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시(詩)는 궁달(窮達)과는 무관하다는 주장②
또 김려(金鑢)는 「정농오시집서(鄭農塢詩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양수(歐陽修)가 매성유(梅聖兪)의 시를 논하면서 궁하면 시가 더욱 뛰어나다고 여겼고, 황산곡(黃山谷)은 두보(杜甫)의 시를 논하면서 늙어갈수록 시가 더욱 좋아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나는 홀로 궁하다고 해서 좋아지거나 늙어갈수록 좋아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뛰어난 자만이 더욱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내가 삼당(三唐) 아래로 송원명청(宋元明淸) 및 우리나라 문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거의 수십 백 종을 살펴보니, 궁한 사람은 더욱 구슬펐고, 늙은 사람은 더욱 거칠고 졸렬해서 좋은 것이 거의 드물었다. 이로써 볼진대 오직 뛰어난 자만이 뛰어나게 될 수 있고, 궁함이 반드시 사람을 뛰어나게 하지도 못하고, 늙음이 반드시 사람을 뛰어나게 하지도 못함이 분명하다.
歐陽永叔論梅都官詩, 以爲窮而益工, 黃魯直論杜子美詩, 以爲老益工, 談者皆曰至言, 而前輩以孟貞曜比聖兪, 陸渭南配少陵. 然予獨以爲非窮而能工, 老而能工, 直工者益工也. 何則? 余閱三唐以下至宋元明淸及我東人詩集, 幾數十百種, 其窮者益酸寒, 老者益蕪拙, 而其工者幾希. 由是觀之, 惟工者可工, 而窮不必工人, 老不必工人也明矣.
요컨대 시의 공졸(工拙)은 궁달(窮達)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타고난 능력과 관계되는 것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조선 중기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이정구(李廷龜)는 「습재집서(習齋集序)」에서 권벽(權擘)의 시를 논하면서, 권벽은 50년 동안 조정에 서서 벼슬하였으니 결코 궁(窮)하다 할 수 없는데, 그의 시는 어찌하여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전제하고, “문장은 하나의 재주이다. 반드시 오로지 한 뒤에야 공교해지나니, 대개 번화하고 부귀로워 명성과 이욕을 쫓는 자들이 능히 오로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시에 공한 자는 대개 궁하고 근심하고 떠돌며 괴로워함을 거느려 때에 있어 만나지 못하니, 공교함이 능히 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궁함이 스스로 능히 오로지 하여, 오로지 함을 이루면 저절로 능히 공교해지는 것이다[文章一技也 而必專而後工 蓋非紛華富貴馳逐聲利者所能專也 故自古工於詩者 大率窮愁羈困 不遇於時 非工之能使窮 窮自能專而專自能工也].”라고 하여,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 대신 ‘시전이후공(詩專而後工)’을 내세웠다.
한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제이재동남이시후(題彛齋東南二詩後)」에서, “구양수(歐陽修)가 시를 논하면서 시는 궁한 뒤에 좋아진다고 하였다. 이는 다만 빈천(貧賤)의 궁(窮)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부귀(富貴)하면서 궁(窮)한 것 같음에 이른 뒤에야 그 궁(窮)은 궁(窮)이라고 말할 수가 있으니, 부귀한 자가 궁한 뒤에 좋아지는 것은 또한 빈천(貧賤)한 자가 궁한 뒤에 좋아지는 것과는 다르다[歐陽論詩窮而工. 此但以貧賤之窮言之也. 至如富貴而窮者, 然後其窮乃可謂之窮, 窮而工者, 又有異於貧賤之窮而工也].”고 하여, 빈천지궁(貧賤之窮) 아닌 부귀지궁(富貴之窮)에 기우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궁하다고 해서 시가 다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달하였다 하여 시가 나쁘란 법은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인의 정신에 달려 있을 뿐이다. 시가 궁해진 뒤에 더 좋은 것은 얼마간 사실이지만은, 이를 수긍하는 것이 달한 이의 시를 아예 인정치 않는 편협으로 치닫는다면 이것은 곤란하다.
인용
10. 탄탈로스의 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