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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이 사무친 이안눌(江頭誰唱美人詞)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이 사무친 이안눌(江頭誰唱美人詞)

건방진방랑자 2019. 2. 7.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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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에 사무친 이안눌

(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권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말했던 것처럼, 시를 평가할 때 권필과 이안눌은 곧잘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송강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인 데다가, 돌아가신 스승을 느꺼워하며 시를 지었기 때문에 비교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허균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 오르내릴 정도였다면, 둘 사이는 매우 돈독했으리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권필과 이안눌의 지음 같은 관계

 

권필은 宮柳詩로 인해 곤장을 맞게 됐고, 어찌나 심하게 맞았던지 귀양을 가던 도중에 죽었다는 얘기는 권필에 대해 얘기했던 그대로다. 권필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참 가슴 아픈 얘기지만, 그런 황당한 얘길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씻지 못할 상처가 된다. 더욱이 가까이 지내며 여러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안눌은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석주를 곡하며哭石洲라는 시를 썼다.

 

 

不恨吾生晩 只恨吾有耳

내가 늦게 태어난 것은 한스럽지 않으나, 다만 나에게 귀가 있다는 게 한스럽네.

萬山風雨時 聞着詩翁死

모든 산에 바람 불고 비올 때, 시옹이 죽었단 소식을 들었으니

 

권필은 1569년생이고, 이안눌은 1571년생이니 두 살 터울이 난다. 그러니 1구에서 늦게 태어났다는 것은 한스럽지 않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2구에서 갑자기 귀가 있다는 게 한스럽다고 했는데, 2구만 읽는 순간엔 이게 도대체 뭔 말이지?’란 황당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왜 하필 귀일까?’란 궁금증이 생기게 되는데, 이안눌은 친절하게도 그 이유를 3, 4구에서 말하고 있다. 3구의 비바람은 단순히 그 당시의 날씨를 서술해 놓은 건 아니니라. 절친을 잃었을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자연에 투영되어 맑은 날도 흐린 날처럼, 달밤은 밤도 천지사방이 감정에 겨워 눈물 흘리듯 폭우 쏟아지던 밤으로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권필이 죽었다는 소식을, 너무도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마침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선 권필을 詩翁으로까지 추앙한 시어가 눈에 띈다.

 

 

 

동악 이안눌은 동래부사로 재직하며 임란의 참상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기록을 시로 남겼다.

 

 

 

노래에만 살아 있는 스승

 

江頭誰唱美人詞

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나,

正是孤舟月落時

바로 이때는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때라네.

惆悵戀君無限意

애달프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무한한 뜻을

世間惟有女郞知

세상에서 오직 기녀만이 알아주는 구려. 東岳集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지나도, 사람은 가버려도 그가 지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 나를 괴롭게 만든다. 사람은 정감의 동물인지라 이성적인 것에 의해 휘둘리기보다 감성적인 것에 의해 많이 휘둘린다. 코로 맡아지는 어떤 냄새, 손끝으로 느껴지던 어떤 촉감, 귀로 들려오는 어떤 패턴의 진동과 같은 미세한 것들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될 때가 있고 그럴 때는 격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 날 이안눌에겐 스승이 지은 가사가 들려오고 있으니, 그게 온 감정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노래만 들어도 감정이 복받쳐 오르고, 현실의 서글픔은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그래서 3구에선 애달프다는 표현을 쓴 것이며, 4구에선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가사문학의 대가임에도 지금은 그저 歌妓만이 알아주는 상황이기에 인생무상을 절감했을 것이다.

남용익은 壺谷詩話에서 권필의 過松江墓有感라는 시의 빈 산 나뭇잎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空山木落雨蕭蕭)’이란 시구와 이안눌의 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나(江頭誰唱美人詞)’란 시구를 품평하며, ‘함께 뛰어나게 울려 퍼져서, 세상에서 감히 낫고 덜함을 가릴 수는 없다. 대체로 권필의 1구는 옹문자주의 거문고 소리가 갑자기 귀를 놀래켜 사람들에게 눈물 흘리지 않음이 없는 것 같고, 이안눌 시의 4구는 적벽의 퉁소소리 실 같이 끊아 계속 들려오는 것 같아 무한한 의취를 머금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상하를 나누긴 어렵다 해도 격조는 권필의 시가 낫다고 말했다.

 

 

 

▲  해운대 해수욕장에 박혀 있다던, 이안눌의 시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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