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筆洗說 (5)
건빵이랑 놀자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하루는 비가 오는데 마루를 배회하시다가 갑자기 쌍륙을 끌어당겨 왼손 오른손으로 주사위를 던져 갑ㆍ을 양편으로 삼아 대국을 하셨다. 그때 손님이 곁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놀이를 하셨다. 이윽고 웃으며 일어나셔서 붓을 당겨 남의 편지에 답장을 쓰시기를, “사흘 주야로 비가 내려 사랑스러운 한창 핀 살구꽃이 녹아서 붉은 진흙으로 되었습니다. 긴긴 날 애를 태우며 앉아서 혼자 쌍륙을 가지고 논답니다.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지요. ‘다섯이야!’ ‘여섯이야!’ 부르짖다 보니 오히려 상대편과 나라는 사이가 생겨나서, 승부에 마음이 쓰여 적수가 뒤집어지더군요. 나는 저를 모르겠답니다. 꼭같은 내 양손에 대해서도 사사롭게 여기는 바가 있는 것일까요? 저 ..
4. 가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진짜로 살아가는 법 “여보게, 연암!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무엇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던가? 『시경』에 실려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야 무에 대수로울 게 있겠나? 그러나 그 한편 한편의 행간에 담긴 마음을 읽을 때, 내 마음에 문득 느껴 감발感發되는 것이 있고, 저래서는 안 되지 하며 징창懲創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그저 『시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그 많은 주석을 줄줄 꿴다고 해서 『시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네. 그 마음을 읽어야지. 그것이 내 삶과 관련지어질 수 있어야지. 그저 지식으로만 읽는 『시경』에서 어찌 ‘사무사思無邪’의 보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단지 이 물건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래서 ..
3. 골동품 감식안은 완물상지가 아니다 봄 가을 한가한 날에는 마당에 물을 뿌려 쓸고는 향을 살라놓고 차를 끓여 감상하였으나, 늘 집이 가난하여 수장할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또 세속에서 이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 댈까 염려하여 답답해하며 내게 말하였다. “나를 완물상지玩物喪志로 비웃는 자들이야 어찌 참으로 나를 아는 것이겠는가? 대저 감상이란 것은 『시경』의 가르침일세. 곡부曲阜의 신발을 보고서 어찌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 자가 있겠으며, 점대漸臺의 북두성을 보고서 어찌 경계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내가 이에 그를 위로하여 말했다. “감상이라는 것은 구품중정九品中正, 즉 품계 매김을 바르고 공정하게 하는 학문일세. 옛날에 허소許劭가 착하고 간특함을 판별함이 몹시 분명하였다고 하나, 당시 세상에서 능..
2. 감식안을 가진 자에겐 才思가 필요하다 신라의 선비는 당나라로 가서 국학에 입학하였고, 고려 사람은 원나라에 유학하여 제과制科에 급제하였으니, 안목을 열고 흉금을 틔울 수가 있었다. 그 감상의 배움에 있어서도 대개 또한 당시 세상에서 환하게 빛났었다. 조선 이래로 3,4백년 동안 풍속이 날로 비루해져서 비록 해마다 연경과 교통한다고는 해도 썩어버린 한약재나 거칠고 성근 비단 따위뿐이다. 하우夏虞ㆍ은주殷周 적의 고기古器나 종요鍾繇ㆍ왕희지王羲之ㆍ고개지顧愷之ㆍ오도자吳道子의 진적이 어찌 일찍이 단 한 번이라도 압록강을 건너 왔겠는가? 新羅之士, 朝唐而入國學; 高麗之人, 遊元而登制科, 能拓眼而開胸. 其於鑑賞之學, 蓋亦彬彬於當世矣. 國朝以來, 三四百年, 俗益鄙野, 雖歲通于燕, 而乃腐敗之藥料, 麤疏之絲絹耳. 虞夏..
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옛날에 고기古器를 팔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팔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그 바탕은 딱딱한 것이 돌이었는데, 술잔으로나마 쓰려 해도 밖은 낮고 안이 말려있는데다, 기름 때가 그 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녀 보아도 거들떠 보는 자가 있지 않자, 다시금 부귀한 집을 돌았지만 값은 갈수록 더 떨어져 수백전에 이르게 되었다. 하루는 그것을 가지고 서여오徐汝五에게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여오가, “이것은 붓씻개이다. 돌은 복주福州 수산壽山의 오화석갱五花石坑에서 나온 것으로 옥 다음으로 쳐주니 민옥珉玉과 같은 것이다” 하고는 값의 고하를 묻지 않고 그 자리에서 8천을 주었다. 그 때를 벗겨내자 앞서 딱딱하던 것은 바로 돌의 무늬결이었고, 쑥색을 띤 초록빛이었다. 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