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종북소선자서 (6)
건빵이랑 놀자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내가 동東으로 금강산을 유람할 적이다. 골짝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옛사람과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위에 써 놓은 게 보였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깊이들 새겨 놓아 작은 틈도 없었으니 마치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북적거려 어깨가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교오의 묘지에 빽빽이 들어선 무덤 같기도 했다. 옛날에 새긴 이름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새로 쓴 이름은 붉은 글씨가 환히 빛났다. 깎아지른 듯한 천 길 벼랑의 바위 위에 이르매 날아가는 새 그림자도 없었으며 오직 ‘金弘淵김홍연’이라고 새긴 세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심 참 이상하다고 여기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에로부터 관찰사의 위세란 족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을 만큼 대단하고, 또..
1. 왜 중국사람에게 홍대용의 부고를 알리는가? 덕보德保[각주:1]가 숨을 거둔 지 사흘째 되던 날 어떤 객客이 북경으로 가는 사신을 따라 중국으로 떠났는데 그 가는 길이 삼하三河[각주:2]를 지나게 되어 있었다. 삼하에는 덕보의 벗이 있는데 이름은 손유의孫有義[각주:3]이고 호는 용주蓉州다. 3년 전[각주:4] 내가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용주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해 편지를 남겨 덕보가 남쪽 땅에서 고을살이를 하고 있다[각주:5]는 소식을 자세히 전하고 아울러 우리나라의 토산품 두어 가지를 정표情表로 두고온바 용주는 그 편지를 읽어 내가 덕보의 친구인 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떠나는 객에게 다음과 같은 부고訃告를 용주에게 전하게 하였다. 德保歿越三日, 客有從年使入中國者, 路當過三河. 三河有..
1. 조선이라는 땅덩어리가 너무 작다 삼한三韓[각주:1] 서른여섯 도회지[각주:2]에 노닐다 동쪽으로 가 동해를 굽어보면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가없는데 이름난 산과 높다란 봉우리가 그 사이에 솟아 있어 백 리 이어진 들이 드물고 천 호戶 되는 고을이 없으니, 그 땅덩어리가 참으로 좁다 하겠다. 遊乎三韓三十六都之地, 東臨滄海, 與天無極, 而名山巨嶽, 根盤其中, 野鮮百里之闢, 邑無千室之聚, 其爲地也亦已狹矣.대단히 거창하게 서두를 열고 있다. 아주 높은 곳에서 한반도의 땅덩어리를 내려다보면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연암은 29세 때인 1765년 가을 유언호ㆍ신광온申光蘊 등의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이 글은 그 이듬해인 1766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쪽으로 가 동해를 굽어보면(東臨滄海)”..
2-1. 총평 1이 글은 연암 그룹의 예술 취향과 그 정신적 깊이를 썩 잘 보여준다. 그리하여 자유로움과 초속적超俗的 태도가 글 전편에 넘친다. 이 글은 길이는 짧되, 그 깊이는 아주 깊고, 그 운치는 한량없다. 2이 글은 유춘오 악회를 기념해 쓴 글이라 할 만하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연암은 유춘오에서 있었던 두 건의 일을 두 개의 단락으로 병치해 구성하고 있다. 이 두 건의 일은 유춘오 악회의 수준과 분위기를 잘 집약해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연암이 유춘오 악회와 관련하여 쓴 글은 이것이 유일하다. 3이 글은 이중二重의 교감과 소통을 보여준다. 하나는 인간 대 인간의 교감과 소통이요, 다른 하나는 인간 대 자연의 교감과 소통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연암의 예술철학이랄까 예..
5-1. 총평 1이 글은 서른여섯 살 무렵의 연암의 자화상이라 이를 만하다. 연암은 자신의 착잡한 심리 상태와 자의식을 기복起伏이 풍부한 필치로 솜씨 있게 그려 내고 있다. 2이 글은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힘겹게 버티며 저항하고, 또 힘겹게 버티고 저항하면서도 자신이 지치고 낙담에 빠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응시하는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슬프다. 연암의 산문 중 이 작품만큼 페이소스pathos가 그득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더보기호기로움만은 젊은 시절 못지 않네酬素玩亭夏夜訪友記 六月某日, 洛瑞夜訪不侫, 歸而有記. 云: “余訪燕巖丈人, 丈人不食三朝. 脫巾跣足, 加股房櫳而臥, 與廊曲賤隸相問答.” 所謂燕巖者, 卽不侫金川峽居, 而人因以號之也..
6-1. 총평 1이 글은 1773년(영조 49) 경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암의 나이 37세 때이다. 당시 연암은 과거科擧를 포기한 채 곤궁하게 살면서 문학과 사상을 한층 더 높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었다. 이 글은 이 시기 연암의 감정과 태도를 잘 보여준다. 2이 글을 읽으며 우리는 어떤 대목에서는 빙그레 웃게 되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 글 속 인물들의 처지에 공감되어 슬픈 마음이 되기도 하며, 어떤 대목에서는 그 아름다운 묘사에 마음을 빼앗겨 황홀해지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흐뭇해지기도 하며, 어떤 대목에서는 정신이 각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 글은 파란과 변화가 많아, 배를 타고 장강長江을 따라 내려가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강안江岸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감정에 잠기게..