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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향랑 시신을 찾아서
是處偏近竹林祠 | 이곳은 죽림사 근처이니 |
江上高碑名砥柱 | 강가의 높은 비석 이름은 지주비 1다. |
吉子當年餓首陽 | 길재 2는 그 당시에 아사한 백이숙제처럼 금오산에 은거하여 |
淸風萬古只此土 | 맑은 유풍이 오래도록 이 땅에 이어져 |
娘生卑微能知義 | 향랑은 미천하게 태어났음에도 의리를 알아서 |
捐身得地何其奇 | 몸을 버림에 마땅한 땅을 얻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
樵女傳衣送阿爺 | 나무꾼 계집아이는 전해 받은 옷을 아버지께 전송하니 |
浹旬號哭循江湄 | 열흘 동안 부르짖고 곡하며 강가를 맴돌았네. |
層波嗚咽江鳥啼 | 층층의 파도 오열하고 강의 새도 우니 |
江上招招魂有知 | 강가에서 부르고 부르자 혼도 알았던지 |
阿爺旣去尸載浮 | 아비 떠난 뒤에 주검이 떠올랐는데 |
單衫被面顔如故 | 홑적삼으로 가린 얼굴, 예전 그대로였다. |
인용
- 지주비(砥柱碑): 조선 선조(宣祖) 14년(1586) 인동현감(仁同縣監) 유운룡(柳雲龍)이 감사(監司) 이산포(李山甫)와 선산부사(善山府使) 유덕수(柳德粹)의 도움을 받아 선산(善山)에 세운 고려 충신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유적비(遺蹟碑). 전면(前面)은 중국사람 양청천(楊晴天)이 '지주중류(砥柱中流)'라 쓰고, 음기(陰記)는 유성룡(柳成龍)이 썼다. 『冶隱集』 下卷 「砥柱碑陰記」 / 『西厓集』 「碑碣ㆍ年譜」 [본문으로]
- 길재(吉再, 1353 공민왕 2 ~1419 세종 1):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ㆍ금오산인(金烏山人). 이색ㆍ정몽주ㆍ권근 등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이색(李穡)ㆍ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이라 불림. 우왕이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다가 강릉으로 옮긴 후 살해되자, 전에 모시던 왕을 위하여 채과(菜果)와 혜장(醯醬) 등을 먹지 않고 3년상을 지냈다. 새로운 왕조에 참여할 뜻이 없었던 그는 고향에 머물면서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 후진을 양성했다. 『冶隱集』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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