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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辨)②
滿庭月色無烟燭 | 뜨락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등불 |
入坐山光不速賓 | 둘러앉은 산빛은 뜻밖의 손님. |
更有松弦彈譜外 | 솔바람 악보 없는 가락 울리니 |
只堪珍重未傳人 | 소중히 지닐 뿐 전할 수 없네. |
고려 때 최충(崔沖)의 「절구(絶句)」이다. 달빛을 등불 삼아 자리를 벌리자, 청하지도 않은 손님 청산이 슬그머니 차지하고 들어와 앉는다. 손님이 왔으니 풍악이 없을 쏘냐. 솔바람은 악보로 옮길 수 없는 미묘한 곡조를 연주한다. 맑고 상쾌한 경지다. 이 거나하고 해맑은 운치를 어찌 말로 다하랴. ‘소이부답(笑而不答)’할 뿐이다.
茅齋連竹逕 秋日艶晴暉 | 띠집은 대숲 길로 이어져 있고 가을 날 햇살은 곱기도 하다. |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 | 열매가 익어서 축 쳐진 가지 참외도 달리잖은 끝물의 덩쿨. |
遊蜂飛不定 閒鴨睡相依 | 나는 벌은 쉴 새 없이 잉잉거리고 오리는 한가로이 기대어 조네. |
頗識身心靜 棲遲願不違 | 몸과 맘 너무나 고요하구나 물러나 살자던 꿈 이루어졌네. |
서거정(徐居正)의 「추일(秋日)」이다.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그 뒤 대숲 사이로 소로길이 나있다. 가을 햇살은 지붕 위에 고운 깁을 펼쳐 얹었다. 빨갛게 익은 열매가 무겁다고 가지들은 어깨를 축 늘이고, 여름내 입맛을 돋우던 참외는 가을 서리 김에 이제는 끝물이다. 벌들은 그래도 미련이 남아 참외 덩쿨 근처에서 하루 종일 부산스럽다. 그들도 이제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옆 연못에선 오리가 태평스레 목을 감고 졸고 있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인의 내면에 어느새 기쁨이 물오른다. 몸과 마음이 가뜬하다. 물러나 쉬자던 소원은 이제야 이루어진 것이다.
인용
3. 청산에 살으리랏다①
4. 청산에 살으리랏다②
8. 들 늙은이의 말①
9. 들 늙은이의 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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