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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기(禪機)와 시취(詩趣)④
閱過行年六十七 | 더듬어 지나온 길 예순 일곱 해 |
及到今朝萬事畢 | 오늘 아침 이르러 모든 일 끝나도다. |
故鄕歸路坦然平 | 고향 돌아가는 길 평탄도 한데 |
路頭分明曾未失 | 갈 길이 뚜렷하여 길 잃지 않겠구나. |
手中纔有一枝笻 | 수중엔 겨우 지팡이 하나지만 |
且喜途中脚不倦 | 도중에 다리 품 덜어줌 기뻐하노라. |
충지(沖止)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이다. 어떤 삶 끝에서 이렇듯 투명한 정신의 자락이 펼쳐지는가. 스님은 이 게송을 남기고 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입적하였다. 생사(生死)의 바다를 훌쩍 건너 저승길을 마치 소풍 가듯 떠나가고 있다. 보우(普愚) 스님의 「사세송(辭世頌)」 또한 생사(生死)의 바다를 단숨에 뛰어넘는 장엄함이 있다.
人生命若水泡空 | 인생은 물거품 부질없는 것 |
八十餘年春夢中 | 여든 몇 해 생애가 봄 꿈속이라. |
臨終如今放皮袋 | 죽음 임해 가죽 자루 벗어던지니 |
一輪紅日下西峯 | 한 덩이 붉은 해 서산에 지네. |
인생은 물거품이요 한바탕 봄꿈이다. 육신을 버리는 것은 가죽 부대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무엇이 남는가. 붉은 해가 서산에 진다. 내 육신은 가도 지는 해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붉은 불덩이로 되살아난다. 무엇이 슬프고 안타까울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시는 어떨까?
새벽에 일어나 큰 산에 절하고
저녁 자리에 들기 전에
다시 산에 머리 숙인다.
말없이 이렇게 하며 산다.
이러는 것은 아무 다른 뜻이 없다.
산 곁에서 오래 산을 바라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할 수도 없다.
산에게 무엇 하나 묻지도 않는다.
고요히 산을 향해 있다가 홀연
자신에게 돌아서는 일
이것이 산과 나의 유일한 문답법이다.
이성선의 시 「산문답(山問答)」이다. 앞선 선승들의 지취(旨趣)와 방불치 아니한가. 말 없는 가운데 마음을 흐르게 하는 일, 선(禪)은 시인(詩人)에게 이러한 심법(心法)을 일깨워 준다.
인용
1. 산은 산, 물은 물①
2. 산은 산, 물은 물②
3. 산은 산, 물은 물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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