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훈사(表訓寺) 스님 혜묵(慧默)에게 주며
증표훈사승혜묵서(贈表訓寺僧慧默序)
유몽인(柳夢寅)
天啓二年冬, 於于子隱居于金剛山之表訓寺, 寺之僧慧默唁曰: “子之春秋有幾?” 曰: “大易之卦數也.” 曰: “子之廢幾載?” 曰: “除五日, 卽六載矣.” 曰: “緣何到此?” 曰: “爲賞秋來, 將餞歲也.” “何病之久?” 曰: “勞飢之故也.” “何勞且飢?”
曰: “繇嶺西越阻險, 並東海北轉入楓嶽, 或驂或輿, 或杖而步, 僮奚治盤飧, 酸醎節適, 不稱於老口, 所以病也.” “何病之稍間, 而讀書晷繼燭, 作詩文累簡牘耶?” 曰: “性所嗜, 不自疲也.”
默曰: “子誤矣! 余觀夫今世擯屛失跡者, 或一歲或數歲或不歲月皆起廢, 所以求進之多階也. 子何獨不循衆媒進, 至五六載之久而益自遠世爲? 余觀人甲子重還之後, 坐則噫, 起則呀, 使童子抑搔於一室, 猶呻號欠安. 子何耐疲頓險巇, 以快一時心目哉? 垂死而甦, 氣力有幾, 復何勤勤於書籍札翰, 以浪耗魂精乎?”
於于子怫然色變, 聲厲而應之曰: “子誠今人, 何不以古蘄於我耶? 子夏不云乎: ‘死生有命, 富貴在天.’ 使富貴求而可致, 則荀卿ㆍ韓非年少而南面, 何苦落拓於下流? 使死生由勞逸引促, 則豪華之信陵豈有墳, 負薪之榮期豈至於垂白乎? 况世路艱危, 劇太行羊腸, 覆粟折股, 前後車相襲, 豈比我山海之遊, 或駕或御, 適心怡神於叢桂中哉? 且也余嘗病古人爲文章, 皆偏一而不周, 太史公ㆍ揚雄能文而不能詩, 太白ㆍ子美能詩而不能文. 故一生勤悴, 思欲左右兼而兩臻其閫, 所著積五十餘卷, 而文半焉詩半焉.
嚮在三十年前, 富筋力善登陟, 窮蒐內外嶽莫我若也. 有遊山錄一通, 行于東方, 失之兵火. 及今脚力已軟, 無復昔日勝賞, 而永嘉之謝詩, 永州之柳記, 卒不可落莫, 子豈以今日之行官過客費供候擾攘山林方我哉?
且也我今年卽呂洞賓化仙之歲也, 雖死於山, 以靑嶂爲棺槨, 以楓檜爲垣衛, 香爐峰爲香爐, 石馬峰爲石馬, 以紅霞白雲靑嵐爲朝夕之饗, 與永郞ㆍ述郞飛吟於東海之畔, 吾之死不亦榮乎?”
於是默合手而拜曰: “貧道生不聞仙間綺語, 子之言, 安期不如.” 『於于集』 권4
해석
天啓二年冬, 於于子隱居于金剛山之表訓寺, 寺之僧慧默唁曰: “子之春秋有幾?” 曰: “大易之卦數也.”
천계 2년(1622, 광해군14) 겨울에 어우자(於于子)가 금강산 표훈사(表訓寺)【표훈사(表訓寺): 금강산 4대 사찰(유점사, 장안사, 신계사, 표훈사)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찰이다. 강원도 금강군 내금강면 장연리에 소재하며,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97호이다.】에 은거했는데, 절의 스님 혜묵(慧默)이 “그대 춘추는 어찌됩니까?”라고 물었고 “대역(大易) 괘의 숫자인 64입니다.”라고 말했다.
曰: “子之廢幾載?” 曰: “除五日, 卽六載矣.”
스님이 “그대가 버려진 지 몇 년인가요?”라고 묻기에 “5일을 빼면 곧 6년입니다.”라고 말했다.
曰: “緣何到此?” 曰: “爲賞秋來, 將餞歲也.”
스님이 “무슨 이유로 여기에 이르렀나요?”라고 묻기에 “가을을 감상하러 왔다가 장차 한 해를 보내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何病之久?” 曰: “勞飢之故也.”
스님이 “어째서 병이 오래되었나요?”라고 묻기에 “애쓰고 굶주렸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何勞且飢?”
스님이 “어째서 애쓰고 또 굶주렸나요?”라고 말했다.
曰: “繇嶺西越阻險, 並東海北轉入楓嶽, 或驂或輿, 或杖而步, 僮奚治盤飧, 酸醎節適, 不稱於老口, 所以病也.”
내가 “영서(嶺西)를 경유하여 험한 지역을 넘어 아울러 동해 북쪽으로 꺾어 풍악산에 들어옴에 혹은 말을 타기도 혹은 가마를 타기도 혹은 지팡이를 짚고 걷기도 했으며 어린 머슴이 반찬을 만들어오는데 시고 짠 것은 절도에 맞았지만 노인의 입에 알맞지 않아 병든 까닭입니다.”라고 말했다.
“何病之稍間, 而讀書晷繼燭, 作詩文累簡牘耶?” 曰: “性所嗜, 不自疲也.”
스님이 “어찌하여 병이 조금 낫자 독서하길 햇빛 비출 때부터 촛불 비출 때까지 이어 시문을 지어 종이를 쌓고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본성이 즐기는 것으로 절로 피로하지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默曰: “子誤矣! 余觀夫今世擯屛失跡者, 或一歲或數歲或不歲月皆起廢, 所以求進之多階也.
혜묵 스님이 말했다. “그대가 잘못됐소! 제가 보니 지금 세상에 쫓겨나 자취를 잃은 자라도 혹은 1년에 혹은 수년에 혹은 1년이 안 되어 모두 다시 기용되니[起廢] 나아가길 구한 많은 차례 때문입니다.
子何獨不循衆媒進, 至五六載之久而益自遠世爲?
그대는 유독 대중을 따라 기용되려 하지 않고 5~6년의 오랜 세월에 이르도록 더욱 스스로 세상에 멀어지려 하십니까?
余觀人甲子重還之後, 坐則噫, 起則呀, 使童子抑搔於一室, 猶呻號欠安.
제가 보니 사람의 나이가 환갑이 된 후에 앉으면 한숨 쉬고 일어나면 입을 벌리며 아이들에게 한 방에서 누르고 긁게 하는데도 오히려 앓아대며 편안치 않아 합니다.
子何耐疲頓險巇, 以快一時心目哉?
그대는 어째서 피로함을 참고 험한 산에서 넘어진 채 한 때의 마음과 눈만을 상쾌히 하려 하십니까?
垂死而甦, 氣力有幾, 復何勤勤於書籍札翰, 以浪耗魂精乎?”
거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 기력이 얼마나 있다가 다시 책과 편지에 부지런하고도 부지런히 하면서 넋과 정신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於于子怫然色變, 聲厲而應之曰: “子誠今人, 何不以古蘄於我耶?
어우자가 붉으락푸르락 얼굴색이 변하며 소리를 높여서 응답했다. “그대는 참으로 지금 사람으로 어찌 옛날을 기준으로 저에게 바라지 않나요?
子夏不云乎: ‘死生有命, 富貴在天.’ 使富貴求而可致, 則荀卿ㆍ韓非年少而南面, 何苦落拓於下流?
자하(子夏)가 ‘죽고 사는 건 운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가령 부귀가 구해서 성취될 수 있다면 순경(荀卿)과 한비자(韓非子)도 나이가 젊었을 적에 남면할 텐데 어찌 괴롭게 낮은 부류에서 불우한 환경에 빠졌겠습니까?
使死生由勞逸引促, 則豪華之信陵豈有墳, 負薪之榮期豈至於垂白乎?
가령 죽고 사는 것이 수고로움이나 편안함, 느림이나 빠름에 따른 것이라면 호화롭게 산 신릉군(信陵君)은 어째서 무덤에 있고 땔나무 지던 영계기(榮啓期)【영계기(榮啓期): 춘추 시대의 隱士인 榮啓期를 말한다. 영기의 ‘삼락(三樂)’이 유명하다. 영계기가 鹿裘에 새끼 띠를 한 초라한 행색으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는데, 공자(孔子)가 선생의 즐거움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하늘이 낳은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나는 이미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남녀의 구별이 있어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은데 나는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사람이 태어나 강보(襁褓)를 면치 못하고 죽는 자도 있는데 내 나이 지금 90이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가난은 선비의 떳떳한 도이고 죽음은 인생의 끝이니,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하였다. 이는 곧 지족자락(知足自樂)함을 말한다. 『열자(列子)』 「천서(天端)」】는 어째서 거의 100살에 이르렀습니까?
况世路艱危, 劇太行羊腸, 覆粟折股, 前後車相襲, 豈比我山海之遊, 或駕或御, 適心怡神於叢桂中哉?
게다가 세상길의 힘듦과 어려움은 극심하기가 태항산(太行山)의 양장령(羊腸嶺)【太行山의 羊腸嶺: 태항산은 중국 산서성에 있는 험준한 산으로, 그 안에 있는 유명한 긴 고개 이름을 양장(羊腸)이라 한다. 참고로 태항산은 하내(河內)에서 시작해 북으로 유주(幽州)에 이르는 산맥으로, 백 개의 산봉우리가 있으며 13개 주 경계에 걸쳐 있다.】이라 곡식을 뒤엎고 다리가 부러져 앞뒤의 수레가 서로 덮으니 어찌 제가 산과 바다에서 유람하며 혹은 수레 타고 혹은 말 타며 계수나무 떨기 속【총계(叢桂): 총생(叢生)하는 계수나무를 가리킨다.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계수나무는 총생함이여, 산의 그윽한 곳이로다. 어엿하게 길이 굽었음이여, 가지가 서로 얽혔도다.[桂樹叢生兮, 山之幽. 偃蹇連蜷兮, 枝相繆.]”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는 원래 굴원(屈原)의 넋을 부르는 말로서, 전하여 고결한 은사가 있는 곳을 의미한다.】에서 마음에 맞고 정신에 기쁜 것에 비교하겠습니까?
且也余嘗病古人爲文章, 皆偏一而不周, 太史公ㆍ揚雄能文而不能詩, 太白ㆍ子美能詩而不能文.
또한 저는 일찍이 옛 사람이 문장을 지을 적에 모두 한 편에 치우쳐 아우르지 못함을 병통으로 여겼는데 태사공(太史公)과 양웅(揚雄)은 문장은 잘했지만 시는 잘하지 못했고 태백(太白)과 자미(子美)는 시는 잘 했지만 문장은 잘하지 못했습니다.
故一生勤悴, 思欲左右兼而兩臻其閫, 所著積五十餘卷, 而文半焉詩半焉.
그러므로 일생토록 부지런히 힘써서 좌우를 겸하고 두 가지를 깊은 경지에 나아가길 생각해서 저술하여 쌓인 50여권도 산문이 반절이고 시가 반절입니다.
嚮在三十年前, 富筋力善登陟, 窮蒐內外嶽莫我若也.
예전 30년 전에 근력이 넉넉해 등산을 잘 내외의 산을 궁리하며 찾아내기로 나만한 이가 없습니다.
有遊山錄一通, 行于東方, 失之兵火.
유산록(遊山錄) 한 통이 있어 우리나라에 간행됐지만 전쟁에 소실됐습니다.
及今脚力已軟, 無復昔日勝賞, 而永嘉之謝詩, 永州之柳記, 卒不可落莫, 子豈以今日之行官過客費供候擾攘山林方我哉?
지금에 이르러 다리 힘이 이미 연약해져 다시 예전처럼 좋은 경치 감상은 못하지만 영가(永嘉)의 산수를 읊은 사영운(謝靈運)의 시와 영주(永州)의 산수를 기록한 유종원(柳宗元)의 기문은 마침내 쇠락해 없어지진 않았으니 그대는 어째서 행차한 관리와 지나치던 나그네가 방문함에 낭비[費供]하고 산림을 요란케 하는 것에 저를 비교하시나요?
且也我今年卽呂洞賓化仙之歲也, 雖死於山, 以靑嶂爲棺槨, 以楓檜爲垣衛, 香爐峰爲香爐, 石馬峰爲石馬, 以紅霞白雲靑嵐爲朝夕之饗, 與永郞ㆍ述郞飛吟於東海之畔, 吾之死不亦榮乎?”
또 제가 올해 곧 여동빈(呂洞賓)【呂洞賓: 당(唐)나라 사람 여암(呂嵒)으로, 동빈(洞賓)은 그의 자이다. 황소(黃巢)의 난리에 집을 종남(終南)으로 옮겼는데 간 곳을 몰랐다는 신선이다. 유몽인과 같은 나이인 64세 때에 도를 극진히 닦아 육신을 가진 채 신선이 되어 대낮에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한다.】이 신선으로 변한 나이로, 비록 산에서 죽더라도 푸른 산을 관곽을 삼고 단풍과 회화나무로 우라리 삼으며 향로봉으로 향로를 삼고 석마봉으로 돌말을 삼으며 붉은 노을과 흰 구름과 푸른 이내로 아침과 저녁의 흠향하는 것로 삼고 영랑(永郞)과 술랑(述郞)【신라 효소왕(孝昭王) 때의 화랑으로, 남랑(南郞), 영랑(永郞), 안상(安詳)과 함께 총석정(叢石亭)에서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일포(三日浦)에는 ‘술랑도남석행(述郞徒南石行)’이라는 석각(石刻)이 있다고 한다.】과 동해의 언덕에서 날며 읊조린다면 제 죽음이 또한 영화롭지 않겠습니까?”
於是默合手而拜曰: “貧道生不聞仙間綺語, 子之言, 安期不如.” 『於于集』 권4
이에 혜묵 스님이 합장하고 절하며 “제[貧道, 스님의 자칭어]가 살아 듣지 못한 신선 세계의 아름다운 말로【綺語: 원래는 불교의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에 해당하는 열 가지 죄악 가운데 하나로 교묘하게 꾸며서 아름답게 만든 말인데, 여기서는 문장에 있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말을 일컫는다.】, 그대의 말은 안기생(安期生)【安期生: 진(秦)나라 때 은사이다. 하상장인(河上丈人)에게 선술(仙術)을 배워 당시 사람들이 천세옹(千歲翁)이라고 칭호했다. 진 시황이 동방(東方)으로 유람할 때에 초청하여 사흘간 함께 담론하고 수만금을 주었으나 버리고 갔다고 한다.】도 같지 못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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