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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혼자하는 쌍륙 놀이 -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본문

책/한문(漢文)

혼자하는 쌍륙 놀이 -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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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하루는 비가 오는데 마루를 배회하시다가 갑자기 쌍륙을 끌어당겨 왼손 오른손으로 주사위를 던져 갑ㆍ을 양편으로 삼아 대국을 하셨다. 그때 손님이 곁에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 놀이를 하셨다. 이윽고 웃으며 일어나셔서 붓을 당겨 남의 편지에 답장을 쓰시기를, “사흘 주야로 비가 내려 사랑스러운 한창 핀 살구꽃이 녹아서 붉은 진흙으로 되었습니다. 긴긴 날 애를 태우며 앉아서 혼자 쌍륙을 가지고 논답니다.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지요. ‘다섯이야!’ ‘여섯이야!’ 부르짖다 보니 오히려 상대편과 나라는 사이가 생겨나서, 승부에 마음이 쓰여 적수가 뒤집어지더군요. 나는 저를 모르겠답니다. 꼭같은 내 양손에 대해서도 사사롭게 여기는 바가 있는 것일까요? 저 나의 양 손이 이미 이쪽저쪽으로 편이 갈리고 보면 상대편이라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는 저 양손에 대해서는 역시 조물주와 같은 존재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사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은 부추기고 한쪽은 억누르기를 이같이 하다니요. 이제 비에 살구꽃이야 비록 쇠락해 떨어졌겠으나 복사꽃은 선명하게 곱겠지요. 나는 여기서 또 모르겠습니다. 저 조물주가 복사꽃을 부추기고 살구꽃을 억누르는 것 역시 사사로운 바가 있어서일까요?”하셨다. 손님은 웃으면서, “나는 본디부터, 선생께서 쌍륙에 뜻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일단의 글을 구상해내시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하였다.

-역주과정록, 박종채 저/김윤조 역주, 태학사 간, 295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를 회억하며 쓴 글의 한 대목이다. 편지글에 답장을 쓰다가도 막힌 생각을 뚫기 위해 연암은 혼자 쌍륙을 놀았다. 그의 글은 한 편 한 편이 모두 이러한 고심참담 끝에 나왔다. 읽다보면 늘 행간을 가늠키 어려워 허우적거리기 일쑤지만, 그래서 오늘날 그것은 켜켜이 때가 앉은 붓씻개 같은 것이 되어 버렸지만, 그의 글은 진짜다. 지금까지도 시퍼렇게 날이 선 진짜다.

서구의 담론만이 진짜인양 행세하는 동안, 정작 우리 것은 기름 때에 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서여오가 그랬듯이 뭇 사람이 버린 가운데서 그 그릇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묵은 때를 벗겨낼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2. 감식안을 가진 자에겐 才思가 필요하다

3. 골동품 감식안은 완물상지가 아니다

4. 가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진짜로 살아가는 법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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