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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정월 대보름 연등회등석(燈夕) 김부식(金富軾) 城闕沈嚴更漏長 燈山火樹粲交光綺羅縹緲春風細 金碧鮮明曉月凉華盖正高天北極 玉爐相對殿中央君王恭黙疎聲色 弟子休誇百寶粧 『東文選』 卷之十二 해석城闕沈嚴更漏長 성궐침엄갱루장 대궐 안은 으슥하여 물시계소리 깊어가고燈山火樹粲交光등산화수찬교광연등 걸린 산과 나무 불빛으로 찬란하다.綺羅縹緲春風細기라표묘춘풍세 비단 장막 하늘하늘 봄바람은 살랑대고金碧鮮明曉月凉금벽선명효월량금벽단청 훤해지며 새벽달빛 시원하네.華盖正高天北極 화개정고천북극 화개는 북극처럼 높다랗게 걸려 있고玉爐相對殿中央옥로상대전중앙옥화로는 정궁 앞에 마주 보고 놓여 있네. 君王恭黙疎聲色군왕공묵소성색 천자께선 공손하셔서 음악 여자 멀리하니弟子休誇百寶粧제자휴과백보장 궁녀들아 패물치레 자랑하지 마라. 『東文選』 卷之十二 해설..

감로사에서 혜운의 시에 차운하다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 김부식(金富軾)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속객부도처 등림의사청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산형추갱호 강색야유명白鳥孤飛盡 孤帆獨去輕백조고비진 고범독거경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자참와각상 반세멱공명 『東文選』 卷之九 해석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속세의 사람들은 이르지 못하는 곳에 오르니 생각이 맑아져서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산 모양은 가을이라 더욱 선명하고 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밝다네. 白鳥孤飛盡 孤帆獨去輕흰 물새는 외로이 날아 사라져가고, 돛배 한 척 가뿐하게 떠나가건만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부끄럽구나! 스스로 달팽이 뿔 위에서 반평생 공명 찾아 헤맸다는 게. 『東文選』 卷之九 해설이 시는 감로사에 올라 시승(詩僧) 혜소(惠素)가 지은 시에 차운한 시이다. 수련(首聯)은 높..
20. 김부식의 정밀한 시와 탈세의 시 金侍中富軾「燈夕」詩曰: ‘城闕沈嚴更漏長, 燈山火樹燦交光. 綺羅縹緲春風細, 金碧鮮明曉月凉. 華盖正高天北極, 玉繩相對殿中央. 君王恭黙疎聲色, 弟子休誇百寶粧.’ 詞極典實. 「題松都甘露」寺曰: ‘俗客不到處, 登臨意思淸.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白鳥高飛盡, 孤帆獨去輕. 自慙蝸角上, 半世覓功名.’ 亦翛然有出塵之趣. 해석 金侍中富軾「燈夕」詩曰: ‘城闕沈嚴更漏長, 燈山火樹燦交光. 綺羅縹緲春風細, 金碧鮮明曉月凉. 華盖正高天北極, 玉繩相對殿中央. 君王恭黙疎聲色, 弟子休誇百寶粧.’ 시중 김부식의 「등석(燈夕)」이란 시는 다음과 같다. 城闕沈嚴更漏長 대궐 안은 으슥하여 물시계소리 깊어가고 燈山火樹粲交光 연등 걸린 산과 나무 불빛으로 찬란하다. 綺羅縹緲春風細 비단 장막 하늘하늘 봄바람은..
11. ‘나의 살던 고향은’ 질의응답Ⅰ 우리는 역사를 잘못 알고 있다 Q 영화를 보니 그간에 상상으로만 알게 있던 것들이 구체화, 실체화되어 좋았습니다. 이 기회에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조선에 대해서도 지금과 같은 열정으로 한 번 전체적으로 조명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A 김부식이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썼다는 것은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신라ㆍ백제ㆍ고구려의 건국을 시조설화를 빌려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엉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전에 아무 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문화도 없던 곳에 나라가 어찌 갑자기 건국이 됩니까? 삼국의 시작 자체를 순 엉터리로 기술한 것이죠. 지금의 우리의 감각..
7. 신라 패러다임과 국정화 교과서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던 삼국에 대한 상식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쓴 『삼국사기』의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된 내용이다. 김부식은 그 당시 내려오던 『구삼국사』를 저본으로 삼아 새로운 삼국의 역사서를 편찬했다. 하지만 『구삼국사』라는 책이 현재는 전해지지 않기에 어떤 내용을 첨가했으며, 어떤 내용을 뺐는지는 알 수가 없다. ▲ 지금 남아 있는 삼국에 대한 가장 오랜 된 기록물이 [삼국사기]다. 그러다 보니 우린 이 기록에 갇힐 수밖에 없다. 역사서에 기록되기 이전에도 나라는 있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엔 삼국 이전의 역사는 누락되어 있고, 삼국의 시조를 모두 난생卵生으로 처리했다. 난생이란 알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부계혈통 및 과거를 지워내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6. 신라 패러다임에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구려 패러다임’에 알아야한다. 지금껏 우린 알게 모르게 자학사관이나 신라중심사관에 빠져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밖으론 늘 강대국의 침략에 꼼짝없이 당하는 나라로, 안으론 권력과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에 시름하는 나라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역사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는 늘 당하기만 하는 역사잖아요. 그래서 공부하기가 싫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식의 자학사관이나 ‘신라 패러다임(신라중심사관)’으로 우리 역사의 무대는 한없이 좁아졌고 부정적인 시각만이 판을 쳤다. 이때에 도올 선생이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
김부식金富軾: 1075(문종 29)~1151(의종 5)본관 경주. 자(字)는 립지(立之), 호(號)는 뇌천(雷川). 그의 4형제의 이름은 소식(蘇軾) 형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함.1.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엔 김부식을 ‘살이 찌고 체구가 크며, 검은 얼굴에 눈이 튀어나옴’이라 표현함.2. 1122년 보문각대제, 1124년 예부시랑 등에 오름. 3. 당시 인종의 외조부였던 이자겸이 지나친 예우를 받는다고 비판하며 이자겸과 권력 다툼을 벌임. 4. 1126년 인종의 외조부인 이자겸의 난으로 궁궐이 타자 1135년 묘청 일파가 난을 일으켰고 원수(元帥)로 임명되어 정치적ㆍ문학적 라이벌인 정지상을 제거하며 서경세력을 진압함.5. 퇴직한 후 8명의 젊은 관료를 보내주어 『삼국사기』..
정지상鄭知常: ?~1135(인종 13) 서경 출신. 초명은 정지원(鄭之元). 호는 남호(南湖). 미상 서경(西京)에서 출생. 초명(初名)은 정지원(鄭之元)이었음. 아버지는 일찍 죽었고, 어머니 노씨(盧氏)에 의하여 양육되었음. 미상 청년기에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고, 평양에 머물며 「대동강에서[送人]」와 같은 주옥 같은 시를 지었음. 1112년 3월에 진사과(進士科)에 을과(乙科) 장원으로 급제하였음. 이때 지은 시가 『백운소설』에 소개됨. 과거에 급제하기 10년 전부터 개경의 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였음. 1113년 3월에 왕을 알현하고 처음으로 벼슬을 받음. 1114년 4월에 담당자가 정지상이 장원급제한 자이므로 개경에서 벼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청을 올렸고 왕이 재가함. 1127년 3월에 좌정언(左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