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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눌 - 용산월야 문가희창고인성정상공사미인곡 솔이구점 시조지세곤계(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이안눌 - 용산월야 문가희창고인성정상공사미인곡 솔이구점 시조지세곤계(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건방진방랑자 2019. 2. 7.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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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달밤에 기녀가 인성 정철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걸 듣고 바로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

용산월야 문가희창고인성정상공사미인곡 솔이구점 시조지세곤계(龍山月夜 聞歌姬唱故寅城鄭相公思美人曲 率爾口占 示趙持世昆季)

 

이안눌(李安訥)

 

 

江頭誰唱美人詞 正是孤舟月落時

惆悵戀君無限意 世間惟有女郞知 東岳先生續集

 

 

 

 

 

 

해석

江頭誰唱美人詞

강두수창미인사

강가에서 누가 사미인곡을 부르나,

正是孤舟月落時

정시고주월락시

바로 이때는 외로운 배에 달이 질 때라네.

惆悵戀君無限意

추창련군무한의

애달프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무한한 뜻을

世間惟有女郞知

세간유유녀낭지

세상에서 오직 기녀만이 알아주는 구려. 東岳先生續集

 

 

해설

이 시는 용산 달밤에 가기(歌妓)가 고 인성 정철(鄭澈)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바로 시를 읊어 조지세 형제에게 준 시이다.

 

외로운 배에 지는 밝은 달빛 아래 기생이 부르는 처연한 노래가 독자를 더욱 비감(悲感)에 젖게 만든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이동악(李東岳)강가에서 누가 미인사를 부르는가[江頭唱美人詞]’라는 시구는 다 절창이다.”라고 하였다.

 

허균(許筠)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답이생서(答李生書)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사(詩史)를 언급하면서 이안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외져서 바다 모퉁이에 있으니 당()나라 이상의 문헌은 까마득하며, 비록 을지문덕(乙支文德)진덕여왕(眞德女王)의 시()가 역사책에 모아져 있으나, 과연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었던 것인지는 감히 믿을 수 없소. 신라(新羅) 말엽에 이르러 최치원(崔致遠) 학사(學士)가 처음으로 큰 이름이 났는데, 오늘로 본다면 문()은 너무 고와서 시들었으며 시()는 거칠어서 약하니 허혼(許渾)ㆍ정곡(鄭谷) 등 만당(晩唐)의 사이에 넣더라도 역시 누추함을 나타낼 텐데, 성당(盛唐)의 작품들과 그 기법(技法)을 겨루고 싶어 해서야 되겠습니까?

고려(高麗) 시대의 정지상(鄭知常)은 아롱점 하나는 보았다 하겠지만, 역시 만당(晩唐) () 가운데 농려(穠麗)한 시 정도였소. 이인로(李仁老)이규보(李奎報)는 더러 맑고 기이(奇異)하며 진화(陳澕)ㆍ홍간(洪侃)은 역시 기름지고 고우나 모두 소동파(蘇東坡)의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급기야 이제현(李齊賢)에 이르러 창시(倡始)하여, 이곡(李穀)이색(李穡)이 계승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ㆍ김구용(金九容)이 고려 말엽의 명가(名家)가 되었지요.

조선 초엽에 이르러서는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이 그 명성을 독점하였으니 문장(文章)은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달()했다 칭할 만하여 아로새기고 빛나곤 해서 크게 변했다 이를 만한데 중흥(中興)의 공로는 이색(李穡)이 제일 크지요. 중간에 김종직(金宗直)이 포은(圃隱)ㆍ양촌(陽村)의 문맥(文脈)을 얻어서 사람들이 대가(大家)라고 일렀으나 다만 한()스러운 것은 문규(文竅)의 트임이 높지 못했던 것이오.

그 뒤에는 이행(李荇) 정승이 시에 입신(入神)하였으며, 신광한(申光漢)정사룡(鄭士龍)은 역시 그 뒤에 뚜렷하였소. 노수신(盧守愼) 정승이 또 애써서 문명을 떨쳤으니, 이 몇 분들이 중국(中國)에 태어났다면 어찌 모두 강해(康海)이몽양(李夢陽: 前七子詩文에 능함) 두 사람보다 못하다 하리오?

당세의 글하는 이는 문()최립(崔岦)을 추대하고 시()이달(李達)을 추대하는데, 두 분 모두 천 년 이래의 절조(絶調)지요. 그리고 같은 연배 중에서는 권필(權韠)이 매우 완량(婉亮)하고, 이안눌(李安訥)이 매우 연항(淵伉)하며 이 밖에는 알 수가 없소[吾東僻在海隅, 唐以上文獻邈如. 雖乙支, 眞德之詩, 彙在史家, 不敢信其果出於其手也. 及羅季, 孤雲學士始大厥譽. 以今觀之, 文菲以萎; 詩粗以弱. 使在許鄭間, 亦形其醜, 乃欲使盛唐爭其工耶? 麗代知常, 足窺一斑, 亦晩李中穠麗者. 仁老奎報, 或淸或奇, 陳澕洪侃, 亦腴艶, 而俱不出長公度內耳. 及至益齋倡始, 牧繼躅, , 爲季葉名家. 逮國初, 三峯陽村, 獨擅其名, 文章至是, 始可稱達. 追琢炳烺, 足曰丕變, 而中興之功, 文靖爲鉅焉. 中間金文簡得圃陽之緖, 人謂大家. 只恨文竅之透不高. 其後容齋相詩入神, 鄭亦瞠乎其後. 蘇相又力振之, 玆數公, 使生中國, 則詎盡下於康李二公乎? 當今之業,, 文推崔東皐, 詩推李益之, 俱是千年以來絶調. 而儕類中汝章甚婉亮; 子敏甚淵伉; 此外則不能知也].”

 

이 외에도 허균(許筠)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이안눌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근일에는 실지(實之) 이춘영(李春英)이 시문에 능하다. 그 시가 비록 번잡한 것 같으나 기()는 나름대로 창대(昌大)하여 작가라 이를 만하다. 그러나 여장(汝章) 권필(權韠)에게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다. 실지의 안목은 높아서 한 시대의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나와 여장ㆍ자민(子敏) 이안눌(李安訥)만을 괜찮다고 여겼다. 그는, ‘허균은 허세가 있고 권필은 말랐으며 이안눌은 융통성이 없다.’고 하였는데 역시 지당한 평론이다[近日李實之能詩文, 雖似冗雜而氣自昌大, 可謂作家, 然不逮汝章, 多矣. 實之眼高, 不許一世人, 獨稱余及汝章子敏爲可. 其曰: “許飫, 權枯, 李滯.” 亦至當之論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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