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정철 (8)
건빵이랑 놀자
송강 정철과 팰컨 헤비 『소화시평』 권상 98번의 주인공은 송강 정철이다.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思美人曲)」ㆍ「속미인곡(續美人曲)」으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로 한문학계에서보다 국문학계에서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자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처참하게 처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철에 대해 알게 된 건 권필과 이안눌이란 제자 때문이었다. 둘 다 정철이 죽은 이후에 그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이안눌은 달이 뜬 밤, 용산에서 기녀가 「사미인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오직 우리 선생을 알아주는 이는 기녀뿐이로구나.’라는 깊은 탄식을 시에 담았다. 권필은 낙엽지고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 스승의 무덤가를 지난다. 그때 스승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두 명의 제자를 통해 회상되..
98. 정철의 얽매이지 않은 시와 속되지 않은 시 鄭松江澈, 嘗於舟中遇一士人, 士人疑其爲閔杏村, 且疑其爲成牛溪. 松江書贈一絶曰: ‘我非成閔卽狂生, 半世風塵醉得名. 欲向新知道姓字, 靑山獻笑白鷗輕.’ 豪逸不羈. 「題樂民樓」詩曰: ‘白岳連天起, 成川入海遙. 年年芳草路, 人渡夕陽橋.’ 世稱絶唱. 然余意不俗則似矣, 絶唱則未也. 해석 鄭松江澈, 嘗於舟中遇一士人, 송강 정철은 일찍이 배에서 한 선비를 만났는데 士人疑其爲閔杏村, 且疑其爲成牛溪. 선비가 정철이 행촌 민순(閔純)인지 의심했고, 또한 우계 성혼인지 의심했다. 松江書贈一絶曰: ‘我非成閔卽狂生, 半世風塵醉得名. 欲向新知道姓字, 靑山獻笑白鷗輕.’ 송강이 써서 한 절구(「배에서 손님에게 사죄하며[舟中謝客]」)를 주었으니 다음과 같다.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
한글로 지은 삼별곡은 아름답다삼별곡(三別曲) 김만중(金萬重) 송강의 작품은 조선이 이소로 한글로 전해졌기에 아름답다松江「關東別曲」, 「前」ㆍ「後思美人」歌, 乃我東之「離騷」. 而其以不可以文字寫之. 故惟樂人輩, 口相授受, 或傳以國書而已. 人有以七言詩飜「關東曲」, 而不能佳. 或謂澤堂少時作, 非也. 鳩摩羅什有言曰: “天竺俗最尙文, 其讚佛之詞, 極其華美. 今以譯秦語, 只得其意, 不得其辭理.” 固然矣. 조선어로 하는 노래는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人心之發於口者, 爲言. 言之有節奏者, 爲歌詩文賦. 四方之言, 雖不同, 苟有能言者, 各因其言而節奏之, 則皆足以動天地通鬼神, 不獨中華也. 우리의 정서를 우리의 말로 담았기에 아름다운 삼별곡今我國詩文, 捨其言而學他國之言, 設令十分相似, 只是鸚鵡之人言. 而閭巷間, 樵童汲婦, 咿啞..
기녀가 부르는 스승의 ‘사미인곡’을 듣고 감정에 사무친 이안눌 (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권필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말했던 것처럼, 시를 평가할 때 권필과 이안눌은 곧잘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도 송강이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인 데다가, 돌아가신 스승을 느꺼워하며 시를 지었기 때문에 비교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허균을 위시한 주위 사람들의 평판에 오르내릴 정도였다면, 둘 사이는 매우 돈독했으리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권필과 이안눌의 지음 같은 관계 권필은 「宮柳詩」 로 인해 곤장을 맞게 됐고, 어찌나 심하게 맞았던지 귀양을 가던 도중에 죽었다는 얘기는 권필에 대해 얘기했던 그대로다. 권필로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참 가슴 아픈 얘기지만, ..
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故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용산월야 문가희창고인성정상공사미인곡 솔이구점 시조지세곤계(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이안눌(李安訥) 江頭誰唱美人詞 正是孤舟月落時惆悵戀君無限意 世間惟有女郞知 『東岳先生續集』 해석江頭誰唱美人詞강두수창미인사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나, 正是孤舟月落時정시고주월락시바로 이때는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때라네.惆悵戀君無限意추창련군무한의애달프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무한한 뜻을世間惟有女郞知세간유유녀낭지세상에서 오직 기녀만이 알아주는 구려. 『東岳先生續集』 해설이 시는 용산 달밤에 가기(歌妓)가 고 인성 정철(鄭澈)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로 시를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이다..
스승 정철의 ‘將進酒辭’를 듣고서 마음 아파한 권필(過松江墓有感) 권필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당연히 「宮柳詩」다. 광해군의 외척인 柳希奮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보며 권필은 시를 지었다. 宮柳靑靑花亂飛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滿城冠蓋媚春暉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 구나.朝家共賀升平樂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誰遣危言出布衣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각주:1]? 『石洲集』 시가 사람을 죽이게 할 수도 있다 1구에 나오는 ‘柳’를 보며 사람들은 모두 임숙영을 생각했지만, 임숙영 자신은 그건 중전을 가리킨다고 말했고, 광해군도 이에 크게 화를 내며 신문을 하게 된다. 이때 권필은 “임숙영이 과거 시험 중 대책..
송강 정철 스승의 무덤을 지나며 느꺼움이 있어과정송강묘유감(過鄭松江墓有感) 권필(權韠)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寥惆悵一杯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公嘗有短歌,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石洲集』 卷之七 해석空山木落雨蕭蕭공산목락우소소빈 산 나뭇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相國風流此寂寥상국풍류차적요재상의 풍류 이로부터 적막하여졌네. 惆悵一杯難更進추창일배난갱진슬프구나, 한 잔 다시 올리기 어려우나昔年歌曲卽今朝석년가곡즉금조옛 노랫가락은 곧 지금의 노랫가락이구나. 『石洲集』 卷之七 公嘗有短歌, 정철 공께서 일찍이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단가를 지었으니,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사후에 누가 한 잔 술 권할까?’라는 뜻을 말했었다. 해설이 시는 스승인 정철(鄭澈)의 무덤을 지나면서 지난날 그의 풍류를 회고하며 노래한 것이다. ..
정철鄭澈: 1536(중종 31)~1593(선조 26) 중기 문인ㆍ정치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시호는 문청(文淸)임. 1536년 서울 장의동에서 영일 정씨 정유침(鄭惟沈)의 4남3녀 중 막내로 출생. 세자의 양제로 있던 맏누이의 귀여움을 받으며 궁중에서 놀며 자라남. 1545년 10세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 가문이 다 피해를 입음. 아버지를 따라 남북의 유배지를 전전함. 1551년 16세 전라도 창평의 성산(星山) 자락에 정착함. 이곳에서 10년 동안을 생활하며 김인후, 기대승, 임억령 등에게 배움. 1561년 26세 진사시(進士試) 일등을 함. 1562년 27세 문과(文科) 장원함. 성균관 전적(典籍) 등을 역임함. 1563년 28세 가사 「성산별곡」을 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