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짜들이 득세하는 세상에 진짜로 살아가는 법
“여보게, 연암! 자네 한 번 생각해 보게. 무엇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던가? 『시경』에 실려 있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야 무에 대수로울 게 있겠나? 그러나 그 한편 한편의 행간에 담긴 마음을 읽을 때, 내 마음에 문득 느껴 감발感發되는 것이 있고, 저래서는 안 되지 하며 징창懲創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그저 『시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그 많은 주석을 줄줄 꿴다고 해서 『시경』을 제대로 읽은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보네. 그 마음을 읽어야지. 그것이 내 삶과 관련지어질 수 있어야지. 그저 지식으로만 읽는 『시경』에서 어찌 ‘사무사思無邪’의 보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단지 이 물건이 얼마나 오래되었고, 그래서 값이 얼마인줄만 잘 안다고 진정한 감상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골동품을 사고팔아 그것으로 밥 먹고 사는 거간꾼에 지나지 않을 거란 말일세.
곡부에서 공자께서 예전 신으셨다는 다 썩은 신발을 보면 그때 당시 천하를 주유하시던 그 안타까운 마음이 떠올라 눈물이 날 터이고, 후한 때 점대漸臺의 쇠로 만든 북두성을 보면 왕망이 신나라를 세운 후 온갖 참람한 짓을 하다가 그곳에서 군사들의 칼에 찔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일이 떠올라 절로 외람됨을 경계하는 마음이 들 것이 아닌가. 우리가 골동품을 애완하면서 갖는 마음이 이러할 진대 그것을 어찌 완물상지라 할 것인가? 나는 사람들이 실속도 없이 헛된 명성이나 쫓고, 그저 물건 값의 높고 낮음으로 가치를 평가하며, 벼슬이 높으면 우러러 존경하고, 지위가 낮으면 업수이 여겨 깔보는 그런 부박한 풍조를 슬퍼한다네.”
연암은 대답한다.
“여보게, 여오! 그건 그리 낙심할 일이 아니라고 보네. 내가 옛 사람의 물건을 통해 옛 사람의 그 풍도를 그리워하고, 내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다면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붓씻개가 자네의 눈을 거치자 갑자기 보배로운 물건이 되었듯이, 남들이 매일 보면서도 그저 지나쳐 버리는 사물들 속에서 이전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춰진 의미를 읽을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지녔다면 그것으로 내 삶이 그만큼 더 넉넉해 질 터이니,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그 붓씻개로 붓을 씻고 내 마음을 씻고, 그때마다 내 삶의 자리를 한 번씩 되돌아보면 오히려 넉넉치 않겠는가? 가짜들이 더 진짜처럼 행세하는 세상에서 가끔씩 그것이 기실은 가짜이고 진짜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때에 절어 묻혀 있음을 밝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은가? 세상은 언제나 가짜들이 득세하게 마련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정말 지혜로운 안목 앞에서 가짜들은 결코 제 몸을 숨길 수가 없네. 가짜로는 단지 가짜들을 속여 먹을 수 있을 뿐이지. 진짜는 언제까지 진짜일 뿐일세. 진짜가 가짜 되는 법이 있던가? 단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뿐이지. 너무 마음 쓰시지 마시게.”
▲ 전문
인용
'책 > 한문(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 1. 16살에 시집간 누이가 고생만 하다 43살에 죽다 (0) | 2020.04.07 |
---|---|
혼자하는 쌍륙 놀이 - 5. 글이 써지지 않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다 (0) | 2020.04.06 |
혼자하는 쌍륙 놀이 - 3. 골동품 감식안은 완물상지가 아니다 (0) | 2020.04.06 |
혼자하는 쌍륙 놀이 - 2. 감식안을 가진 자에겐 才思가 필요하다 (0) | 2020.04.06 |
혼자하는 쌍륙 놀이 - 1. 좋은 골동품도 몰라보는 세대 (0) | 2020.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