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②
예전 선승들은 깨달음을 묻는 제자에게 봉(棒)이나 할(喝)을 안겨주거나, 아니면 아예 주먹질을 하는 등의 방법을 썼다. 그도 저도 안 될 때에는 시법게(示法偈)를 남겼는데, 그 깨달음의 세계란 것이 워낙에 미묘하고 알기 어려운 것이어서 구체적인 설명 대신에 앞서 본 것과 같은 해괴한 상징과 비유를 동원하여 그들의 오성(悟性)을 열어주려 하였다. 그밖에 도를 깨닫는 순간의 느낌을 노래하는 오도송(悟道頌) 같은 것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깨달음의 경지를 비유와 상징의 화법으로 전달하려 하였다. 선(禪)의 사유와 시(詩)의 방법은 이 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고려 때 선승 경한(景閑)은 「조사선(祖師禪)」이란 글에서 시와 선이 만나는 지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달마(達摩)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아득히 강남 땅 2,3월을 생각자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 향기롭네[遙憶江南三二月, 澝嘑啼處百花香].”라고 대답한다. 또 스님이 “조사(祖師)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대답하기를, “뉘엿한 해에 강과 산은 곱기도 하고, 봄바람에 꽃과 풀은 향기롭구나[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라고 한다. 또 이르기를, “산꽃이 활짝 피자 비단만 같고, 시냇물은 쪽빛보다 더욱 푸르다[山花開似錦, 澗水碧於藍].”라고도 한다.
이것을 묻는데 저것을 대답한다. 도무지 요령부득의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그러면서도 성동격서(聲東擊西), 지상매회(指桑罵檜)의 통쾌함이 있다.
다음 선승(禪僧)들의 몇 편 시는 선기(禪機)와 시취(詩趣)가 한데 넘나, 시선일여(詩禪一如)의 높은 경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경우이다.
飢來喫飯飯尤美 | 배고파 밥 먹으니 밥맛이 좋고 |
睡起啜茶茶更甘 | 일어나 차 마시니 차맛이 달다. |
地僻從無人扣戶 | 후진 곳 문 두드리는 사람도 없어 |
庵空喜有佛同龕 | 텅 빈 암자 부처님과 함께 함이 기쁘다. |
충지(沖止)의 「한중우서(閑中偶書)」란 작품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깨어 목마르면 차를 마신다. 외진 곳에 자리한 빈 암자엔 아무도 찾는 이 없어 사립문은 늘 걸린 그대로이고, 그 속에 한 스님이 부처님과 함께 불당에 앉아 있다. 그는 ‘기쁘다’고 말한다.
▲ 윤두서, 「탁족도(濯足圖)」, 18세기, 23.5X17.3cm, 개인소장
옷자락 걷고 발을 담근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누가 보는가? 무얼 보는가? 이 소식을 알겠는가?
인용
1. 산은 산, 물은 물①
2. 산은 산, 물은 물②
3. 산은 산, 물은 물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