이 말은 앞의 말과 계속 연결 지어 해석한다면, 내가 내 몸에서 깨달은 진리를 먼저 주변의 동포들에게 확인을 하고, 그러고 나서 다음에는 그것을 역사적으로 끌고 올라가서 역사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문명의 작자(ideal cultural hero), 예악(禮樂)을 제작한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제작한 예악(禮樂)에 증험해 보아도 문제가 없는가를 확인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진리를 역사적으로, 통시적으로 증험해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문제가 없다[而不謬]! 그러면 다음엔 어디까지 가느냐?

 

 

건저천지이불패(建諸天地而不悖)’

이젠 역사를 넘어가서 천지(天地)의 세계, 즉 자연의 세계로 가라! 내 몸에서 깨달은 진리를 이제는 하늘과 땅에 세워보아라! 그래도 틀림이 없는 가를 확인해라[建諸天地而不悖]! 참 대단한 말입니다. ‘라는 존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서 깨달은 진리를 이젠 천지(天地)에 증험해보고 그래도 틀림이 없는가를 확인해라! 우리는 길거리를 지나면서 풀 한포기를 쳐다 볼 적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에도 한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나는 내 몸의 피가 굳어서 딱딱해지는 것을 보면서 녹슨 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있는 피가 굳은 것이나, 저기 있는 쇠가 녹이 슬어 붉게 산화된 거나 결국은 같은 철 때문이었습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가능성은, 내 몸에 있는, 내 몸을 구성하는 모든 무기물. 유기물은 천지(天地)에 그대로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의 법칙과 천지(天地)의 법칙이 다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천지(天地)에서 오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내 몸을 구성하는 영양분(nutriment)들은 전부 다 천지(天地)를 구성하는 영양분들입니다. 따라서 천지(天地)를 살리는 법칙과 내 몸을 살리는 법칙들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질저귀신이무의(質諸鬼神而無疑)’

이제 이 대자연의 세계에도 징험을 해보았다. 이젠 뭐가 남았는가. 다 끝난 것이 아닌가? 이 정도했으면 군자지도(君子之道)로서 충분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중용(中庸)은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것을 다시 귀신(鬼神)에게까지 가져가서 물어봐라! 그래도 의심이 없는가를 확인해라[質諸鬼神而無疑]! 그런데 귀신(鬼神)이란 것은 무엇입니까? 귀신장(鬼神章)을 강의할 때도 설명했지만, 주자 주()를 보면 주자(朱子)는 이 귀신(鬼神)이라는 것이 천지가 조화를 부리고 난 그 흔적[天地造化之迹]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귀신(鬼神)이라는 것은 천지의 현실태가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invisible) 천지의 조화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귀신(鬼神)이 이러한 것이라면 중용(中庸)의 이 말은 이제는 보이는 생명의 법칙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귀신(鬼神)의 세계에까지 그것을 질문해보라는 것이 되는 것이죠. 그래도 의심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

중용(中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면, 백세 이후에 성인(聖人)이 다시 나오는 것을 기다려도 의혹됨이 없다[百世以俟聖人而不惑]! 이것은 참으로 유명한 말입니다. 한 세대를 30년 잡는다면 백세(百世)3천년이 되는데, 이 말은 ‘3천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흐른 후 그때 성인(聖人)이 다시 나와서 이 내가 생각하는 바를 그들이 다시 비판하고 그들이 다시 써보려고 해도 의혹되는 바가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해 본다면,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만들 때(작예악作禮樂), 최소한 3천년을 유지할 수 있는 불변성을 가지는 그러한 진리가 아니면, 그리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함부로 제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유교(儒敎)에서는, 경망스럽게 이런 제도 만들고 저런 제도 만들고 함부로 역사에다가 까불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여기서 다시 유명한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의 말을 상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聖人이 다시 일어난다 해도 이 내말은 변화시킬 수 없다[聖人復起 不易吾言矣]!” 중용(中庸)에서는 맹자(孟子)가 항상 하는 성인(聖人)이 다시 나온다 해도 이 내 말은 바꿀 수 없다!”는 말에 서려 있는 것 같은 이런 깡다구가 없으면 진리라고 까불지 말라는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교(儒敎)의 경전이 말하는 진리는, 백세로서 성인(聖人)을 기다려도 의혹되는 것이 없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참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악(禮樂)을 작()한다는 것, 우리가 어떤 문명을 다시 일으킨다는 것, 왕천하(王天下)한다는 것, 천하를 다스린다 하는 문제는 이러한 군자지도(君子之道)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28에서 말했던 여러 가지 것들의 의미가 명료해졌을 것입니다. 역시 이러한 군자지도(君子之道)는 단순히 상()에서 얻는 것도 아니요 하()에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 요새 최근에 무슨 누가 이상한 학설을 만들었다, ~ 갈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1908~2006)의 이론이 좋다, 3의 물결을 주장한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의 학설이 좋다~ 그런데 중용(中庸)에서는 그런 하언(下焉)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순 가지고 되냐? 그런 상언(上焉)도 무증(無證)이어서 안 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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