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 정철 스승의 무덤을 지나며 느꺼움이 있어
과정송강묘유감(過鄭松江墓有感)
권필(權韠)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寥
惆悵一杯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公嘗有短歌,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石洲集』 卷之七
해석
空山木落雨蕭蕭 공산목락우소소 | 빈 산 나뭇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
相國風流此寂寥 상국풍류차적요 | 재상의 풍류 이로부터 적막하여졌네. |
惆悵一杯難更進 추창일배난갱진 | 슬프구나, 한 잔 다시 올리기 어려우나 |
昔年歌曲卽今朝 석년가곡즉금조 | 옛 노랫가락은 곧 지금의 노랫가락이구나. 『石洲集』 卷之七 |
公嘗有短歌,
정철 공께서 일찍이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단가를 지었으니,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사후에 누가 한 잔 술 권할까?’라는 뜻을 말했었다.
해설
이 시는 스승인 정철(鄭澈)의 무덤을 지나면서 지난날 그의 풍류를 회고하며 노래한 것이다.
1구와 2구에서는 정철(鄭澈)의 묘가 있는 텅 빈 가을 산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술과 노래를 잘하시던 스승의 풍류는 적막하기만 함을 묘사하고 있다.
3구와 4구에서는 스승이 돌아가시어 술 한 잔 다시 올리기 어려운데, 그 예전에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부르시던 일이 오늘 아침 일인 듯하다고 읊고 있다.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의 첫(註)에, “공이 일찍이 단가를 지었는데, 죽은 뒤 누가 한 잔 술을 권할까라는 의미의 말을 하였다[公嘗有短歌 道死後誰勸一杯酒之意].”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권필은, 이 시에서 낙엽이 지는 시각(視覺)과 노래가 퍼지는 청각(聽覺)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함과 동시에, 호탕하게 술을 즐기던 정철과 무덤에 술을 올리는 자신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답이생서(答李生書)」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사(詩史)를 언급하면서 권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외져서 바다 모퉁이에 있으니 당(唐)나라 이상의 문헌은 까마득하며, 비록 을지문덕(乙支文德)과 진덕여왕(眞德女王)의 시(詩)가 역사책에 모아져 있으나, 과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었던 것인지는 감히 믿을 수 없소. 신라(新羅) 말엽에 이르러 최치원(崔致遠) 학사(學士)가 처음으로 큰 이름이 났는데, 오늘로 본다면 문(文)은 너무 고와서 시들었으며 시(詩)는 거칠어서 약하니 허혼(許渾)ㆍ정곡(鄭谷) 등 만당(晩唐)의 사이에 넣더라도 역시 누추함을 나타낼 텐데, 성당(盛唐)의 작품들과 그 기법(技法)을 겨루고 싶어 해서야 되겠습니까?
고려(高麗) 시대의 정지상(鄭知常)은 아롱점 하나는 보았다 하겠지만, 역시 만당(晩唐) 시(詩) 가운데 농려(穠麗)한 시 정도였소. 이인로(李仁老)ㆍ이규보(李奎報)는 더러 맑고 기이(奇異)하며 진화(陳澕)ㆍ홍간(洪侃)은 역시 기름지고 고우나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급기야 이제현(李齊賢)에 이르러 창시(倡始)하여, 이곡(李穀)ㆍ이색(李穡)이 계승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ㆍ이숭인(李崇仁)ㆍ김구용(金九容)이 고려 말엽의 명가(名家)가 되었지요.
조선 초엽에 이르러서는 정도전(鄭道傳)ㆍ권근(權近)이 그 명성을 독점하였으니 문장(文章)은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달(達)했다 칭할 만하여 아로새기고 빛나곤 해서 크게 변했다 이를 만한데 중흥(中興)의 공로는 이색(李穡)이 제일 크지요. 중간에 김종직(金宗直)이 포은(圃隱)ㆍ양촌(陽村)의 문맥(文脈)을 얻어서 사람들이 대가(大家)라고 일렀으나 다만 한(恨)스러운 것은 문규(文竅)의 트임이 높지 못했던 것이오.
그 뒤에는 이행(李荇) 정승이 시에 입신(入神)하였으며, 신광한(申光漢)ㆍ정사룡(鄭士龍)은 역시 그 뒤에 뚜렷하였소. 노수신(盧守愼) 정승이 또 애써서 문명을 떨쳤으니, 이 몇 분들이 중국(中國)에 태어났다면 어찌 모두 강해(康海)ㆍ이몽양(李夢陽: 明의 前七子로 詩文에 능함) 두 사람보다 못하다 하리오?
당세의 글하는 이는 문(文)은 최립(崔岦)을 추대하고 시(詩)는 이달(李達)을 추대하는데, 두 분 모두 천 년 이래의 절조(絶調)지요. 그리고 같은 연배 중에서는 권필(權韠)이 매우 완량(婉亮)하고, 이안눌(李安訥)이 매우 연항(淵伉)하며 이 밖에는 알 수가 없소[吾東僻在海隅, 唐以上文獻邈如. 雖乙支, 眞德之詩, 彙在史家, 不敢信其果出於其手也. 及羅季, 孤雲學士始大厥譽. 以今觀之, 文菲以萎; 詩粗以弱. 使在許ㆍ鄭間, 亦形其醜, 乃欲使盛唐爭其工耶? 麗代知常, 足窺一斑, 亦晩李中穠麗者. 仁老ㆍ奎報, 或淸或奇, 陳澕ㆍ洪侃, 亦腴艶, 而俱不出長公度內耳. 及至益齋倡始, 稼ㆍ牧繼躅, 圃ㆍ陶ㆍ惕, 爲季葉名家. 逮國初, 三峯ㆍ陽村, 獨擅其名, 文章至是, 始可稱達. 追琢炳烺, 足曰丕變, 而中興之功, 文靖爲鉅焉. 中間金文簡得圃ㆍ陽之緖, 人謂大家. 只恨文竅之透不高. 其後容齋相詩入神, 申ㆍ鄭亦瞠乎其後. 蘇相又力振之, 玆數公, 使生中國, 則詎盡下於康ㆍ李二公乎? 當今之業,, 文推崔東皐, 詩推李益之, 俱是千年以來絶調. 而儕類中汝章甚婉亮; 子敏甚淵伉; 此外則不能知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65~16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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