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은 산, 물은 물③
효봉(曉峯) 스님의 다음 법어(法語)에서도 이러한 ‘반상(反常)’은 계속된다.
若人欲越四相山 | 누구든 사상산(四相山)을 건너랴거든 |
也要須杖兎角杖 | 토끼 뿔 지팡이를 짚어야 하고, |
若人欲渡生死海 |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너려 하면 |
也要須駕無底船 | 밑 빠진 배를 타야 하리라. |
토끼에게 무슨 뿔이 있으며, 설사 있다 한들 상아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지팡이로 만들 수 있으랴. 밑 빠진 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읽을수록 알쏭달쏭하고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사상산(四相山)과 생사해(生死海)를 건널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 행간의 뜻은 찾을수록 첩첩산중이다.
斫來無影樹 燋盡水中漚 |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와서는 물속의 거품에다 태워 버린다. |
可笑騎牛者 騎牛更覓牛 | 우습구나, 소를 타고 있는 이 소 타고서 다시금 소를 찾다니. |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고제(高弟) 소요(逍遙) 태능선사(太能禪師)에게 내린 게송(偈頌) 가운데 한 수이다. 이번에는 그림자 없는 나무를 물속에서 태워 버린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그래도 3ㆍ4구는 좀 알아들을 법하다. 소를 타고 있는 이가 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말이다. 불가에서 ‘멱우(覓牛)’는 구도(求道)와 같다. 도(道)의 실체를 붙들고 있으면서도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자꾸만 몸 밖에서 소를 찾는다는 말이다.
百千經卷如標指 | 온갖 경전의 말 표지와 같아 |
因指當觀月在天 |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지. |
月落指忘無一事 | 달 지고 손가락 잊어 아무 일 없거니 |
飢來喫飯困來眠 |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자네. |
소요(逍遙) 태능(太能)의 시이다. 온갖 경전에 쓰여진 불법(佛法)의 말씀들은 모두 깨달음의 바다로 이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전 탐구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어늘 어디에서 티끌 생각이 일어난단 말인가. 달도 지고 손가락도 잊은 그곳, 분별하고 사량(思量)하는 마음조차 끊어진 그곳에서 하는 일이란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는 것뿐이다. 언어를 버려라. 생각을 버려라. 그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마저 버려라. 그때 깨달음의 세계가 통쾌하게 열리리라.
인용
1. 산은 산, 물은 물①
2. 산은 산, 물은 물②
3. 산은 산, 물은 물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