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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 9. 들 늙은이의 말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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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 9. 들 늙은이의 말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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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들 늙은이의 말

 

 

이와 비슷하게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산에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산거집구(山居集句)연작을 무려 100수나 남겼다. 집구(集句)란 이 사람 저 사람의 시에서 한 구절 씩 따와서 새로 조립하되 운자도 맞아야 하니, 순수한 창작은 아니라도 그 노고는 창작 이상의 품이 든다. 매월당 자신도 다음과 같이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 했다.

 

 

성화(成化) 무자년(戊子年, 세조 13, 1468) 겨울 금오산에 있을 때, 눈 오는 밤 화로를 안고 앉았자니, 고요하여 사람의 발소리는 없었지만 바람과 대가 우수수 소리를 내어 나의 흥취를 일으켰다. 인하여 산동(山童)과 함께 재를 헤쳐가며 글자를 써서 고인(古人)의 시구를 집구하니 산거(山居)의 취미에 합당함이 있었다.

成化戊子冬, 居金鼇山, 雪夜擁爐, 寂無跫音, 風竹蕭騷, 有起予之趣. 因與山童, 撥灰書字, 集古人句有當於山居之味. 摘成一律, 仍集百詠, 與好事者共之, 丙申夏, 碧山淸隱志. -梅月堂詩集卷之七

 

 

그 가운데 두어 수를 감상해 보자.

 

亂山擾擾水籣籣 凍月觀 우뚝우뚝 솟은 산물은 휘돌고
臥對寒松手自栽 皇甫檦 손수 심은 찬 솔을 누워서 보네.
老我十年枯淡過 氷 崖 십년을 더 늙어도 담백히 지내리니
可人携手話敲推 正 齋 벗의 손을 잡고서 시를 퇴고 하리라.

 

뒤의 작은 글자가 원작자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짜깁기 했는데도 한 수의 의경을 자연스레 이루었다. 깊은 산속 시냇물은 계곡의 험준을 못 이겨 콸콸 쏟아져 내리며 휘감아 도는데, 그 바쁜 모습 아랑곳 않고 누워 들창 밖의 찬 솔을 바라본다. 손수 심은 소나무가 낙락장송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에 다시 십년 세월을 더 보태더라도 고담(枯淡)’한 지금의 삶을 지켜가겠노라고 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이따금 마음에 맞는 벗과 더불어 시()를 퇴고하겠다 한다.

 

書卷紛紛雜藥囊 陸 游 어지러이 놓인 책에 약 주머니 뒤섞인 곳
倚床自炷水沈香 虞伯生 침상에 기대 앉아 수침향(水沈香)을 사르네.
柴扉草屋無人問 顧 萱 사립문의 초가집 찾는 이 없고
密雨斜侵薜荔牆 柳柳州 담쟁이 덩쿨 울 안으로 자옥한 비 빗겨 드네.

 

방안에는 여기저기 책들이 쌓여 있고, 천정에는 산에서 캐온 약초가 주머니 주머니 매달려 있다. 하루 종일 이책 저책 뒤적이던 주인은 피곤을 느낀다. 침상에 기대 앉아 향을 사른다. 가만히 피어오르는 향연(香烟) 속에서 그는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담쟁이 덩쿨은 어느덧 자라 흙담을 덮고, 빗발이 굵어진 빗줄기만이 그가 있는 방안을 기웃거리고 있다. 적막하면서도 고즈넉한 광경이다. 정신을 맑게 씻어준다.

 

山堂靜夜坐無言 川 老 고요한 밤 산집에 말없이 앉았는데
腰脊纔酸又要眠 千 巖 등허리 시큰하니 잠을 자야 하겠구나.
正伊麽時誰會得 張九成 이때의 이 마음을 그 누가 알리
一林黃葉送秋蟬 鄭 谷 온 숲 시든 잎은 가을 매미 전송하네.

 

적막한 밤 산집에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 곧추 세워 앉은 등과 허리가 뻐근해 오기 시작하니 밤도 이슥해진 모양이다. 시름이나 분노가 있어 잠 못 이루는 것이 아니니 그저 피곤하면 자고, 깨어나면 고요히 사물을 바라볼 뿐이다. 가만히 사물을 응시하다가 제 자리로 돌아선다. 이제 눈을 좀 붙여볼까. 이렇게 중얼거리던 시인은 마음속에 무언가 와 닿는 깊고 그윽한 느낌을 가졌다. 숲은 누런 잎을 떨구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이제는 없다.

 

 

노주인(老主人)의 장벽(腸壁)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여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 돋아 파릇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 소리에 잠착하다.

 

산중(山中)에 책력(冊曆)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정지용의 인동차(忍冬茶)이다. 매월당의 위 시 다음에 얹어 읽으면 좋을 법하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2.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3. 청산에 살으리랏다

4. 청산에 살으리랏다

5.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6.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7.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8. 들 늙은이의 말

9. 들 늙은이의 말

10.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12.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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