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齋集序
곤궁해져야 시가 전공하게 된다
文章一技也 而必專而後工 蓋非紛華富貴馳逐聲利者所能專也 故自古工於詩者 大率窮愁羈困 不遇於時 非工之能使窮 窮自能專而專自能工也
달했음에도 외직에 있어 시만을 생각했기에 巧할 수 있었다
余觀習齋公之詩 沖澹而有味 典雅而無華 是固臻於妙而得其精者也 苟非窮於時者 何能若是專哉 然公以妙年大科 聲華籍甚 立朝五十年 官至禮部侍郞 不可謂窮也 而於詩若是專何也 余少也 寓居公第之傍 又與公之諸子遊 常見公官閑罕出 出則樸馬殘僮 委蛇以行 雖身縻簪笏 而意在推敲 入則閉戶靜坐 諷詠自娛 於物無所嗜好 唯喜古書 手不釋卷 上自墳典 以至諸子百家 奇辭奧義 極探窮搜 孜孜兀兀 樂之終身而不知倦 此公之所以專於詩也
벼슬자리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시로 대가가 되었다
然則公果無意於世 而直爲操觚弄墨者流哉 嘗聞公少與安公名世,尹公潔相友善 乙巳之禍 二公俱陷不測 自是擺落世事 不復與人交游 人有來訪者 問無恙外 不接一語 凝然如泥塑人 人莫敢窺其際 家貧屢空 妻子不免飢寒 怡然不以爲意 凡喜怒憂樂無聊不平 必於詩而發之 不以外慕榮辱動其專 蓋寓智於詩而隱跡於吏者也 嗚呼 以公之文章德量 倘能俯仰而諧俗 則其成就事業 豈可量也 而乃韜光鏟彩 絶意榮進 與世相忘 一混于詩 此豈公之本心也 嚮使公有可以致位鐘鼎 笙鏞治道 則豈必勤苦攻詩 專於一技而止哉 惟其不遇於一時 故乃能大肆於詩 而傳之於後世 豈天以文章屬柄於公而使之專耶 然則公之不遇 亦天意也 其視暫時榮耀 泯沒無傳者 爲如何哉 觀公之詩 可以想見公之遺風 吁可尙也 余懼世之人徒以文章視公 而不知其全德達識之爲可師法 遂書此弁之卷首云 -『月沙集』
해석
곤궁해져야 시가 전공하게 된다
文章一技也 而必專而後工
문장은 하나의 기예(技藝)인지라 반드시 전공(專攻)한 뒤에야 공교(工巧)해지는 법이니,
蓋非紛華富貴馳逐聲利者所能專也
사치하고 부귀하며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자는 전공할 수 없다.
故自古工於詩者 大率窮愁羈困 不遇於時
그러므로 예로부터 시에 공교한 자는 대체로 곤궁에 시달리며 당대에 불우한 평생을 보내니,
非工之能使窮
시가 사람을 곤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窮自能專而專自能工也
곤궁하면 절로 시를 전공하게 되고, 전공하면 절로 시가 공교해지는 것이다.
달했음에도 외직에 있어 시만을 생각했기에 巧할 수 있었다
余觀習齋公之詩 沖澹而有味 典雅而無華
내가 습재공(習齋公 권벽(權擘))의 시를 보건대, 충담(沖澹)하고 맛이 있으며 전아(典雅)하고 화려하지 않으니,
是固臻於妙而得其精者也
이는 진실로 오묘한 경지에 이르러 정교함을 얻은 것이다.
苟非窮於時者 何能若是專哉
진실로 당대에 곤궁한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처럼 깊이 전공할 수 있겠는가.
然公以妙年大科 聲華籍甚
그러나 공은 젊어서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立朝五十年 官至禮部侍郞 不可謂窮也
입조(立朝)한 지 50년에 벼슬이 예부 시랑(禮部侍郞)에 이르렀으니, 곤궁했다고 할 수는 없다.
而於詩若是專何也
그런데도 시에 있어서 이처럼 깊이 전공하였으니, 어찌된 것인가?
余少也 寓居公第之傍 又與公之諸子遊
내가 어릴 적에 공의 집 곁에 우거(寓居)하였고 또 공의 자제들과 종유(從遊)하였다.
常見公官閑罕出
늘 보면 공은 한직(閑職)을 맡은 터라 외출이 드물었고,
出則樸馬殘僮 委蛇以行
외출하면 볼품없는 말을 타고 초라한 하인을 데리고 점잖은 모습으로 다녔다.
雖身縻簪笏 而意在推敲
비록 몸은 관직에 매었으나 뜻은 퇴고(推敲)에 있어
入則閉戶靜坐 諷詠自娛
집에 들어오면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아 시를 읊조리면서 스스로 즐겼으며,
於物無所嗜好 唯喜古書 手不釋卷
달리 기호품(嗜好品)이 없고 오직 고서(古書)만 좋아하여 수불석권(手不釋卷)하였다.
上自墳典 以至諸子百家 奇辭奧義
그리하여 위로는 분전(墳典)으로부터 아래로는 제자백가(諸子百家)에 이르기까지 기이한 구절과 오묘한 뜻을 깊이 파헤치고
極探窮搜 孜孜兀兀 樂之終身而不知倦
늘 부지런히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평생을 보내며 지칠 줄 몰랐다.
此公之所以專於詩也
이것이 공이 시를 전공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벼슬자리를 추구하지 않았기에 시로 대가가 되었다
然則公果無意於世 而直爲操觚弄墨者流哉
그렇다면 공은 과연 세상에 뜻이 없고 단지 문묵(文墨)에만 종사한 사람인가?
嘗聞公少與安公名世,尹公潔相友善
일찍이 듣건대, 공이 젊어서 안공 명세(安公名世), 윤공 결(尹公潔)과 서로 친하였다가
乙巳之禍 二公俱陷不測
을사사화(乙巳士禍)로 두 공(公)이 모두 불측(不測)한 화를 당하자
自是擺落世事 不復與人交游
이때부터 세사(世事)를 떨쳐 버리고 다시는 남과 사귀지 않았으며,
人有來訪者 問無恙外 不接一語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수인사 외에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아
凝然如泥塑人 人莫敢窺其際
마치 진흙으로 빚은 소상(塑像)처럼 가만히 있었으므로 사람들도 감히 틈을 보아 말을 건넬 수 없었다고 한다.
家貧屢空 妻子不免飢寒
집안이 가난하여 양식이 자주 떨어지는 통에 처자(妻子)가 굶주림과 배고픔을 면할 수 없었으나
怡然不以爲意
공은 태연한 모습으로 개의치 않았으며,
凡喜怒憂樂無聊不平 必於詩而發之
무릇 기쁨, 노여움, 근심, 즐거움 등의 감정과 무료, 불평 등의 심기를 반드시 시(詩)로 발산하였고
不以外慕榮辱動其專
외부적인 영욕(榮辱) 따위로 시에 전공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니,
지혜는 시에 담고 자취는 관직에 은둔한 분이라 하겠다.
嗚呼 以公之文章德量 倘能俯仰而諧俗
아, 공의 문장과 덕량(德量)으로 적당히 세상에 맞추어 가며 살았다면
則其成就事業 豈可量也
그 성취한 사업이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而乃韜光鏟彩 絶意榮進 與世相忘 一混于詩
그런데도 뛰어난 재능을 감추고 영진(榮進)에 뜻을 끊은 채 세상은 잊고 시에만 몰두하며 살았으니,
此豈公之本心也
이 어찌 공의 본심이겠는가.
嚮使公有可以致位鐘鼎 笙鏞治道
공이 높은 벼슬에 올라 치도(治道)를 펼 수 있었다면
則豈必勤苦攻詩 專於一技而止哉
무엇 하러 굳이 애써 시에 주력하여 하나의 기예를 전공하는 정도로 그쳤겠는가.
惟其不遇於一時 故乃能大肆於詩 而傳之於後世
당대에 불우하였기 때문에 시에 재능을 높이 떨쳐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니,
豈天以文章屬柄於公而使之專耶
이 어찌 하늘이 문장의 권병(權柄)을 공에게 주어 마음대로 휘두르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然則公之不遇 亦天意也
그렇다면 공이 불우한 것은 하늘의 뜻이니,
其視暫時榮耀 泯沒無傳者 爲如何哉
잠시 영화를 누리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져 가는 자들에 비하면 어떠하겠는가.
觀公之詩 可以想見公之遺風 吁可尙也
공의 시를 보면 공의 유풍(遺風)을 상상해 볼 수 있으니, 아, 훌륭하도다.
余懼世之人徒以文章視公
나는 세상 사람들이 한갓 문장만으로 공을 평가하고
而不知其全德達識之爲可師法 遂書此弁之卷首云 -『月沙集』
그 큰 덕과 높은 식견이 사표(師表)가 될 만한 줄은 모를까 염려스러워 이 글을 써서 서문으로 삼는 바이다.
인용
- 자취는 관직에 은둔한 : 녹봉에 연연하지 않고 낮은 직급의 관리로 있음으로써 이름을 감추고 사는 것을 이은(吏隱)이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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