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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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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산수(山水)의 미학(美學), 산수시(山水詩) -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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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옛 사람의 문집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에 많은 산수유기(山水遊記)와 만나게 된다. 유기(遊記)는 산수(山水)를 향한 고인(古人)의 진지한 열정의 산물이니, 여기에는 자연 앞에 선 외경이 있고, 인간의 왜소를 돌아보는 겸허가 있다. 오늘날 이들 유기(遊記)는 고작 수필의 대접 밖에 못 받아 설 자리를 잃고 한문학 연구자들에게도조차 외면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구도자의 심경이 되어 산수간을 노닐던 고인들의 그 헌활(軒豁)한 정신의 경계도 다시 만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고목(古木)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고, 껍질 벗음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으며,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보는 것 같고,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는데, 돌들끼리 비벼 표백되고 깔리어 그런가 싶었다. 돌빛은 핥은 듯 불그스레 윤기가 나고 매끄러웠다. 한 필 비단 같은 가을 햇살이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펼쳐지자, 또 시내가의 모래는 모두 담황색인듯 하였다. (중략)

古木衣絶壁而枯, 兀如鬼身. 蟹如灰色, 剝如老蛇縣退, 禿如病䲭蹲顧. 腹穿而枵, 旁無一枝. 依山之石黑, 沿逕之石白, 浸溪之石靑綠. 其疑澼之所摩, 疏之所渡, 石光如舐, 潤赤而滑. 一匹秋暉, 遙鋪楓間, 叉疑洞沙皆淡黃也.

 

우러러 토령(土嶺)을 보니 오리 쯤 되겠는데, 잎진 단풍나무는 가시와 같고 흘러내린 자갈돌은 길을 막아선다. 뾰족한 돌이 낙엽에 덮였다가 발을 딛자 비어져 나왔다. 벌렁 나자빠질 뻔하다가 일어나느라 손을 진흙 속에 묻고 말았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웃을까봐 부끄러워 단풍잎 하나를 주어 들고서 그들을 기다리는 체하였다.

仰見土嶺, 可五里. 禿楓如棘, 流礫橫逕. 尖石冒葉, 遇足而脫, 幾跌而起. 手爲搨泥, 羞後人嗤笑, 迺拾一紅葉以待之.

 

만폭동(萬瀑洞)에 앉으니 석양이 얼굴에 비추인다. 거대한 바위는 산마루 같은데 긴 폭포가 바위를 타넘고 흘러 내려온다. 물굽이는 세 번을 굽이쳐서야 비로소 바닥을 짓씹는다. 물줄기가 움푹 들어갔다가 소용돌이를 치며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고사리 순이 주먹을 말아 쥔 것 같고, 용의 수염 같기도 하며 범의 발톱 같기도 하여 움켜쥘 듯하다가는 스러진다. 내뿜는 소리가 흘러 내려 하류로 서서히 넘치더니, 주춤하다가는 다시금 내뿜는데 마치 숨을 헐떡이는 것만 같다. 한참을 가만이 듣고 있으려니까 나 또한 숨이 차다. 이윽고 잠잠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하더니 조금 있자 더욱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坐萬瀑洞, 夕陽映人. 巨石如嶺, 長瀑踰來. 流凡三折, 始齧於根, 凹而湍起, 如蕨芽叢拳, 如龍鬚, 如虎爪, 如攫而止. 噴聲一傾, 下流徐溢, 縮而復泄, 如喘息. 靜聽久之, 身亦與之呼吸. 小焉闃然無聞, 又小焉, 益厲漰湱也.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붙이고 소매는 팔꿈치 위로 말아 올리고 두건과 버선을 벗어 깨끗한 모래 위에 던져두고 둥근 돌에 엉덩이를 고여 고요한 물가에 걸터앉았다. 작은 잎이 떴다 가라앉는데 배 쪽은 자줏빛이고 등 쪽은 누런빛이었다. 이끼가 엉겨 돌을 감싸니 이들이들 한 것이 마치 미역 같았다. 발로 물살을 가르자 발톱에서 폭포가 일어나고, 입으로 양치질하니 비는 이빨 사이로 쏟아졌다. 두 손으로 허위적 거리자 물빛만 있고 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눈꼽을 씻으며 얼굴의 술기운을 깨노라니, 때마침 가을 구름이 물 위에 얼비쳐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는구나.

褰袴至脛, 擖袂過肘, 脫巾與襪, 投之淨沙. 圓石支尻, 踞水之幽, 小葉沈浮, 腹紫背黃, 凝苔裏石, 燁如海帶. 以足割之, 瀑激于爪, 以口潄之, 雨瀉于齒. 雙手泳之, 有光無影, 洗眼之白, 醒面之紅, 時秋雲照水, 弄余之頂也.

 

 

박제가(朴齊家)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의 한 도막이다. 실감나다 못해 황홀한 묘사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가볼 길 없는 묘향산(妙香山)의 구비구비가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하다.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요, 한편의 시가 아닌가.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2. 가어옹(假漁翁)과 뻐꾸기 은사

3. 청산에 살으리랏다

4. 청산에 살으리랏다

5.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6.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7.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변()

8. 들 늙은이의 말

9. 들 늙은이의 말

10.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11.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12. 가을 구름이 내 정수리를 어루만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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