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거문고의 소리는 어디서 나는가③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 빈 산 사람은 보이질 않고 다만 사람의 말소리만 들리네. |
返景入森林 復照靑苔上 | 저물녘 볕 숲속에 비치어들어 다시금 푸른 이끼 비추는 구나. |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녹시(鹿柴)」란 작품이다. 산은 비어 사람도 없다. 그런데 어디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때 뉘엿한 햇볕은 다시 금 숲속에 들어 푸른 이끼 위에 빗긴다. 사람은 어디 있는가? 시인은 또 어디에 있는가? 시의 내용을 앞에 놓고 화가를 불러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숲속에 비쳐드는 투명한 햇살처럼 허공에 빛나는 투명한 정신의 광휘가 감돌고 있을 뿐이다. 마음을 맑게 씻어준다.
월산대군의 시조에 다음과 같은 절창이 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나 고기 아니 무노매라
으스름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그런데 사실 이 시조는 화정(華亭) 선자화상(船子和尙)의 게송을 시조역한 것이다. 원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千尺絲綸直下垂 | 긴 낚시줄을 아래로 곧장 드리우니 |
一波纔動萬波隨 | 한 물결 일렁이자 일만 물결 움직이네. |
夜靜水寒魚不食 | 고요한 밤 물이 차서 고기는 입질 않고 |
滿船空載月明歸 | 빈 배 가득 밝은 달만 싣고서 돌아오네. |
포물선을 그으며 낚시줄이 물위로 떨어진다. 바늘이 수면 위에 한 점을 찍자, 동심원을 그리며 일만 물결이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이 잔잔히 가라앉을 동안 나는 그저 그렇게 바라볼 뿐이다. 깊은 밤 만뢰(萬籟)는 적막한데 고기는 입질이 없다. 아니 애초부터 이편에서도 고기에는 마음이 없다. 돌아오는 길 배엔 고기 대신 휘황한 달빛을 가득 실었다. 말 그대로 ‘텅 빈 충만’의 세계이다.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 절집은 흰 구름 가운데 있고 흰 구름을 스님네는 쓸지를 않네. |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 손님 와야 비로소 문이 열리니 골짝마다 송화松花가 늙어가누나. |
조선시대 이달(李達)의 「불일암(佛日庵)」이란 작품이다. 절집 뜨락엔 구름이 낙엽처럼 쌓여 있고, 무심한 흰 눈썹의 스님네는 푸른 눈으로 문을 열어준다. 손님이 아니었다면 영영 열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문이다. 열린 문으로 구름을 쓸자 드러나는 골짜기 능선마다에선 송홧가루 날리며 세월이 늙고 있다. 속세에서 짊어지고 온 나그네의 근심도 흰 구름 속에 파묻혀 송홧가루로 날리운다.
인용
1. 산은 산, 물은 물①
2. 산은 산, 물은 물②
3. 산은 산, 물은 물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