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②
말로만 되뇌는 ‘나 돌아갈래’
송대(宋代) 곽희(郭熙)는 유명한 『임천고치(林泉高致)』 가운데 「산수훈(山水訓)」에서 이렇게 말한다.
군자가 산수(山水)를 사랑하는 까닭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구원(丘園)에서 바탕을 기름은 항상 머무는 바이고, 천석(泉石)에서 휘파람 불며 노님은 늘 즐기는 바이며, 고기 잡고 나무하며 숨어 지냄은 늘 즐거워하는 바이고 원숭이나 학이 울고 나는 것은 항상 친하게 지내는 바이다. 티끌세상의 시끄러움과 굴레에 속박됨은 인정(人情)이 항상 싫어하는 바이나, 연하(烟霞) 자옥한 가운데 사는 신선은 인정(人情)이 늘 추구하면서도 볼 수는 없는 바이다.
그러나 사람이 저 혼자 즐겁자고 사회적 책임을 다 버려두고 이세절속(離世絶俗)하는 삶을 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임천연하(林泉烟霞)를 향한 사람들의 선망은 언제나 마음속에만 자리 잡고 있을 뿐 눈앞에 펼쳐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다못해 산수화(山水畵)를 그려 벽에 붙여 놓고 집을 나서지 않고 방에 앉아 시내와 골짝을 바라보고 원숭이 울음과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산광수색(山光水色)에 시선을 주며 임천(林泉)을 향한 열망을 달랜다는 것이다. 산수화(山水畵)가 흥성하게 된 원인에 대한 화가 곽희(郭熙)의 그럴듯한 진단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더럽게 보아 강호로 숨으려는 귀거래(歸去來)에 대한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구두선(口頭禪)이다. 오죽하면 옛 시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실천 없는 귀거래(歸去來)에 대한 열망을 비꼬았겠는가.
귀거래(歸去來) 귀거래(歸去來)한들 물러간 이 긔 누구며
공명(功名)이 부운(浮雲)인 줄 사람마다 알것마는
세상(世上)에 꿈 깬 이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지금의 은둔자들은 뻐꾸기 은자
그런가 하면 다른 꿍꿍이속을 가지고 강호에 들어와서는 귀거래(歸去來)를 실천한 양 스스로를 떠벌리는 뻐꾸기 은사(隱士)들로 적지 않았다. ‘뻐꾸기 은사’란 조선 중기의 학자 권응인(權應仁)의 『송계만록(松溪漫錄』에 나오는 말이다.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할 때 술래가 자기 숨은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으면, 숨은 아이는 공연히 ‘뻐꾹 뻐꾹’하며 자신이 숨은 곳을 알려준다는 것인데, 이 하는 꼴이 꼭 가짜 은사(隱士)들이 방편 상 강호에 숨어 자기가 여기 숨었으니 알아 달라고 현실을 기웃기웃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은 데서 나온 말이다.
당나라 때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고 학행(學行)에만 몰두하는 불구문달(不求聞達)의 선비를 찾아 유일(遺逸)로 천거하는 제도가 있었다. 하루는 한 서생(書生)이 종종걸음으로 서울로 들어오므로 길 가던 사람이 무슨 일로 그리 바삐 가느냐고 물었더니, 서생(書生)이 “장차 불구문달과(不求聞達科)에 응거(應擧)하려 합니다.”고 했다는 우스개이야기가 있다. 『인설록(因話錄)』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 또한 명예를 향한 인간의 허망한 집착을 안쓰럽게 전해준다.
인용
3. 청산에 살으리랏다①
4. 청산에 살으리랏다②
8. 들 늙은이의 말①
9. 들 늙은이의 말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