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麈公塔銘 (6)
건빵이랑 놀자
6.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咦彼麈公 過去泡沫 아아! 저 주공麈公은 지나간 과거의 포말인게고, 爲此碑者 現在泡沫 이 비석을 만들어 세우는 자는 현재의 포말에 불과한거라. 伊今以往 百千歲月 이제부터 아마득한 후세에까지 백천百千의 기나긴 세월의 뒤에 讀此文者 未來泡沫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사람은 오지 않은 미래의 포말인 것을. 匪我映泡 以泡照泡 내가 거품에 비친 것이 아니요 거품이 거품에 비친 것이며, 匪我映沫 以沫照沫 내가 방울에 비친 것이 아니라 방울 위에 방울이 비친 것일세. 泡沫映滅 何歡何怛 포말은 적멸寂滅을 비춘 것이니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슬퍼하랴. 세 번째 부분은 앞 부분에 대한 연암의 총평이다. 요컨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자취는 포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가 증명하려 들고 ..
5. 수많던 거품 속의 나는 순식간에 사라지네 박영철본 『연암집』에서는 이것으로 글이 끝난다. 그러나 『병세집』과 『시가점등』에는 게송 부분이 여기에 덧붙어 있다. 네 번째 단락은 지황탕의 비유를 부연하여 설명하겠다는 말로 시작된다. 승려의 탑명이기에 게송의 형식을 빌어 왔다. 이 게송의 부연으로 해서 지황탕의 비유는 다시금 생생하게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地黃湯喩, 演而說偈曰: 지황탕의 비유를 부연하여 게송偈頌으로 말해 보리라. “我服地黃湯, “내가 지황탕을 마시려는데 泡騰沫漲 印我顴顙 거품은 솟아나고 방울도 부글부글 그 속에 내 얼굴을 찍어 놓았네. 一泡一我 一沫一吾 거품 하나마다 한 사람의 내가 있고 방울 하나에도 한 사람의 내가 있네. 大泡大我 小沫小吾 거품이 크고 보니 내 모습도 커다랗고 방울이..
4. 스님의 죽음은 사리가 아닌 씨 속에 담겨있다 그리고 나서도 연암은 주공의 생애에 대해서는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선문답처럼 시 한 수를 현랑에게 던진다. 지황탕의 비유가 이번에는 높은 나무 가지에 걸린 열매의 비유로 전개된다. 정상적인 글이라면 이른바 탑명塔銘이 들어설 자리이다. 그런데 그는 비슷한 성격의 다른 글에서 예외 없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하게 ‘명왈銘曰’이라 하지 않고, 단지 ‘내위계시왈乃爲係詩曰’이라고만 말하여 아예 명을 쓰지 않을 작정임을 슬며시 내비쳤다. 아니 명銘 뿐 아니라 명에 앞서 기술되었어야 마땅할 주공의 생애마저도 완전히 외면해 버리고 있다. 乃爲係詩曰: 이에 시로 잇대어 말하였다. 九月天雨霜 萬樹皆枯落 9월이라 하늘엔 서리 내리니 온갖 나무 시들어 잎이 떠지네. 瞥見上頭..
3. 현학적인 수사의 한계를 간파하다 현랑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我로써 아我를 증명할 뿐, 저 상相이란 것은 상관할 것 없겠습지요.” 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고 하니, 마음이란 게 몇 개나 있더란 말인고?” 郞叩頭曰: “以我證我, 無關彼相.” 余大笑曰: “以心觀心, 心其有幾.” 그러자 현랑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한다. “선생님! 저 외물의 상相으로써야 무엇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마음으로 보아 마음으로 느껴 깨달을 따름입지요. 거품 같은 외물이야 상관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에 연암은 크게 웃는다. “상相과는 무관하다?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 그럴진대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이 남긴 사리라는 상相에 집착하여 탑을 세우려 하는가? 마음으로 마음을 본다니, 마음을 증명하는..
2. 이상한 불빛과 지황탕의 거품 내가 평소에 불가佛家의 말을 잘 알지 못하지만 애써 부탁하는지라, 이에 시험삼아 물어 보았다. “여보시게 현랑玄郞! 내가 옛날에 병으로 지황탕地黃湯을 복용할 적에 즙을 걸러 그릇에 따르는데 자잘한 거품이 부글부글 일지 뭔가. 금싸라기나 은별도 같고, 물고기 아가미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 같기도 하고 벌집인가도 싶더군. 거기에 내 모습이 찍혀있는데, 마치 눈동자에 부처가 깃들어 있기나 한 듯이 제각금 상相을 드러내고, 영낙없이 성性을 머금었더란 말일세. 그런데 열이 식고 거품이 잦아들어 마셔 버리자 그릇은 그만 텅 비고 말더란 말이야. 앞서는 또렷하고 분명했는데 누가 자네에게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겠나?” 余雅不解浮圖語, 旣勤其請, 迺嘗試問之曰: “郞! 我疇昔而病, 服地..
1. 음산한 빛에 놀라 명문을 부탁하다 「주공탑명」은 윤광심尹光心(1751-1817)이 엮은 『병세집幷世集』과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시가점등詩家點燈』에 연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수록되었을 만큼 당대 문인들에게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이다. 행간이 미묘할 뿐 아니라, 전체 글이 중층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첫 단락은 명銘을 쓰게 된 전후 사실을 적고 있다. 주공麈公 스님의 입적 사실과 다비식을 거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상한 일들, 그리고 사리 수습 및 부도탑浮圖塔을 세우려고 탑명塔銘을 자신에게 청탁해 온 일 등을 기술하였다. 주공麈公 스님이 입적한 지 엿새되던 날 적조암寂照菴 동대東臺에서 다비를 하였다. 그곳은 온숙천溫宿泉 노송나무 아래에서 열 걸음 거리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