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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그대를 보내는 눈물 때문에 대동강이 마르질 않네 시는 나에게 고통이었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으며, 여전히 맞닥뜨리기 싫은 그 무엇이었다. 고등학생 때 언젠가 시를 쓰라는 과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도무지 펜을 들어 쓸 수가 없었다. 시란 늘 분석해야 하고 정답이란 게 정해져 있으며, 중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내 시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만 배웠지, 한 번도 내 삶에서 편안하게 느껴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듯 시는 객관적인 잣대로 분석하고, 의미를 무작정 찾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시란 늘 이렇게 공부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니 시도 아무나 쓸 수 없는 거라 당연히 생각하게 됐다. 늘 벽과 같던, 맘 떠난 여인 같던 시..
20글자로 전한 협박 아닌 협박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신묘한 꾀는 천문을 꿰뚫었고 묘한 헤아림은 지리에 능통했네.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싸움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면 멈추시라. 『東文選』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與隋將于仲文」은 어떤 한문학사책을 펼쳐보든 제일 먼저 언급되는 시다. 그만큼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작품치고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대구의 구성 등이 절묘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죽했으면, 허균은 “비록 을지문덕과 진덕여왕의 시가 역사책에 모아져 있으나, 과연 그 손에서 나온 것인지 감히 믿을 수 없다.(『성소부부고』)”라고 했을 정도였을까. 대화의 달인, 을지문덕의 대화술 예전에 이 시를 배웠을 때 1, 2句가 대구로 되어 있다는 부분을 크게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을지문덕..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에 사무친 이안눌 (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권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말했던 것처럼, 시를 평가할 때 권필과 이안눌은 곧잘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송강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인 데다가, 돌아가신 스승을 느꺼워하며 시를 지었기 때문에 비교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허균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 오르내릴 정도였다면, 둘 사이는 매우 돈독했으리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권필과 이안눌의 지음 같은 관계 권필은 「宮柳詩」 로 인해 곤장을 맞게 됐고, 어찌나 심하게 맞았던지 귀양을 가던 도중에 죽었다는 얘기는 권필에 대해 얘기했던 그대로다. 권필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참 가슴 아픈 얘기지만, ..
스승 정철의 ‘將進酒辭’를 듣고서 마음 아파한 권필(過松江墓有感) 권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당연히 「宮柳詩」다. 광해군의 외척인 柳希奮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며 권필은 시를 지었다. 宮柳靑靑花亂飛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각주:1]? 『石洲集』 시가 사람을 죽이게 할 수도 있다 1구에 나오는 ‘柳’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임숙영을 생각했지만, 임숙영 자신은 그건 중전을 가리킨다고 말했고, 광해군도 이에 크게 화를 내며 신문을 하게 된다. 이때 권필은 “임숙영이 과거 시험 중 대책..
권필(權韠)의 ‘궁유시(宮柳詩)’와 시화(詩禍) 宮柳靑靑花亂飛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 『石洲集』 이미 이 시에 대한 내용은 이안눌이 쓴 「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故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의 감상 부분에서 짧게 다룬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선 잠시 언급만 했기에, 이번엔 시가 재앙이 된다는 ‘詩禍’를 중심으로 다뤄보기로 하자. 거침없는 기상과 우락부락한 풍채를 지닌 권필 우선 권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