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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목차 1. 여는 글: 당신이 지금껏 본 옛이야기는 엉터리다 같은 뿌리, 다른 이야기 원전을 알아야 옛이야기가 보인다 2. 전공과 생활 사이, 이상과 현실 사이 수많은 뿌리는 하나의 줄기로 자란다 예술인은 경계인이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에 의한, 평범한 사람을 위한 민담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 결핍을 채워주고 보편의 가치를 담은 옛이야기의 힘 결핍을 채워주는 예술의 가치 예술이 지닌 가치를 보여준 명작, 『수호의 하얀말』 넓이는 깊이를 포괄한다 세계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옛이야기 4. 같은 내용의 옛 이야기가 여러 나라에 있는 이유 유럽에도 있는 ‘쥐의 혼인’ 설화 세계에 두루 퍼져 있는 동일한 이야기의 비밀 5.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로 본 흐름의 중요성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건호와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공부하려 할 때만 해도, 이렇게 일이 커질 거라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여는 글에서도 밝혔다시피 ‘동화책’이란 관점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공부하며 그러한 관점이 ‘옛이야기’란 관점으로 바뀌어, 그 가치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지도 알게 되었다. 이래저래 모르지만 걸어갔던 길이 나에겐 엄청난 의미로 다가온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안 해도 될 이유는 지천에 널렸다 공길: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 장생: “아니, 싫다!” / 공길: “그럼 왕으로 나면 좋으련?” / 장생: “그것도 싫다! 난 광대로 다시 태어날란다.” / 공길: “이 놈아.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 장생: “그러는 니년은..
‘놀부가 박을 여니, 도깨비들이 나와 놀부를 벌준다.’ 『흥부놀부』에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보고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 챘는가? 아마 한 명도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 나오는 책에도 이런 내용은 들어있기 때문이다. 『흥부놀부』를 통해본 도깨비의 원래 모습 이런 내용을 읽는 사람들은 도깨비는 ‘징벌자(벌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게 되고 우리의 의식 속에 있는 도깨비라는 이미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도깨비는 잘한 사람에겐 상을 주고 못한 사람에겐 벌을 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깨비를 징벌자로만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일본의 귀신인 ‘오니おに’의 영향이 컸다. 그건 곧 일제시대 당시 일본이 우리의 민족정기를 ..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해석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옛이야기의 흐름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리 현대적인 의미로 보아 좋은 장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함부로 삽입할 수 없으며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건 이상적인 눈, 코, 입, 얼굴 골격을 합친다 해서 최고의 미남, 미녀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인상이란 조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부분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은 이야기의 유기적인 속성을 먼저 파악한 후에 흐름을 깨지 않는 선상에서 고쳐야 하는 것이다. 또한 옛이야기를 보는 사람들도 그 유기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옛이야기의 깊은 맛이 살아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두 가지 흐름 『..
단재학교에서 카자흐스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준규쌤은 “‘쥐의 혼인 설화’는 카자흐스탄에도 똑같이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비슷한 민담이 있다는 것은 어떤 공통의 정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고, 그건 좀 더 비약을 하면 민족의 뿌리가 같다는 말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환희 선생님에게 ‘쥐의 혼인’이란 민담이 카자흐스탄에도 있는 걸 알고 계시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카자흐스탄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유럽 쪽에도 그와 유사한 민담이 있다고 대답해주시더라. 유럽에도 있는 ‘쥐의 혼인’ 설화 ‘쥐의 혼인 설화’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테니, 그 이야기를 잠시 읽어보도록 하자. 두더지가 새끼를 위해 좋은 혼처를 구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오직 하늘이라 가장 높다고 여겨서 하늘에 청혼을 하였다. ..
욕망이나 욕심을 버리면서까지 예술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궁금했는데 선생님은 “예술은 우리 삶에서 결핍된 부분을 채워준다.”라는 말로 그런 물음에 대답해주셨다. 결핍을 채워주는 예술의 가치 결핍, 그건 어느 순간이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고개를 내밀려 하는 원초적인 두려움이다. 내면 깊은 곳에 감춰져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크게 문제될 것 없이 살지만, 조금이라도 머리를 내밀라치면 누구든 괴로워하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결핍은 박노해 시인이 말했듯 ‘건너뛴 삶’의 한 단면이어서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서서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 빛 회한을 남겨주는 것’일 수도 있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듯 ‘유아기의 트라우마’일 수..
춘천교대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고도 무거웠다. 이런 식으로 저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김환희 선생님에게든 우리에게든 신나면서도 그 반면에 어색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춘천교대 홍익관 305호의 문을 노크하자마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김환희 선생님의 첫 인상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주머니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러, 춘천교대에 왔다. 수많은 뿌리는 하나의 줄기로 자란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자주 그리곤 했지만 그 그림이 그렇게 맘에 들진 않았단다. 그런 사정 때문에 미술은 관두고 문학 작품을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가서는 불어를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선 ‘비교문학’으로 전공을 ..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을 공부 교재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이 책을 통한 작은 만남이 큰 인연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옛 이야기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그림과 글을 유기적으로 배치하여 읽기 편하도록 만든 ‘유아용 교재’라는 일반적인 생각만 있었다. 그랬기에 건호와 함께 이 책을 공부하기로 하면서 정한 목표는 ‘문자에 익숙해지고 그림을 통해 책이란 사물에 친숙해진다’였을 정도로, 옛 이야기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런 목표와는 상관없이 충격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본 동화책은 동화책이 아니무니다.”라는 갸루상의 말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동화책을 보고서 동화책을 봤다고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