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③
白雲堆裡屋三間 | 흰 구름 쌓인 곳에 세 칸 초가집 |
坐臥經行得自閑 | 앉아 눕고 쏘다녀도 제 절로 한가롭네. |
澗水冷冷談般若 | 시냇물은 졸졸졸 반야(般若)를 속삭이고 |
淸風和月遍身寒 | 맑은 바람 달빛에 온 몸이 서늘하다. |
고려 말의 선승(禪僧) 혜근(慧勤)의 「산거(山居)」란 작품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는 생활이지만 무위도식과는 엄연이 다르다. 흰 구름 속 초가삼간에서도 일말의 누추를 찾을 길 없다. 시냇물은 졸졸졸 흘러가며 반야(般若)의 설법을 들려주고, 맑은 바람과 흰 달빛은 내 정신을 쇄락케 한다.
卷箔引山色 連筒分澗聲 | 구슬 발 걷어서 산 빛 들이고 대통 이어 시냇물 소릴 나누네. |
終朝少人到 杜宇自呼名 | 아침내 아무도 오지를 않고 두견새 제 홀로 이름 부른다. |
충지(沖止)의 「한중잡록(閑中雜詠)」 가운데 한 수이다. 발을 걷어 산빛을 방안으로 끌어들이고, 대통을 이어서 시냇물소리를 뜰 안에서 듣는다. 산빛과 시냇물소리를 함께 하는 아침, 아무도 이 흥취(興趣)를 깨는 이 없다. 이따금 적막을 견디다 못한 두견새가 제 이름을 부르며 울 뿐이다.
다시 그의 「거산시(居山詩)」 한 수를 보자.
日日看山看不足 | 날마다 산을 봐도 또 보고 싶고 |
時時聽水聽無厭 | 물소리 늘 들어도 싫증나잖네. |
自然耳目皆淸快 | 저절로 귀와 눈 맑게 트이니 |
聲色中間好養恬 | 소리와 빛깔 속에 마음 기른다. |
산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서 있고, 나는 언제나 여기 이렇게 산을 바라본다. 물은 쉬임 없이 흘러가며 무상(無上)의 설법을 들려준다. 산 빛을 채워 해맑고, 물소리로 씻어 깨끗해진 눈과 귀를 안으로 돌려 고요 속에 마음을 기른다.
高臺獨坐不成眠 | 높은 누대 홀로 앉아 잠 못 이루니 |
寂寂孤燈壁裏懸 | 쓸쓸히 외론 등불 벽 위에 걸려있네. |
時有好風吹戶外 | 창밖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
却聞松子落庭前 | 뜰 앞에서 들리는 솔방울 지는 소리. |
조선조 정관선사(靜觀禪師)가 금강대(金剛臺)에 올라지었다는 시다. 사바의 세계는 구름 아래 펼쳐져 있고, 그 위의 스님은 잠 못 이룬다. 속세에 두고 온 까닭 모를 근심이 있는 것도 아닐진대, 가물거리는 외로운 등불은 모두 잠들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보리(菩提)의 불빛이 아닐 것인가. 꺼지지 않는 등불과 오롯이 깨어있는 나는 등가의 심상으로 교감한다. 바로 그때 바람은 그 마음을 헤아렸다는 듯이 문풍지를 흔들고, 또 솔방울은 소리를 내며 뜨락으로 떨어진다.
▲ 김홍도, 「염불서승도(念佛西昇圖)」, 18세기, 20.8X28.7cm, 간송미술관
깡마른 정신 하나 들고 서방정토 향해 간다. 구름 위 연꽃 보좌에 앉았자니 눈앞이 환하다. 향기가 진동한다.
인용
1. 산은 산, 물은 물①
2. 산은 산, 물은 물②
3. 산은 산, 물은 물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