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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 4. 청산에 살으리랏다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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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 4. 청산에 살으리랏다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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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산에 살으리랏다

 

 

다시 김부식(金富軾)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題松都甘露寺次惠遠韻)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 지네.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강 물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이 떠가네.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부끄럽다. 달팽이 뿔 위에서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나의 반평생.

 

속객(俗客)의 자취가 끊어진 곳을 속객(俗客)이 홀로 찾았다. 산마루에 올라 툭 터진 시계(視界)에 서니, 함께 짊어지고 온 속된 생각도 말끔히 씻어진다. 34구의 자안(字眼)()’()’에 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 여름날의 화려에 견주면 보잘 것 없어야 할 그 모습은 조촐해서 더욱좋다. 밤이면 빛을 잃고 검게 흐를 강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신비한 밝음을 간직하고 있다. 빛을 잃은 밤, 낙엽이 진 가을 산은 모든 번화한 시기를 지나 보내고 물끄러미 스스로를 반추해보는 시간이다. 헐벗어 더욱 좋은 산, 밤이건만 오히려 맑은 강물빛은 집착과 욕망을 벗어 던져 더욱 투명해진 시인의 마음과 등가적 심상을 이룬다. ‘텅빈 충만의 세계다.

 

56구는 앞서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34구를 환골(換骨)하였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이 떠가네.

 

원시의 허사 ()’ 대신에 ()’을 끼워 넣었고, 6구는 실사(實辭) ‘()’의 자리에 ()’, 허사 ()’의 위치에 ()’을 바꿔 넣은 것이다. 밤 강물 위로 해오라비는 깃을 치며 날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날던 새를 따라가다 시선이 멈춘 그 자리에 외론 돛단배가 가볍게 강물 위로 미끄러져가고 있다. 깊은 밤, 색채의 대비도 선명하게 포물선을 그으며 시계를 벗어나는 해오라비. 홀로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사라지는 돛단 배. 모두 얽매이고 집착하며 아웅다웅하던 속세에서는 생각지 못할 정경들이다. 그제야 시인은 새삼 공명(功名)에 얽매여 시비를 다투고 영욕에 집착하던 삶이 얼마나 구차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던가를 깨닫는다. 돌아보면 그것은 달팽이 뿔 위의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높이 날아가 스러진[]’ 것은, 또 홀로 가볍게 가버린[]’ 것은 해오라비도 돛단배도 아니고, 반평생 공명을 향해 있던 부끄러운 집착일 터이다. 이제야 그는 속객으로 들어온 가을 산사(山寺)에서 속객(俗客)의 태를 벗고, 거듭남의 정화감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일상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소생의 원기를 불어 넣어 준다. ()의 동서를 막론하고 때의 고금을 떠나서 자연이 예술의 변함없는 경배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자연은 그의 품안에 아무나 품어 안지는 않는다.

 

 

대저 천하의 온갖 물건을 다 끌어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는 것은 부귀(富貴)한 사람의 즐거움이다. 장송(長松) 그늘에서 다북한 풀을 깔고 앉아 시내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다가 돌샘의 물을 떠 마시는 것은 산림(山林)에 사는 사람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산림에 사는 선비는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간혹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힘을 헤아려 얻을 수 없어 그만둔 자는 물러나 이곳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저 부귀한 사람은 능히 온갖 물건을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아우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오직 산수山水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구양수(歐陽修)부사산수기(浮槎山水記)에서 한 말이다. 부귀의 즐거움이 있고, 산림의 즐거움이 있으니, 이 두 가지가 나란할 수 없을 때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는 노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으로 뽑힌 것을 보면, 첨단과학의 시대에서도 산수자연(山水自然)을 향한 선망과 동경은 더해만 가는 모양이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2.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3. 청산에 살으리랏다

4. 청산에 살으리랏다

5.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6.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7.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8. 들 늙은이의 말

9. 들 늙은이의 말

10.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12.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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