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天翁尙不貰漁翁 | 천옹(天翁)은 어옹(漁翁)을 받지 않으려는지 |
故遣江湖少順風 | 일부러 강호에 순풍 적게 보내네. |
人世險巇君莫笑 | 인간 세상 험하다 그대여 웃지 마오 |
自家還在急流中 | 그대 외려 급류의 한가운데 있는 것을. |
고려 김극기(金克己)의 「어옹(漁翁)」이다. 어옹(漁翁)은 순풍을 기대하고 강호에 들어왔다. 그런데 뜻밖에 강호에서조차 순풍은 좀체 불 생각을 않는다. 순풍을 잔뜩 기대하고 강호를 찾은 어옹(漁翁)은 강호행(江湖行) 이전 순풍은커녕 역풍에 온갖 고초와 신산(辛酸)을 겪었음에 틀림없다. 현실의 거센 풍파를 피해 강호의 순풍 속에 안기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강호에서 조차 순풍은 잘 불어주질 않는다.
3ㆍ4구에서 시상은 한 번 비약한다. 웃고 있는 것은 어옹이고 웃지 말라고 하는 것은 시인이다. 앞서 천옹(天翁)과 어옹(漁翁)의 대립이 시인과 어옹(漁翁) 간의 그것으로 전이되었다. 어옹은 강호에 순풍이 적은 지도 모르고, 배 위에서 인간 세상의 험난을 비웃고 있다. 반면 시인은 순풍 적은 강호에 배를 띄워 놓고 유유연하는 어옹에 대해 일종 연민의 감정을 지닌다. 그 자신 급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으면서도 인간세상을 향해 띄우는 어옹의 조소를 시인은 조소한다. 그래서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이 시를 두고 “시인들이 어부(漁父)를 읊음은 의례 그 한가한 맛을 취할 따름인데, 이 시는 그 위험을 말하였으니 반안법(反案法)이다[詩人之詠漁父, 例多取其閑味而已, 此則言其危險, 乃飜案法也].”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고려 말 당시 어지러운 현실을 고개 돌려 외면하고 강호에 묻혀 사는 것으로 고고함을 뽐내던 사이비 어옹(漁翁), 즉 속류 은사(隱士)들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당시 목은(牧隱)ㆍ도은(陶隱)ㆍ야은(冶隱)ㆍ포은(圃隱)ㆍ둔촌(遁村) 이집(李集) 등 명류들의 호에서도 알 수 있듯 고려 말의 상황은 격동하는 현실의 격랑 앞에 은둔(隱遁)의 풍조가 만연하였다. 그러나 정작 뜻 있는 이들이 다 자신의 명철보신(明哲保身)만을 위해 강호로 들어가 버리고 나면 정작 현실의 질곡은 누가 감당해낸단 말인가.
말로만 되뇌는 ‘나 돌아갈래’
송대(宋代) 곽희(郭熙)는 유명한 『임천고치(林泉高致)』 가운데 「산수훈(山水訓)」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자가 산수(山水)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구원(丘園)에서 바탕을 기름은 항상 머무는 바이고,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님은 늘 즐기는 바이며, 고기 잡고 나무하며 숨어 지냄은 늘 즐거워하는 바이고 원숭이나 학이 울고 나는 것은 항상 친하게 지내는 바이다. 티끌세상의 시끄러움과 굴레에 속박됨은 인정(人情)이 항상 싫어하는 바이나, 연하(烟霞) 자옥한 가운데 사는 신선은 인정(人情)이 늘 추구하면서도 볼 수는 없는 바이다.
그러나 사람이 저 혼자 즐겁자고 사회적 책임을 다 버려두고 이세절속(離世絶俗)하는 삶을 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임천연하(林泉烟霞)를 향한 사람들의 선망은 언제나 마음속에만 자리 잡고 있을 뿐 눈앞에 펼쳐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다못해 산수화(山水畵)를 그려 벽에 붙여 놓고 집을 나서지 않고 방에 앉아 시내와 골짝을 바라보고 원숭이 울음과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산광수색(山光水色)에 시선을 주며 임천(林泉)을 향한 열망을 달랜다는 것이다. 산수화(山水畵)가 흥성하게 된 원인에 대한 화가 곽희(郭熙)의 그럴듯한 진단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더럽게 보아 강호로 숨으려는 귀거래(歸去來)에 대한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구두선(口頭禪)이다. 오죽하면 옛 시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실천 없는 귀거래(歸去來)에 대한 열망을 비꼬았겠는가.
귀거래(歸去來) 귀거래(歸去來)한들 물러간 이 긔 누구며
공명(功名)이 부운(浮雲)인 줄 사람마다 알것마는
세상(世上)에 꿈 깬 이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금의 은둔자들은 뻐꾸기 은자
그런가 하면 다른 꿍꿍이속을 가지고 강호에 들어와서는 귀거래(歸去來)를 실천한 양 스스로를 떠벌리는 뻐꾸기 은사(隱士)들로 적지 않았다. ‘뻐꾸기 은사’란 조선 중기의 학자 권응인(權應仁)의 『송계만록(松溪漫錄』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술래가 자기 숨은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으면, 숨은 아이는 공연히 ‘뻐꾹 뻐꾹’하며 자신이 숨은 곳을 알려준다는 것인데, 이 하는 꼴이 꼭 가짜 은사(隱士)들이 방편 상 강호에 숨어 자기가 여기 숨었으니 알아 달라고 현실을 기웃기웃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은 데서 나온 말이다.
당나라 때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고 학행(學行)에만 몰두하는 불구문달(不求聞達)의 선비를 찾아 유일(遺逸)로 천거하는 제도가 있었다. 하루는 한 서생(書生)이 종종걸음으로 서울로 들어오므로 길 가던 사람이 무슨 일로 그리 바삐 가느냐고 물었더니, 서생(書生)이 “장차 불구문달과(不求聞達科)에 응거(應擧)하려 합니다.”고 했다는 우스개이야기가 있다. 『인설록(因話錄)』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 또한 명예를 향한 인간의 허망한 집착을 안쓰럽게 전해준다.
▲ 이명욱(李明郁), 「어옹한유도(漁翁閑遊圖)」, 17세기, 14.5X21cm.
대숲 우거진 물가에 배를 댄다. 지나고 보니 참 험한 세월이었다. 이 조찰한 물가에서 내 잠시 몸을 뉘었다 가리라.
2. 청산에 살으리랏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
相看兩不厭 只有敬亭山 | 서로 보아 둘 다 싫증나지 않는 것은 경정산(敬亭山) 너 뿐이로구나. |
이백(李白)의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이란 작품이다. 속세의 시름을 지닌 채 경정산을 찾은 나그네는 산정(山頂)에서 물끄러미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그때 저 골짜기 아래로부터 새떼들은 산 위로 비상한다. 새떼의 돌연한 비상을 쫓다가 마침내 아득히 사라진 그 자리에서, 시인은 문득 ‘홀로’ 유유히 떠가는 구름을 발견한다. 새들은 그다지도 바쁘게 어디로 사라져 간 것일까. 왁자지껄 무리를 지어 들끓다가 사라진 새떼는 사실 시인이 물 아래에서 지고 올라온 욕망과 번뇌의 찌꺼기는 아니었을까. 산 위에 올라선 시인은 그러한 번뇌와 시름을 훌훌 벗어 던지고 어느새 정처도 없고 집착도 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의 마음이 되었던 것이다. 경정산은 언제나 인간사에 지친 나를 이렇듯 감싸 안고 어루만져 준다. 시인의 경정산을 향한 예찬은 허세도 과장도 없는 사실로만 느껴진다.
필자에게 이 시는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으로 시작되는 박두진의 「도봉(道峰)」을 연상시킨다. 그의 말대로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일지라도, 산에 서면 청산은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너멋골 골짜기서 울어 오는 뻐꾸기”(「청산도(靑山道)」 1연)의 위안으로 상처 입은 가슴을 어루만져 준다.
다시 김부식(金富軾)은 「제송도감로사차혜원운(題松都甘露寺次惠遠韻)」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 속객의 발길 닿지 않는 곳 올라서니 생각이 해맑아 지네. |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 산 모습 가을이라 더욱 고웁고 강 물빛 밤인데도 외려 밝아라. |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이 떠가네. |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 부끄럽다. 달팽이 뿔 위에서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나의 반평생. |
속객(俗客)의 자취가 끊어진 곳을 속객(俗客)이 홀로 찾았다. 산마루에 올라 툭 터진 시계(視界)에 서니, 함께 짊어지고 온 속된 생각도 말끔히 씻어진다. 3ㆍ4구의 자안(字眼)은 ‘갱(更)’과 ‘유(猶)’에 있다. 낙엽이 지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 여름날의 화려에 견주면 보잘 것 없어야 할 그 모습은 조촐해서 ‘더욱’ 좋다. 밤이면 빛을 잃고 검게 흐를 강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신비한 밝음을 간직하고 있다. 빛을 잃은 밤, 낙엽이 진 가을 산은 모든 번화한 시기를 지나 보내고 물끄러미 스스로를 반추해보는 시간이다. 헐벗어 더욱 좋은 산, 밤이건만 오히려 맑은 강물빛은 집착과 욕망을 벗어 던져 더욱 투명해진 시인의 마음과 등가적 심상을 이룬다. ‘텅빈 충만’의 세계다.
5ㆍ6구는 앞서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의 3ㆍ4구를 환골(換骨)하였다.
衆鳥高飛盡 孤雲獨去閑 |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외론 구름 홀로 한가로이 떠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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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 해오라비 높이 날아 사라져가고 외론 돛만 홀로 가벼이 떠가네. |
원시의 허사 ‘중(衆)’ 대신에 ‘백(白)’을 끼워 넣었고, 6구는 실사(實辭) ‘운(雲)’의 자리에 ‘범(帆)’을, 허사 ‘한(閑)’의 위치에 ‘경(輕)’을 바꿔 넣은 것이다. 밤 강물 위로 해오라비는 깃을 치며 날아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날던 새를 따라가다 시선이 멈춘 그 자리에 외론 돛단배가 가볍게 강물 위로 미끄러져가고 있다. 깊은 밤, 색채의 대비도 선명하게 포물선을 그으며 시계를 벗어나는 해오라비. 홀로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사라지는 돛단 배. 모두 얽매이고 집착하며 아웅다웅하던 속세에서는 생각지 못할 정경들이다. 그제야 시인은 새삼 공명(功名)에 얽매여 시비를 다투고 영욕에 집착하던 삶이 얼마나 구차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던가를 깨닫는다. 돌아보면 그것은 달팽이 뿔 위의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높이 날아가 ‘스러진[盡]’ 것은, 또 홀로 가볍게 ‘가버린[去]’ 것은 해오라비도 돛단배도 아니고, 반평생 공명을 향해 있던 부끄러운 집착일 터이다. 이제야 그는 속객으로 들어온 가을 산사(山寺)에서 속객(俗客)의 태를 벗고, 거듭남의 정화감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준다. 일상에 찌들어 생기를 잃고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소생의 원기를 불어 넣어 준다.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때의 고금을 떠나서 자연이 예술의 변함없는 경배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자연은 그의 품안에 아무나 품어 안지는 않는다.
대저 천하의 온갖 물건을 다 끌어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는 것은 부귀(富貴)한 사람의 즐거움이다. 장송(長松) 그늘에서 다북한 풀을 깔고 앉아 시내물이 졸졸 흘러가는 소리를 듣다가 돌샘의 물을 떠 마시는 것은 산림(山林)에 사는 사람의 즐거움이다. 그러나 산림에 사는 선비는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마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간혹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힘을 헤아려 얻을 수 없어 그만둔 자는 물러나 이곳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저 부귀한 사람은 능히 온갖 물건을 이르게 할 수 있지만 아우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오직 산수山水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구양수(歐陽修)가 「부사산수기(浮槎山水記)」에서 한 말이다. 부귀의 즐거움이 있고, 산림의 즐거움이 있으니, 이 두 가지가 나란할 수 없을 때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는 노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으로 뽑힌 것을 보면, 첨단과학의 시대에서도 산수자연(山水自然)을 향한 선망과 동경은 더해만 가는 모양이다.
3.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
공자(孔子)가 『논어(論語)』 「옹야(雍也)」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거워하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고 말한 이래로, 산수간(山水間)의 노님은 자못 철학적 의미를 담게 되었다. 주자(朱子)는 공자(孔子)의 말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두루 통하고 막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은 점이 있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의리에 편안하여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은 점이 있는 까닭에 산을 좋아한다는 것[知者達於事理而周流無滯, 有似於水, 故樂水; 仁者安於義理而厚重不遷, 有似於山, 故樂山].”이라고 풀이하였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선생님! 군자가 큰 강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孔子觀於東流之水. 子貢問於孔子曰君子之所以見大水必觀焉者, 是何?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대저 물을 군자는 덕(德)에 비유한다. 두루 베풀어 사사로움이 없으니 덕(德)과 같고, 물이 닿으면 살아나니 인(仁)과 같다. 그 낮은 데로 흘러가고 굽이치는 것이 모두 순리에 따르니 의(義)와 같고, 얕은 것은 흘러가고 깊은 것은 헤아릴 수 없으니 지(智)와 같다. 백길이나 되는 계곡에 다달아도 의심치 아니하니 용(勇)과 같고, 가늘게 흘러 보이지 않게 다다르니 살핌과 같으며, 더러운 것을 받아도 사양치 아니하니 포용함과 같다. 혼탁한 것을 받아들여 깨끗하게 하여 내보내니 사람을 착하게 변화시킴과 같다. 그릇에 부으면 반드시 평평하니 정(正)과 같고, 넘쳐도 깎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법도와 같고, 만 갈래로 구비쳐도 반드시 동쪽으로 꺾이니 의지와 같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큰물을 보면 반드시 바라보는 것일 뿐이니라.”
孔子曰夫水, 大徧與諸生而無爲也, 似德. 其流也埤下, 裾拘必循其理, 似義. 其洸洸乎不淈盡, 似道. 若有決行之, 其應佚若聲響, 其赴百仞之谷不懼, 似勇. 主量必平, 似法. 盈不求槪, 似正. 淖約微達, 似察. 以出以入, 以就鮮絜, 似善化. 其萬折也必東, 似志. 是故君子見大水必觀焉,
한(漢) 나라 때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의 한 대목이다. 원래 『순자(荀子)』 「유좌(宥坐)」에 실려 있던 것을 유향(劉向)이 부연한 것인데, 물의 여러 속성을 들어 인간이 지녀야 할 삶의 덕목과 견주었다. 일찍이 노자(老子)도 『도덕경(道德經)』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으뜸가는 선(善)을 물에 견준 일이 있다. 물은 언제나 낮고 더러운 곳에 처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므로, 노자는 물에서 ‘유약겸하(柔弱謙下)’의 교훈을 읽은 것이다. 또 유향(劉向)은 계속해서 지자요수(智者樂水)와 인자요산(仁者樂山)의 이유에 대해 부연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인자요산(仁者樂山)의 변은 다음과 같다.
대저 산은 높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만민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초목이 그 위에서 생장하고, 온갖 생물이 그 위에 서 있으며, 나는 새가 거기로 모여들고, 들짐승이 그곳에 깃들이며, 온갖 보배로운 것이 그곳에서 자라나고, 기이한 선비가 거기에 산다. 온갖 만물을 기르면서도 싫증내지 아니하고 사방에서 모두 취하여도 한정하지 않는다. 구름과 바람을 내어 천지 사이의 기운을 소통시켜 나라를 이룬다. 이것이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까닭이다.
동중서(董重舒)의 『춘추번로(春秋繁露)』에도 이와 비슷한 언급이 보인다. 이렇듯 한대(漢代) 이전 산수(山水)에 대한 해석은 다분히 유가(儒家)의 이념에 물들어 있었고, 사람들은 산수(山水) 간의 노님 속에서 철학적 의미를 읽으려고 노력하였다.
산이 나오고 물이 나온다고 해서 다 산수시가 아니다. 산수와 인간이 만나 나누는 교감이 있어야 한다. 내 편으로 산수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산수(山水) 쪽으로 향하여 가서 어느덧 물(物)과 아(我)가 경계를 잊고 하나가 되는 동화가 있어야 한다.
滿庭月色無烟燭 | 뜨락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 |
入坐山光不速賓 | 둘러앉은 산빛은 뜻밖의 손님. |
更有松弦彈譜外 |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 울리니 |
只堪珍重未傳人 | 소중히 지닐 뿐 전할 수 없네. |
고려 때 최충(崔沖)의 「절구(絶句)」이다. 달빛을 등불 삼아 자리를 벌리자, 청하지도 않은 손님 청산이 슬그머니 차지하고 들어와 앉는다. 손님이 왔으니 풍악이 없을 쏘냐. 솔바람은 악보로 옮길 수 없는 미묘한 곡조를 연주한다. 맑고 상쾌한 경지다. 이 거나하고 해맑은 운치를 어찌 말로 다하랴.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다.
茅齋連竹逕 秋日艶晴暉 | 띠집은 대숲 길로 이어져 있고 가을 날 햇살은 곱기도 하다. |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 | 열매가 익어서 축 쳐진 가지 참외도 달리잖은 끝물의 덩쿨. |
遊蜂飛不定 閒鴨睡相依 | 나는 벌은 쉴 새 없이 잉잉거리고 오리는 한가로이 기대어 조네. |
頗識身心靜 棲遲願不違 | 몸과 맘 너무나 고요하구나 물러나 살자던 꿈 이루어졌네. |
서거정(徐居正)의 「추일(秋日)」이다.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그 뒤 대숲 사이로 소로길이 나있다. 가을 햇살은 지붕 위에 고운 깁을 펼쳐 얹었다. 빨갛게 익은 열매가 무겁다고 가지들은 어깨를 축 늘이고, 여름내 입맛을 돋우던 참외는 가을 서리 김에 이제는 끝물이다. 벌들은 그래도 미련이 남아 참외 덩쿨 근처에서 하루 종일 부산스럽다. 그들도 이제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옆 연못에선 오리가 태평스레 목을 감고 졸고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인의 내면에 어느새 기쁨이 물오른다. 몸과 마음이 가뜬하다. 물러나 쉬자던 소원은 이제야 이루어진 것이다.
萬物變遷無定態 | 만물이 변천함은 일정함이 없나니 |
一身閒適自隨時 | 한가로이 자적하며 때를 따라 사노라. |
年來漸省經營力 | 근년 들어 사는 일은 돌보질 않고 |
長對靑山不賦詩 | 청산을 마주 보며 시도 짓질 않는다. |
이언적(李彦迪)의 「무위(無爲)」란 작품이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부(赤壁賦)」에서 “대개 장차 그 변하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천지는 일찍이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그 변치 않는 것으로부터 본다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다함이 없다[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皆無盡也].”고 했던가. 젊은 날 성취를 향한 집착과 작위하고 경영하던 마음을 훌훌 던져 버리고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겨 다만 일신(一身)의 한적(閒適)을 추구할 뿐이다. 청산은 말이 없으니 그를 보며 묵언(默言)의 마음을 배운다. 도학자의 구김 없는 마음자리가 잘 펼쳐져 있다. 낙천지명(樂天知命)의 높은 경계다.
윤선도(尹善道)의 시조 「만흥(漫興)」에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다.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리하랴
말씀도 우움도 아녀도 몬내 됴하하노라.
술잔을 들다가 문득 먼 산이 새삼스럽게 시선에 잡힌다. 말없이 다가서는 그 품새는 마음속에 그리던 님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서 있는 듯 반갑다. 위 이언적의 시와 마찬가지로 활연(豁然)한 탈속(脫俗)의 경계를 맛보게 한다.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 천 석 들이 저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두드려도 소리 없네. |
萬古天王峰 天鳴猶不鳴 | 만고에 우뚝한 천왕봉 하늘이 울려도 울리질 않네. |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천왕봉(天王峰)」이다. 큰 종은 거기에 맞는 공이가 있어야 한다. 젓가락으로 두드려 범종의 소리를 어찌 들을까. 큰 시루를 엎어 놓은 듯, 엄청난 종을 구름 위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천왕봉은 오늘도 만고상청(萬古常靑)의 자태로 언제나 거기 서 있다. 누가 저 종을 소리 나게 울릴 수 있으랴. 하늘이 천둥 번개로 공이 삼아 꽝꽝 울려 대도 산은 요지부동(搖之不動),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산기슭 정자에 앉아 산을 보며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 산을 닮아간다. 산을 종으로 유비(類比)하여 바라본 발상도 재치 있거니와, 선비의 의연한 마음가짐이 범접할 수 없는 기상으로 압도해 온다.
百里無人響 山深但鳥啼 | 백리에 사람 소리 들리지 않고 산 깊어 들리느니 새 울음소리. |
逢僧問前路 僧去路還迷 | 중 만나 앞길을 물어 보고는 중 가자 다시금 길을 잃었소. |
강백년(姜栢年)의 「금강도중(金剛途中)」이다. ‘백리(百里)’라 했으니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진 길이 있겠고, 앞 쪽에는 나그네를 압도하며 금강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겠다. 하루 종일 걸어도 아무도 만나지 못한 나그네는 자신의 걸음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반가운 중을 만나 갈 길을 거듭 확인했지만, 중이 가고 나자 길은 어느 새 사람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위 시로 그림을 그리려 할 때, 화면 속에는 시인만 그려야 옳을까, 아니면 지팡이를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중과 그곳을 바라보는 나를 그려야 좋을까. 또 새 울음소리는 어떻게 그려 넣을까.
▲ 정선, 「대좌관폭(對座觀瀑)」, 18세기, 58X24cm, 고려대박물관.
여보게! 저 폭포 좀 보아. 겁도 없이 제 몸을 던지네그려.
4. 들 늙은이의 말
봄날이 무르익어 숲으로 들어가면 꼬불꼬불 숲속으로 산길이 통해 있고, 소나무 대나무 서로를 비추이고 들꽃은 향기 가득 산새들은 지저귄다. 이러할 때 거문고 안고 바위 위에 올라앉아 두세 곡 연주하면 이 몸은 아득히 동중선(洞中仙) 화중인(畵中人)일세.
春序將闌, 步入林巒, 曲逕通幽, 松竹交映, 野花生香, 山禽哢舌. 時抱焦桐, 坐石上, 撫二三雅調, 幻身卽是洞中仙畫中人也.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다. 시내는 흘러가고 돌은 서 있다. 꽃은 나를 맞이하고 새는 노래 부른다. 골짜기는 메아리로 대답하고 나무꾼은 노래한다. 사방이 온통 적막해지니 내 마음 절로 한가해지네.
雲白山靑, 川行石立. 花迎鳥歌, 谷答樵謳. 萬境俱寂, 人心自閑.
꽃이 너무 화려한 것은 향기가 좋지 않고, 꽃에 향기 짙은 것은 빛깔이 곱지 않다. 군자는 백세(百世)토록 향기로울지언정 한때의 꽃다움은 구치 않나니.
花太麗者馨不足, 花多馨者色不麗. 故侈富貴之容者少淸芬之氣, 抗幽芳之姿者多莫落之色, 君子寧馨百世, 不求一時之艶.
차 익어 향기 맑을 제 길손이 찾아오니 이 아니 기쁠쏘냐. 새 울고 꽃이 질 땐 아무도 없다 해도 마음 절로 유유하다.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이 없네.
茶熟香淸, 有客到門可喜. 鳥啼花落, 無人亦自悠然. 眞源無味, 眞水無香.
손님이 가고 나서 사립을 닫아거니 바람은 산들산들 해는 뉘엿뉘엿. 술 항아리 잠깐 열어 시(詩)를 새로 지었을 때, 이때가 산인(山人)의 득의처(得意處)로다.
客散門扄, 風微日落. 酒甕乍開, 詩句初成, 便是山人得意處.
초여름 원림(園林)에서 이끼 낀 바위 앉았자니, 대 그늘엔 해도 어느새 뉘엿하고, 오동나무 그림자 사이 구름이 돌더니만, 산 구름 건듯 일어 보슬비 서늘킬래, 평상에서 낮잠 청하니 꿈속 또한 상쾌해라.
初夏園林, 隨意拂苔蘚坐石上, 竹陰漏日, 桐影扶雲, 俄而山雲乍起, 微雨生涼, 就榻午眠. 夢亦得趣.
마음에 맞는 벗과 산꼭대기 걸터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지치면 바위 가에 하늘을 보고 누워 푸른 하늘 흰 구름이 반공(半空)에 떠도는 모습 보며 흔연히 유유자적.
同會心友登山, 趺坐, 浪談, 談倦仰臥巖際, 見靑天白雲飛繞半空中, 便欣然自適.
대나무 책상 창가에 놓고 부들자리 깔고 앉으니, 높은 뫼엔 구름 들고 그 아래론 맑은 시내. 울타리엔 국화 심고 집 뒤엘랑 원추리를. 언덕 가득 꽃이 피어 지나는 길을 막고, 버들은 대문 앞을 버티고 서있구나. 굽은 길엔 자옥한 안개 주막으로 이어지고, 맑은 강에 해가 지니 어촌(漁村)에는 고깃배라.
竹几當窓, 蒲團坐地, 高峯入雲, 淸流見底, 籬邊種菊, 堂後生萱. 花妨過塢, 柳礙移門, 曲逕煙深, 路接靑帘, 澄江日落, 船泊漁村.
서리 내려 낙엽 질 때 성근 숲에 들어가 나무뿌리 위에 앉으니, 나부끼는 단풍잎은 옷소매를 점찍누나. 들새는 나무 가지 사이로 사람을 구경하니, 황량하던 땅이 맑고 드넓어지네.
霜降木落時, 入疏林中, 坐樹根上, 飄飄黃葉點衣袖. 野鳥從樹梢飛來窺人, 荒涼之地, 乃反淸曠.
서리 진 뒤 시내 바위 물 위로 드러나고 못물은 맑고도 고요히 잔잔한데, 깎아지른 바위 절벽 고목엔 덩쿨 지고, 물에 비친 그림자를 지팡이 짚고 서서보니, 내 마음 어느새 해맑아지네.
霜降石出, 潭水澄定, 懸岩峭壁, 古木垂蘿, 皆倒影水中, 策杖臨之, 心境俱淸.
산에 삶이 비록 좋아도 얽매이는 마음 있으면 시장이나 진배없고, 서화(書畵)를 즐김이 우아한 일이지만 탐내는 마음 있게 되면 장사치나 다름없다. 술 마셔 취함이 즐거운 일이지만 남 하는 대로 하면 감옥이나 한 가지요, 친구와 노님이 유쾌한 일이라도 속류(俗流)와 사귄다면 고해(苦海)가 따로 없다.
山棲是勝事, 稍有繫戀則亦市朝, 書畫是雅事, 稍一貪念則亦商賈. 杯酒是樂事, 稍一徇人則亦狴牢, 好客是達事, 稍涉俗流則亦苦海.
오직 독서만이 이롭고 해가 없다. 계산(溪山)을 사랑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꽃과 대나무, 바람과 달을 감상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단정히 앉아 고요히 침묵함이 이롭고 해가 없다.
惟讀書, 有利而無害, 愛溪山, 有利而無害. 玩花竹風月, 有利而無害, 端坐靜默, 有利而無害.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문 열고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가기,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閉門閱會心書, 開門迎會心客, 出門尋會心境, 此乃人間三樂.
좋은 밤 편히 쉬며 등불 밝혀 차 끓이니, 만번(萬幡)은 적막한데 시냇물은 노래한다. 이불을 덮지 않고 책장을 뒤적임, 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비바람 길에 가득, 문을 닫아 쓸어내고, 도사(圖史) 잔뜩 펼쳐 놓고 흥을 따라 꺼내 본다. 사람의 왕래 끊어 주위도 그윽하고 방도 적막함, 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 텅 빈 산 세밑이라 눈발이 흩날리고 마른 가지 바람에 떨고 추운 새 들에 울제, 화로를 끼고 앉아 향기론 차에 술이 익어감, 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良宵宴坐, 篝燈煮茗, 萬籟俱寂, 溪水自韻. 衾枕不御, 簡編乍親, 一樂也; 風雨載途, 掩關却掃 圖史滿前, 隨興抽檢, 絶人往還, 境幽室寂, 二樂也; 空山歲晏, 密雪微霰, 枯條振風, 寒禽號野, 一室擁爐, 茗香酒熟, 三樂也.
깊은 산 높은 집엔 화로 향(香)이 필요하지. 물러난 지 오래되면 좋은 것 다 떨어져. 늙은 송백(松栢) 뿌리와 잎, 그 열매를 짓찧어서 단풍나무 기름과 섞어 한 알 씩 태워주면 또한 청고(淸苦)함에 보탬이 있으리라.
深山高居, 爐香不可缺, 退休旣久. 佳品乏絶, 取老松柏根枝葉實擣之, 斫楓肪和之, 每焚一丸, 亦足助淸苦.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야인(野人)으로 묻혀 지낼 때, 옛 선인들의 글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글귀를 메모해 둔 것이 있는데, 이름하여 ‘야언(野言)’이라 하였다. 위 인용은 이 어록 가운데 몇 개를 추려 본 것이다. 산수(山水) 속에 묻혀 사는 야인(野人)의 삶이 담백하면서도 청정하게 그려져 있다. 토막토막의 말이 행간으로 이어져 ‘세상을 사는 지혜’를 일깨워준다.
이와 비슷하게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산에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산거집구(山居集句)」 연작을 무려 100수나 남겼다.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 씩 따와서 새로 조립하되 운자도 맞아야 하니, 순수한 창작은 아니라도 그 노고는 창작 이상의 품이 든다. 매월당 자신도 다음과 같이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 했다.
성화(成化) 무자년(戊子年, 세조 13, 1468) 겨울 금오산에 있을 때, 눈 오는 밤 화로를 안고 앉았자니, 고요하여 사람의 발소리는 없었지만 바람과 대가 우수수 소리를 내어 나의 흥취를 일으켰다. 인하여 산동(山童)과 함께 재를 헤쳐가며 글자를 써서 고인(古人)의 시구를 집구하니 산거(山居)의 취미에 합당함이 있었다.
成化戊子冬, 居金鼇山, 雪夜擁爐, 寂無跫音, 風竹蕭騷, 有起予之趣. 因與山童, 撥灰書字, 集古人句有當於山居之味. 摘成一律, 仍集百詠, 與好事者共之, 丙申夏, 碧山淸隱志. -『梅月堂詩集』 卷之七
그 가운데 두어 수를 감상해 보자.
亂山擾擾水籣籣 凍月觀 | 우뚝우뚝 솟은 산물은 휘돌고 |
臥對寒松手自栽 皇甫檦 | 손수 심은 찬 솔을 누워서 보네. |
老我十年枯淡過 氷 崖 | 십년을 더 늙어도 담백히 지내리니 |
可人携手話敲推 正 齋 | 벗의 손을 잡고서 시를 퇴고 하리라. |
뒤의 작은 글자가 원작자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짜깁기 했는데도 한 수의 의경을 자연스레 이루었다. 깊은 산속 시냇물은 계곡의 험준을 못 이겨 콸콸 쏟아져 내리며 휘감아 도는데, 그 바쁜 모습 아랑곳 않고 누워 들창 밖의 찬 솔을 바라본다. 손수 심은 소나무가 낙락장송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에 다시 십년 세월을 더 보태더라도 ‘고담(枯淡)’한 지금의 삶을 지켜가겠노라고 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이따금 마음에 맞는 벗과 더불어 시(詩)를 퇴고하겠다 한다.
書卷紛紛雜藥囊 陸 游 | 어지러이 놓인 책에 약 주머니 뒤섞인 곳 |
倚床自炷水沈香 虞伯生 | 침상에 기대 앉아 수침향(水沈香)을 사르네. |
柴扉草屋無人問 顧 萱 | 사립문의 초가집 찾는 이 없고 |
密雨斜侵薜荔牆 柳柳州 | 담쟁이 덩쿨 울 안으로 자옥한 비 빗겨 드네. |
방안에는 여기저기 책들이 쌓여 있고, 천정에는 산에서 캐온 약초가 주머니 주머니 매달려 있다. 하루 종일 이책 저책 뒤적이던 주인은 피곤을 느낀다. 침상에 기대 앉아 향을 사른다. 가만히 피어오르는 향연(香烟) 속에서 그는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담쟁이 덩쿨은 어느덧 자라 흙담을 덮고, 빗발이 굵어진 빗줄기만이 그가 있는 방안을 기웃거리고 있다. 적막하면서도 고즈넉한 광경이다. 정신을 맑게 씻어준다.
山堂靜夜坐無言 川 老 | 고요한 밤 산집에 말없이 앉았는데 |
腰脊纔酸又要眠 千 巖 | 등허리 시큰하니 잠을 자야 하겠구나. |
正伊麽時誰會得 張九成 | 이때의 이 마음을 그 누가 알리 |
一林黃葉送秋蟬 鄭 谷 | 온 숲 시든 잎은 가을 매미 전송하네. |
적막한 밤 산집에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 곧추 세워 앉은 등과 허리가 뻐근해 오기 시작하니 밤도 이슥해진 모양이다. 시름이나 분노가 있어 잠 못 이루는 것이 아니니 그저 피곤하면 자고, 깨어나면 고요히 사물을 바라볼 뿐이다. 가만히 사물을 응시하다가 제 자리로 돌아선다. 이제 눈을 좀 붙여볼까. 이렇게 중얼거리던 시인은 마음속에 무언가 와 닿는 깊고 그윽한 느낌을 가졌다. 숲은 누런 잎을 떨구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이제는 없다.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여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의 「인동차(忍冬茶)」이다. 매월당의 위 시 다음에 얹어 읽으면 좋을 법하다.
5.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유종원(柳宗元)의 유명한 「영주팔기(永州八記)」는 그가 좌천되어 영주(永州) 땅에 쫓겨 와 있던 시절, 울적한 심회도 달랠 겸, 공무의 여가에 틈만 나면 주변의 산수간을 소요하며 노닐던 일을 기록한 글이다. 다음은 그 가운데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의 일절이다.
금년 9월 28일에 법화사(法華寺) 서정(西亭)에 앉았다가 서산(西山)을 바라보고 비로소 기이하게 여겨 마침내 하인을 시켜 상강(湘江)을 건너 염계(染溪)를 따라 잡초 덤불을 찍고 무성한 풀을 살라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그만 두게 하고, 더위잡고 올라가 걸터앉아서 노닐었다. 무릇 여러 고을의 땅이 모두 깔고 앉은 자리 아래로 펼쳐져 있어 그 높고 낮은 형세의 솟아오르고 움푹한 것이 개미둑 같고 구덩이 같았다. 척촌(尺寸)에 천리를 빽빽히 쌓아 놓은 듯 가리워 보이지 않음이 없었다. 푸르고 흰빛으로 둘려 있어 멀리 하늘가와 더불어 사방을 둘러봐도 한결 같았다.
今年九月二十八日, 因坐法華西亭, 望西山, 始指異之, 遂命僕人過湘江, 緣染溪, 斫榛莽, 焚茅茷, 窮山之高而止, 攀援而登, 箕距而遨. 則凡數州之土壤, 皆在衽席之下, 其高下之勢, 岈然窪然, 若垤若穴. 尺寸千里, 攢蹙累積, 莫得遯隱. 縈靑繚白, 外與天際, 四望如一.
이 뒤에야 이 산이 특출하여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 같은 작은 산과는 류(類)가 되지 않고, 유유하게 맑은 기운을 갖추었으나 그 끝간 데를 얻을 수 없고, 아득히 조물주와 더불어 노닐되 그 다함을 알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술잔을 당겨 가득 따르고 거나히 취하여 해가 지는 것도 알지 못하였다. 푸르스름한 땅거미가 먼 데로부터 밀려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았다. 마음은 엉겨 붙은 듯 형체는 놓여 사라진 듯 만화(萬化)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
然後知是山特出, 不與培塿爲類, 悠悠乎與灝氣俱, 而莫得其涯, 洋洋乎與造物者遊, 而不知其所窮. 引觸滿酌, 頹然就醉, 不知日之入. 蒼然暮色, 自遠而至, 至無所見, 而猶不欲歸. 心凝形釋, 與萬化冥合.
서산(西山)의 정상 위에서 영주(永州)의 여러 고을을 굽어보면 지금껏 보아왔던 산들은 모두 흙무더기를 쌓아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방 천리의 시야를 척촌(尺寸)에 압축시켜 놓은 듯, 산은 개미둑 같고 골짝은 구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호연한 경계 앞에 그는 돌아옴을 잊고서 저 멀리서 땅거미가 밀려와 눈 아래 펼쳐진 경물을 지워 버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지워 버릴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심응형석(心凝形釋)’ 마음은 그대로 엉겨붙어 찾을 길이 없고, 형체는 그대로 기화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 ‘만화명합(萬化冥合)’하는 물아(物我)의 일체감을 황홀하게 맛보았던 것이다.
옛 사람의 문집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에 많은 산수유기(山水遊記)와 만나게 된다. 유기(遊記)는 산수(山水)를 향한 고인(古人)의 진지한 열정의 산물이니, 여기에는 자연 앞에 선 외경이 있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오늘날 이들 유기(遊記)는 고작 수필의 대접 밖에 못 받아 설 자리를 잃고 한문학 연구자들에게도조차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구도자의 심경이 되어 산수간을 노닐던 고인들의 그 헌활(軒豁)한 정신의 경계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고목(古木)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보는 것 같고,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는데,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 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 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내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듯 하였다. (중략)
古木衣絶壁而枯, 兀如鬼身. 蟹如灰色, 剝如老蛇縣退, 禿如病䲭蹲顧. 腹穿而枵, 旁無一枝. 依山之石黑, 沿逕之石白, 浸溪之石靑綠. 其疑澼之所摩, 疏之所渡, 石光如舐, 潤赤而滑. 一匹秋暉, 遙鋪楓間, 叉疑洞沙皆淡黃也.
우러러 토령(土嶺)을 보니 오리 쯤 되겠는데, 잎진 단풍나무는 가시와 같고 흘러내린 자갈돌은 길을 막아선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덮였다가 발을 딛자 비어져 나왔다. 벌렁 나자빠질 뻔하다가 일어나느라 손을 진흙 속에 묻고 말았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웃을까봐 부끄러워 단풍잎 하나를 주어 들고서 그들을 기다리는 체하였다.
仰見土嶺, 可五里. 禿楓如棘, 流礫橫逕. 尖石冒葉, 遇足而脫, 幾跌而起. 手爲搨泥, 羞後人嗤笑, 迺拾一紅葉以待之.
만폭동(萬瀑洞)에 앉으니 석양이 얼굴에 비추인다. 거대한 바위는 산마루 같은데 긴 폭포가 바위를 타넘고 흘러 내려온다. 물굽이는 세 번을 굽이쳐서야 비로소 바닥을 짓씹는다. 물줄기가 움푹 들어갔다가 소용돌이를 치며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고사리 순이 주먹을 말아 쥔 것 같고, 용의 수염 같기도 하며 범의 발톱 같기도 하여 움켜쥘 듯하다가는 스러진다. 내뿜는 소리가 흘러 내려 하류로 서서히 넘치더니, 주춤하다가는 다시금 내뿜는데 마치 숨을 헐떡이는 것만 같다. 한참을 가만이 듣고 있으려니까 나 또한 숨이 차다. 이윽고 잠잠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더니 조금 있자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坐萬瀑洞, 夕陽映人. 巨石如嶺, 長瀑踰來. 流凡三折, 始齧於根, 凹而湍起, 如蕨芽叢拳, 如龍鬚, 如虎爪, 如攫而止. 噴聲一傾, 下流徐溢, 縮而復泄, 如喘息. 靜聽久之, 身亦與之呼吸. 小焉闃然無聞, 又小焉, 益厲漰湱也.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붙이고 소매는 팔꿈치 위로 말아 올리고 두건과 버선을 벗어 깨끗한 모래 위에 던져두고 둥근 돌에 엉덩이를 고여 고요한 물가에 걸터앉았다. 작은 잎이 떴다 가라앉는데 배 쪽은 자줏빛이고 등 쪽은 누런빛이었다. 이끼가 엉겨 돌을 감싸니 이들이들 한 것이 마치 미역 같았다. 발로 물살을 가르자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양치질하니 비는 이빨 사이로 쏟아졌다. 두 손으로 허위적 거리자 물빛만 있고 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꼽을 씻으며 얼굴의 술기운을 깨노라니,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褰袴至脛, 擖袂過肘, 脫巾與襪, 投之淨沙. 圓石支尻, 踞水之幽, 小葉沈浮, 腹紫背黃, 凝苔裏石, 燁如海帶. 以足割之, 瀑激于爪, 以口潄之, 雨瀉于齒. 雙手泳之, 有光無影, 洗眼之白, 醒面之紅, 時秋雲照水, 弄余之頂也.
박제가(朴齊家)의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의 한 도막이다. 실감나다 못해 황홀한 묘사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볼 길 없는 묘향산(妙香山)의 구비구비가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다.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요, 한편의 시가 아닌가.
다시 한 대목을 보자.
금표(禁篻) 스님과 더불어 『법화경(法華經)』의 화택(火宅)의 비유를 강론하였다. 스님은 오십여 세로 송경(誦經)은 잘 하지만 사람과 마주하는 것은 꺼리는 듯했다. 그 형인 혜신(慧信) 또한 중이 되어 극락전(極樂殿)에 거처하는데 불경의 조예가 금표(禁篻)보다 낫다 한다. 내가 물어 보았다.
“중 노릇이 즐거운가?”
“제 한 몸을 위해서는 편합지요.”
“서울은 가보았소?”
“한 번 가보았지요. 티끌만 자옥히 날려 도저히 못살 곳 같습디다.”
내가 또 물었다.
“대사! 환속할 생각은 없소?”
“열둘에 중이 되어 혼자 빈 산에 산 것이 40년 올씨다. 예전에는 수모를 받으면 분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가엽기도 했었지요. 지금은 칠정(七情)이 다 말라버려, 비록 속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으려니와, 혹 속인이 된다 해도 무슨 쓸모가 있답니까? 끝까지 부처님을 의지타가 적멸(寂滅)로 돌아갈 뿐입지요.”
“대사는 처음에 왜 중이 되시었소?”
“만약 자기가 원심(願心)이 없다면 비록 부모라 해도 억지로 중 노릇은 시키지 못하지요.”
이날 밤 달빛은 마치도 흰 명주 같았다. 탑을 세 바퀴 돌고 술도 한 순배 하였다. 먼데 바람소리가 잎새를 살랑이니 쏴-아 하고 쏟아내는 듯 쓸어내는 듯하였다.
與禁寰師, 講正法華火宅喩. 師五十餘臘, 口能誦經, 向人疑疑. 其兄慧信亦爲僧, 住極樂殿, 經旨多於寰云, 問: “爲僧樂乎?” 曰: “爲一身則便.” “曾到京否?” 曰: “一人其中, 萬塵奔汩, 似不可居之地也.” 又問 : “師肯還俗否?” 曰: “十二爲僧, 獨住空山四十歲, 囊時猶遇侮則忿, 自願則憐. 今則七情枯矣. 雖欲俗不可得, 爲俗亦無用. 將終始依佛, 以歸于寂.” 曰: “師初何爲僧.” 曰: “若己無願心, 雖父母不能强此也.” 是夜望月如素. 繞塔三匝, 酒盃一巡. 遠籟在葉, 如瀉如掃.
객수(客愁)에 잠을 못 이루던 서울 선비가 탑 둘레를 맴돌다가 초로의 스님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다. 명주를 펼쳐놓은 듯 희고 고운 달빛, 바람은 쏴-아 물결 소리를 내고, 도도한 흥취는 몇 잔의 술로도 잠재울 수가 없다. 먼지만 날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 됩디다 하고 스님은 고개를 내젓는다. 환속을 말하는 짓궂은 농담에는 칠정(七情)이 다 말라버렸다고 대답한다. 달빛 아래 담소의 광경이 꿈속 같이 아련하다.
정지상(鄭知常)의 「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를 연상시킨다.
古徑寂寞縈松根 | 옛길은 적막해라 솔뿌리 얽혀 |
天近斗牛聯可捫 | 낮은 하늘 북두 견우 손 뻗으면 닿겠네. |
浮雲流水客到寺 | 뜬 구름 흐르는 물, 절 찾은 나그네 |
紅葉蒼苔僧閉門 | 붉은 잎 푸른 이끼, 스님은 문을 닫고. |
秋風微凉吹落日 | 산달이 떠오더니 잔나비 울음 우네. |
山月漸白啼淸猿 | 가을바람 싸늘히 지는 해 불어가자 |
奇哉尨眉一老衲 | 기이쿠나.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
長年不夢人間喧 | 긴 세월 시끄러운 세상 꿈 꾼 일 없네. |
솔뿌리를 밟으며 태고 속으로 나그네는 걸어 들어가고, 청청한 하늘은 머리를 누를 듯 낮게 내려와 반짝반짝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사는 일 하릴없어 절을 찾은 나그네를 맞이한 것은 발목을 덮는 낙엽과 푸른 이끼 낀 빗장 질린 산문(山門)이다. 아웅다웅 토닥대며 살아온 삶이 굳게 닫힌 산문(山門) 앞에서 무연하다.
박제가(朴齊家)는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를 이렇게 맺는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를 위주로 하나니, 노님에 날을 헤이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머물며,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을 뿐이다. 저 어지러이 떠들썩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대저 속된 자들은 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베푸니, 꽃 아래서 향을 사르고 차 마시는데 과일을 두는 격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내게 와서 묻는다.
“산 속에서 풍악을 들으니 어떻습디까?”
“내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이 낙엽 밟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요.”
凡遊以趣爲主, 行不計日, 遇佳卽止. 携知己友, 尋會心處, 若紛紜鬧熱, 非我志也. 夫俗子者, 挾妓禪房, 張樂水聲, 可謂花下焚香, 茶中置菓也.
或者來問曰: “山中聽何如?” 曰: “吾耳但聞水聲僧踏落葉聲.”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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